[한준] 레알 중원이 삼킨 PSG, 문제는 네이마르가 아니다
[한준의 티카타카] 호날두가 챔피언스리그 9경기 연속골을 넣은 레알마드리드가, 네이마르를 부상으로 잃은 파리생제르맹을 2017-18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잡았다. 1,2차전 모두 승리한 레알이 무난하게 8강에 올랐다. 네이마르가 프랑스 리그앙 마르세유와 경기에서 부상을 당하고, 끝내 수술을 받게 되면서 우나이 에메리 감독의 악몽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지만, 레알과 2차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네이마르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레알을 이기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선수단은 구단이 구성하고, 감독이 전략과 계획을 짠다. 경기는 선수들이 한다. 경기 결과는 그 모든 팀 빌딩의 결과다. 여기에 운도 조금은 따라야 한다. PSG는 이 점에서 모두 레알에 뒤졌다. 레알이 갖춘 균형과 조직력, 지단 감독의 전술적 계획, 선수들의 이행 능력 모두 앞섰다. 에메리 감독이 “대부분의 상황에 레알이 우리 보다 우월했다”는 것은 솔직한 자평이다.
2차전 경기에는 에메리 감독의 전략 실패에 대한 지적이 많다. 네이마르가 없다고는 하지만, 레알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기록에 기여했던 앙헬 디마리아, 유럽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는 선수 중 한 명인 에딘손 카바니, 레알도 너무나 원했던 공격수 킬리안 음바페가 최전방에 있었다. 티아고 모타와 같은 베테랑 미드필더도 있었고, 바르셀로나가 원했던 마르코 베라티도 건재했다.
호날두의 결정력이 첫 번째 차이를 만들었지만, 0-0으로 끝난 전반전에 골을 넣지 못한 것이 PSG의 1차적 패착이다. 에메리 감독도 “전반전이 중요했고, 후반전 시작 시점까지 기회를 유지했다”고 했다. 선제골 싸움이 중요했던 것인데, 레알이 1차전에서 원정 골을 허용했기 때문에 PSG가 2-0으로 이기면 뒤집을 수 있는 판이었기 때문이다.
■ 지단 감독, 많이 뛸 수 있는 네 명을 중원에 배치하다
지단 감독이 PSG와 2차전에 가레스 베일과 이스코, 토니 크로스와 루카 모드리치를 모두 벤치에 남겨둔 것은 단지 부상 회복 이후 선수들이거나, 거의 두 달 가까이 주중 경기가 이어지는 타이트한 일정 때문 만은 아니다. 물론 그 일정이 주력 선수들의 체력에 영향을 미친 것은 맞지만, PSG과 2차전 경기는 ‘많이 뛰는’ 4-4-2 포메이션으로 경기해 체력과 헌신성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베일도 이스코도, 크로스도 모드리치도 공을 쥐었을 때 영향력이 높은 선수다. 레알은 2차전 전반전에 공이 없을 때 보일 수 있는 팀의 예술을 선보였다. 전반 초반 12분 가량은 굉장히 라인을 높여 PSG를 압박했다. PSG가 자신감을 갖고 경기 흐름을 타지 못하게 빌드업의 기점을 괴롭혔다.
전반 13분쯤부터 10분 정도는 압박 라인을 조금 낮춰 체력을 조율했고, 대신 역습 기회를 창출하기 시작했다. 전반 20분께 베라티가 카제미루를 통해 전개되는 역습 기점을 저지하려다 첫 번째 경고를 받았다. 후반전에 나올 두 번째 옐로카드에 이은 퇴장의 빌미가 생긴 것이다. 이 경고 이후 베라티의 플레이에 안정성이 더 떨어졌다.
레알은 라인의 오르내림이 활발했고, 기민했고 적절했다. 판단력과 체력, 기술력이 모두 필요한 일이다. 이날 자신의 챔피언스리그 통산 100번째 경기를 뛴 벤제마는 득점을 올리지는 못했으나 호날두가 역습 공격 상황을 위해 체력을 비축하는 동안 전방의 좌우를 넘나들며 PSG 수비진의 패스 동선을 괴롭혔다.
