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성] 굿바이 에메리
에메리와 파리를 무너뜨린 레알 마드리드의 호날두
파리 에메리 감독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겠다. 초특급 공격수 네이마르가 부상으로 빠졌다. 설상가상 경기 도중 베라티가 퇴장 당해 경기장에서 쫓겨났다. 아무리 홈경기라지만 상대가 레알 마드리드로 결코 쉬운 승부가 아니었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은 다른 것 같다. 위와 같은 이유로 정상참작 하더라도 에메리 감독의 전술 운영이 레알 마드리드 지단 감독과의 수 싸움에서 완전히 밀렸기 때문이다.
지단 감독의 판단은 적중했다. 지단 감독은 지난 새벽 파리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때와는 다른 전술을 꺼냈다. 이스코를 세워 다이아몬드 4-4-2 형태로 싸웠던 1차전과 달리 2차전은 이스코를 뺀 일자형의 플랫 4-4-2를 활용했다. 지단 감독은 2차전의 미드필드라인을 아센시오-코바치치-카제미루-바스케스로 이어지는 일자형으로 구성했다.
다른 구성에 비해서는 선수나 형태가 수비적인 전형이었다. 크로스와 모드리치의 부상 여파가 있었지만 이들이 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실제 크로스와 모드리치는 교체 명단에 올라 있었고 크로스는 71분 교체돼 뛰었다. 이스코의 경우도 몸 상태는 정상이었으며 경기 막판 교체돼 활약했다. 지단 감독의 플랫 4-4-2는 계산된 선택이었던 것이다.
“평평하게 세운 4명의 2라인(미드필드라인)이 파리의 사이드 공격에 대응하는 게 중요했다. 모드리치와 크로스를 선발로 뛰게 할 수도 있었지만 2차전 우리 팀의 콘셉트는 압박과 속공이었다. 선수들이 잘 해줘 이길 수 있었다.”
지단의 계산된 선택
지단 감독이 2차전 직후 인터뷰를 통해 한 말이다. 지단 감독은 크게 두 가지를 파리와의 2차전 전술 승부수로 봤다. ① 파리가 4-3-3 대형을 유지할 것이라는 점과 ② 2차전이 원정 경기로 상대적으로 수비와 역습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4-3-3은 기본적으로 측면을 강조하는 포메이션이다. 좌우 윙포워드와 풀백이 깊숙이 전진해 사이드에서 공격의 실마리를 푸는 전술이다. 더욱이 안으로 좁혀 들어가 공격하는 네이마르가 빠지고 예상했던 디마리아가 들어온다면 파리 공격의 상당수가 측면에서 이루어질 공산이 컸다. 이 때문에 지단 감독은 미드필드를 전형적인 윙 없는 다이아몬드 형태가 아닌 측면까지 넓게 방어할 수 있는 일자형의 미드필드라인을 선택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지단 감독의 예상과 선택은 주효했고 파리의 4-3-3은 맥을 추지 못했다. 경기가 마치 지단 감독의 손바닥 위에서 이루어진 거와 같았다.
1차전을 3-1로 승리했던 레알 마드리드로서는 원정 와서 무리할 이유가 없었다. 레알 마드리드가 1차전 승리로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2차전 원정 와서 0-2로 진다면 원정 골 원칙에 따라 8강 진출은 불가능했다. 지단 감독이 수비를 안정적으로 가져가면서 빠른 역습을 가져가는데 특화한 플랫 4-4-2를 들고 나온 배경이다.
지단 감독으로선 실점을 최소화하되 역습으로 골을 넣을 수 있다면 파리를 사실상 무너뜨릴 수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가 한 골을 넣는다면 파리에 필요한 득점은 최소 3골이기 때문이었다. 지단 감독은 역습 속공의 전형적인 형태인 플랫 4-4-2를 쓰기 위해 베일을 선발에서 제외했다. 동시에 플랫 4-4-2의 핵심인 중앙 미드필드라인을 상대적으로 수비적인 카제미루와 코바치치로 구성했다. 급한 파리의 뒷공간을 치고, 원정의 부담을 덜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었다. 지단 감독의 이와 같은 선택은 그대로 주효해 끊어낸 공의 빠른 역습 전개로 선제골을 만들어내며 파리를 일찌감치 무너뜨릴 수 있었다. 전술의 승리였다.
지단 감독은 경기 도중에도 압박 라인의 높이를 내리고 올리는 등의 조정을 하며 상황에 맞게 계속해서 변화를 주었지만 에메리 감독은 시종 무기력했다. 선발부터가 특색이나 승부수와 같은 변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누구나 예상했던 대로 네이마르 자리에 디마리아가 나왔고 1차전 때 부진했던 로셀소 자리엔 티아고 모타가 나온 게 전부였다. 지단 감독의 예측 범위에서, 손바닥 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스타군단 파리의 약한 고리
상대는 미리 예측하고 대비해 나왔는데 그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면 말리는 게 당연했다. 측면으로 넓게 벌려야만 활로가 열리는 파리의 공격은 이를 대비하기 위해 플랫하게 미드필드를 구축한 레알 마드리드의 압박에 계속해서 막혔다. 선발이야 어쩔 수 없었다 해도 상대의 변화와 전술을 보면서 경기 도중에라도 변화를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에메리 감독은 단판 승부에서 그 어떤 승부수도 던지지 못했다. 요즘 젊은 지도자들이 한 경기를 위해 3,4가지의 전술 준비와 활용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플랫 4-4-2를 힘들게 하는 상대 전술인 다이아몬드 4-4-2로의 전환이나 더욱 과감한 선수 교체 등 에메리 감독은 그 어떤 것도 선택하지 못했다.
에메리 감독의 무기력은 경기 수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날 파리의 경기 통계는 레알 마드리드에 크게 밀린 것은 물론 자신들의 시즌 평균에도 모두 밑돌았다. 파리의 지난 새벽 경기 전체 슈팅은 8회였다. 자신들의 올 시즌 경기 평균 슈팅 14.88회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유효 슈팅도 2회로 시즌 경기 평균 유효 슈팅 6.5회에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1차전에서 1-3으로 져 2골 이상의 승리가 필요했던 상황에서, 그것도 홈에서 치러지는 경기라면 과감한 공격 전술이 필요했으나 에메리 감독과 파리는 무력했다.
이 수치들을 단순히 한 명이 퇴장 당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하는 건 사실에 눈을 가리는 일이다. 경기를 통째로 지켜본 팬들은 에메리 감독과 파리의 무력함을 똑똑히 지켜볼 수 있었다. 파리 선수들은 레알 마드리드의 플랫 4-4-2의 꽉 조여진 압박에 막혀 뛸 공간조차 찾질 못했다. 뛴 거리 수치에서조차 더 뛰어야 했던, 다급했던 파리가 상대와 시즌 평균 모두에 밀린 전술적 이유 중 하나다.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바르셀로나에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했던 파리가 올 시즌 또다시 챔피언스리그에서 일찌감치 떨어진다면 그건 스타군단 파리의 가장 약한 고리로 평가 받는 에메리 감독 때문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지난 시즌 16강 1차전에서 바르셀로나에 4-0으로 이기고도 2차전 때 바르셀로나의 윙 없는 파격적인 공격 전술에 1-6으로 패하며 무너졌던 에메리 감독의 파리였다. 불안했던 에메리 감독은 지난 새벽 안타깝게도 위와 같은 세간의 전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올 시즌엔 초특급 공격수 네이마르와 음바페 등을 영입하면서 전력을 더욱 보강, 그 이상의 기대가 많았으나 에메리 감독은 또 한 번 전술 역량 부족의 벽에 막혀 주저앉고 말았다.
파리와 에메리 감독이 더 이상 함께 할 명분도, 실리도 없다. 에메리 감독은 개성 강한 스타군단에서 어려움이 적지 않았고 나름 잘 해주었지만 이 이상은 아닌 것 같다. 파리를 품기에 에메리 감독은 부족하다. 둘 사이의 시간은 아무래도 여기까지다.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