■ 공이 없을 때의 예술을 보여준 레알 선수들의 헌신
아센시오-코바치치-카제미루-바스케스로 구성된 미드필더 1자 라인의 헌신은 감동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네 명의 미드필더가 넓게 벌리고, 포백 라인과 간격을 좁혀 PSG 공격진이 중앙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했다. 디마리아와 음바페, 유리 베르치체와 다니 아우베스는 풀백 바깥 지역에서 을 받고 넘기고, 진입하려고 했는데 골문과 거리가 멀었고, 안으로 들어와도 핵심 공간에 좁아 협업하지 못했다.
기점 패스를 불안하게 만들기 위해 카제미루와 코바치치는 투톱 호날두와 벤제마의 뒷 지역까지 자주 올라가 압박했고, 그러면 아센시오와 바스케스가 부지런히 이들의 뒤, 측면 지역에 틈을 메웠고, 마르셀루와 카르바할이 그 뒤의 사이 공간을 메워 공이 빠지지 않을 그물을 만들었다. 라모스도 달려들며 공을 차단했다.
숨 고르기를 하면서 자기 진영에서 진을 쳤을 때도 두 줄의 간격 조절이 치밀했다. 다시 공을 쥔 이후 소유하면서 PSG를 조급하게 만들고, 풀백 뒷 공간으로 한번에 찔러주는 간결한 패턴으로 역습해 단순하지만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달리게 만드는 상황을 계속 연출했다.
PSG를 압박하기 위해 아센시오와 바스케스가 중앙 미드필더 영역으로 좁혀 들어오기도 했고, 코바치치와 카제미루가 경기장을 좌우로 나눴을 때 한쪽 지역에 모이기도 했다. 그렇게 비대칭으로 움직여도 반대편 공간을 맞지 않도록 다른 포지션 선수들이 영리하게 움직였다. 지단 감독이 공이 없을 때의 조직 훈련을 잘 준비했다는 얘기다. 선수들이 집중력을 경기 내내 잃지 않았다는 얘기다.
레알 선수들의 경기 기록을 보면 골키퍼 케일러 나바스를 제외한 선발 출전 필드 플레이어 전원이 태클을 최소 1번은 했다. 코바치치는 네 번의 태클, 두 번의 가로채기, 1번의 걷어내기를 기록했고, 카제미루는 다섯 번의 태크를 했고, 3번의 위기를 걷어냈다. 카르바할은 태클 7회, 가로채기 5회, 걷어내기 1회, 마르셀루도 태클 6회, 가로채기 1회를 기록하며 PSG 수비를 통제했다.
아센시오와 바스케스는 수비적으로도 부지런히 뛰었지만, 그 부지런함이 역습 과정의 득점과 연결되었다는 점에서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할 수 밖에 없다. 호날두의 헤더 선제골은 아센시오가 적극적인 전방 압박으로 공을 따내고, 바스케스가 왼쪽 측면 전방으로 이동해 공을 받은 뒤 올린 크로스로 전개됐다. 레알은 고전적인 4-4-2 플랫 형태로 뛰었지만 수비할 때나 공격할 때 모두 적절한 스위칭과 공간 이동으로 PSG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아센시오는 왼발 잡이라 왼쪽, 바스케스는 오른발 잡이라 오른쪽에 정직하게 배치됐다. 사이드를 넓혀서 플레이하면서 두 선수가 적극적인 크로스를 시도해 투톱에게 바로 공을 투입하는 공격을 했다. PSG가 중앙과 측면을 좁히고 벌릴 거리를 많이 만들었다. 바스케스는 이날 크로스 5회, 아센시오도 5회, 마르셀루가 6회, 카르바할이 2회를 기록했다.
■ 10점 만점에 10점, 98% 패스 성공률 기록한 카제미루
또 하나 주목할 기록이 패스다. 카제미루는 이 경기에서 수비적인 헌신과 더불어 98.3%의 패스 성공률을 기록했다. ESPN은 카제미루에게 승점 10점 만점을 주기도 했다. 결정적인 골을 넣은 호날두의 평점이 7점이었다. 카제미루는 총 57회의 패스 중 단 하나만 미스했다. 롱볼 5개는 모두 정확히 연결됐다.
카제미루의 패스 범위를 보면 자기 골문 부근부터 상대 골문 부근까지 전 영역이다. 압박하기 위해 경기장 전체를 커버했고, 공격 할 때 상대 문전까지 올라갔다. 기어코 이날 경기의 결승골을 넣은 선수도 카제미루였다. 코바치치도 이날 92.1%의 패스 성공률을 남겨 공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경기했다.
더 놀라운 것은 카제미루가 이 경기에서 파울을 단 하나 밖에 기록하지 않으며 PSG를 제어했다는 것이다. 일대일 대결에서도 5번 중 4번을 이겼는데 거친 플레이가 없었다. OPTA의 통계로 보면 공을 되찾은 경우도 11번이나 된다. 카제미루는 레알에서 시즌을 거듭하고, 경기를 거듭하면서 진화하고 있다. PSG전은 레알은 팀으로 강했지만, 그 중에서도 중심적인 선수는 카제미루였다.
PSG의 공격 지표는 디마리아에 집중됐다. 혼자 15개의 크로스를 뿌렸다. 라비오, 모타, 베라티로 구성된 미드필드진이 90% 이상의 패스 성공률을 남겼으나 슈팅으로 이어진 키패스는 하나였다. 도전적인 패스, 모험적인 패스, 레알의 허를 찌르는 패스는 없었다. 밀려 내려와 의미 없이 돌리다가 음바페와 디마리아의 어려운 상황 속 드리블 시도로 전개되다 끊겼다.
레알은 호날두가 3차례 드리블을 시도한 것 외에 패스와 속공으로 경기하며 PSG의 배후를 괴롭혔다. PSG는 유연하지 못했고, 유기적이지 못했다. 정신적으로 뭉치지도 못했다. 그 결과가 호날두에게 선제골을 내준 뒤 감정 조절에 실패해 베라티가 두 번째 경고를 받고 퇴장 당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전술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선수들이 중심을 잡지 못한 것은 그라운드 위 주장의 역할, 벤치 위 감독의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코바치치와 카제미루, 단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내세운 레알이 세 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세운 PSG와 중원 싸움에서 완승했다. 베라티는 흥분했고, 모타는 느렸다. 라비오는 치밀하지 못했다. 더불어 주변의 도움도 못 받았다. 풀백과 좌우 측면 공격수가 고립되고 따로 놀았다. 카제미루와 코바치니는 좌우 측면 미드필더, 두 풀백과 유기성이 좋았다.
■ 선수들을 믿은 지단, 선수들이 믿는 지단, 감독으로 발전하는 지단
레알은 올 시즌 라리가에서 부진으로 지단 감독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모습이 나왔다.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찾아 떠난 알바로 모라타와 하메스 로드리게스를 통해 부정적인 발언도 있었다. 결국 감독의 위신과 믿음은 승리에서 나온다.
PSG를 꺾고 난 뒤 지단 감독은 “3일 간격으로 경기를 계속하다보면 고민이 많아진다. 내 일은 누구를 투입하고, 누구를 빼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라며 “경기는 결국 선수들이 하는 것이다. 선수들이 잘 해줘서 이겼다”고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레알 선수들은 지단 감독이 잘 이끌어준 덕분이라고 화답했다. 주장 라모스는 “지단은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쓸 줄 안다. 우리를 가장 잘 아는 감독”이라고 했다. 코바치치는 “우리는 훈련을 많이 했고, 잘 준비했다”며 훈련장에서 성과가 나온 것이라고 했다. 아센시오는 “지단 감독은 우리 모드에게 믿음을 준다. 오늘 경기에서 그 점을 증명했다. 이름이 아니라 공평하게 팀원으로 대한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준비하고 있다. 그게 이 팀의 기반”이라고 했다.
지단 감독은 팀 내 우수한 선수에 힘이 쏠리는 것을 인정하기도 했고, 그렇게 기용한 적도 있다. 실제로 가장 잘하는 선수가 경기에 나가기 때문에 모두에게 균일하게 출전 기회를 배분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이름값 만으로 선발 선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최근 경기 운영 과정에서 보여주고 있다.
지단 감독이 챔피언스리그 출범 이후 없었던 2연속 챔피언스리그 우승, 2016-17시즌 라리가와 더블 우승을 이룬 원동력은 세 가지 포메이션을 통해 플랜B에 해당하는 선수들을 잘 썼고, BBC 트리오의 의존도를 줄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에는 이스코가 주역으로 올라섰다면, 올 시즌에는 아센시오와 바스케스를 활용한 4-4-2 포메이션이 빛을 보고 있다.
지단 감독은 선수 시절의 위상을 통해 선수들의 존중을 얻고 시작했으나, 그가 감독으로 거두고 있는 성과는 지도자로서의 준비와 노력을 통해 얻은 것이다.
글=한준 (스포티비뉴스 축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