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코어 [서형욱] 포체티노 한 수 가르친, 괴짜 명장 알레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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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게임=서형욱] 보는 사람에겐 종합선물셋트 같은 경기였다. 한마디로 흥미진진했다. 굳이 두 팀 중 어느 하나의 팬이 아니더라도, 밤을 꼬박 새울만한 가치가 있었던 시합. 손흥민의 골, 전술의 묘미, 개별 선수들의 뛰어난 능력이 한데 어우러져, 보는 눈이 즐겁고 생각하는 머리는 분주했다. 토트넘과 유벤투스가 맞붙은,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이야기다. 

런던 웸블리에서 열린 이 경기는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87분간 토트넘의 주도 하에 진행됐다. 하지만 유벤투스는 딱 3분간 주어진 자신들의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았다. 제한된 기회를 집중력있게 마무리하며 경기를 뒤집었고 그 뒤론 빗장을 꾹 잠근 채 승리를 얻어냈다. 슛팅수 23:8, 유효슛 6:3, 토트넘은 내내 경기를 주도하며 8강에 올라설 자격이 충분하다는걸 보여줬지만, 유벤투스의 전술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죄(?)로 탈락의 고배를 들어야 했다. 


압도적인 전반, 처방 통한 후반


1차전 토리노 원정에서 아쉽게 승리 기회를 놓쳤던 토트넘은 홈에서 열리는 2차전을 자신있게 맞이했다. 1차전에 손흥민 대신 라멜라를 내세웠던 포체티노 감독은, 최근 2경기 연속 멀티골을 터뜨리며 물 오른 기량을 과시하는 손흥민에게 다시 챔스 선발 기회를 돌려줬다. 그리고 손흥민은 다시 주어진 기회를 허비하지 않았다. 그는 이날 양팀 선수들 가운데 전반 내내 가장 돋보인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자신감 넘치는 움직임으로 상대 문전을 휘젓던 손흥민은 전반이 끝나기 전 디딤발로 선제골을 넣으며 강한 인상을 남긴다. 영국 축구팬이 운영하는 한 트위터 계정에는 전반전 손흥민의 활약을 재치있게 칭송한 글이 올라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손흥민은) 지구에서 두번째로 위험한 한국인이야." 



 

토트넘을 홈으로 불러들여 고전했던 유벤투스는 1차전보다 중원을 강화한 선발 라인업으로 나섰다. 4-2-3-1로 2명의 중원이 뎀벨레가 나선 토트넘을 상대로 고전했던 1차전과 달리 이번엔 3명의 미드필더에게중원을 책임지게 했다. 여기에, BBC(Bㅏ르잘리, Bㅔ나티아, Cㅣ엘리니)가 포함된 포백 역시 변형 스리백 형태로 수비에 힘을 준 구성이었다. 하지만 에너지 넘치는 토트넘의 전방 압박은 유벤투스가 중원에서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들었고, 전반 내내 주도권은 토트넘에게 있었다. 11:3의 슛팅 수는 토트넘이 훨씬 더 많은 공격 찬스를 만들어냈다는 방증이다. 후반 들어 유벤투스가 먼저 변화의 카드를 꺼내든 것은 그래서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알레그리 감독이 내민 카드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당연한' 것만은 아니었다. 후반 15분께, 그는 중앙 미드필더 마투이디와 센터백 베나티아를 빼고 측면 요원 2명을 투입했다. 전반 내내 별다른 성과가 없던 중원 대신, 측면을 좀 더 적극적으로 공략하기로 한 알레그리 감독의 결심은 곧바로 성과로 이어진다. 후반 19분에 터진 이과인의 골이 오른쪽 라인을 따로 오버래핑 올라온 교체멤버 리히슈타이너의 발끝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3분 뒤, 중원 전투에서 살아나온 공 하나가 빠르게 전방으로 배달됐고 이번엔 디발라가 깔끔한 마무리에 성공한다. 단숨에 2-1 역전. 일방적인 열세로 보였던 팀이 순식간에 전세를 뒤집어 버린 것이다.  



 

이후 얼마간의 공방을 주고 받던 두 팀은, 발등에 불 떨어진 토트넘의 공세로 다시 분위기가 바뀐다. 하지만 리드를 잡은 유벤투스가 마음 먹고 수비하기 시작하면 이걸 뚫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란걸 축구팬들은 모르지 않는다. 게다가 알레그리는 경기 종료 10분을 남긴 상황에서 이과인을 빼고 스투라로를 투입하며 잔여 시간의 우선 과제를 명확히 정리하기에 이른다. 케인의 헤딩슛이 땅바닥을 튕겨 골포스트에 맞고 나온 장면을 제외하면, 토트넘에게 득점에 가까운 기회는 전무했다. 변화를 고민하던 포체티노 감독이 교체 판단을 머뭇거리는 사이, 토트넘은 내려앉은 유벤투스를 상대로 측면 크로스를 남발했지만 높이와 위치 선정에서 상대를 압도한 유벤투스 수비진들을 피하기란 불가능했다. 특히, 이날 해리 케인을 거의 지워버린 키엘리니와 바르잘리는 공중볼 경쟁에서도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토트넘의 크로스 세례를 무리없이 견뎌냈다.  


상대 안방에서 상대에게 주도권을 내주고는 태연히 결과를 챙겨 빠져나온 유벤투스. 특히나 이번 시합에서는 경기 중 내린 용단이 큰 효험을 봤다. 토트넘의 에너제틱한 플레이에 고전하던 유벤투스는 선수 교체와 이에 따른 전술 변화를 통해 해법을 찾아내며 승리까지 거뒀다. 포체티노가 숙련된 조직과 분석을 통한 대응으로 준비해놓은 팀을, 유벤투스는 경기 도중의 적절한 교체와 전술 변화로 무너뜨렸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감독인 알레그리가 있다. 
 

'사생활 괴짜' 전술가 알레그리의 오픈 마인드 


알레그리가 이끄는 유벤투스는 명실상부한 이탈리아 최강의 축구팀이다. 유럽 무대에서도 다른 이탈리아 클럽들과 달리 꾸준히 좋은 성과를 내며 고공 비행을 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알레그리 감독의 태연자약한(?) 팀 운영이다. 매년 주축 선수들을 지속적으로 잃고 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선수들로 최대치를 끌어내기 위해 늘 전술의 변화를 시도한다. 유벤투스는 실제로 매년 기본 포메이션을 바꾸면서 우승을 일궈내는 신기한 팀이다. 변변찮은 선수 경력, 하위 리그에서 출발한 지도자 경력은 아마도 알레그리 감독이 주어진 여건에서 최상의 수를 구상해내는 태도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감독으로, 또 전술가로 알레그리 감독이 가진 미덕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알레그리는 다른 것을 받아들이고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 지도자다. 한 인터뷰에서 알레그리 감독은 "내 생각을 바꾸는건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그게 성장의 한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바닥부터 정상까지 올라온 그의 지도자 경력은, 이런 유연한 사고에 빚진 바가 크다. 

사실, 알레그리는 다소 난해한 사생활로도 주목받는 인물이다. 워낙 말라 '멸치(앤초비)'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선수 시절부터, 카지노와 경마를 즐기고, 혼란스런 연애를 반복하거나, 결혼식날 맘을 바꿔 식장에 가지 않은 '사고'를 저지른 해프닝까지 범인(凡人)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종종 저지르곤 한다. (결혼식날 아침에 맘이 바뀌어서 출석하지 않았다는데 실제론 신부는 입장까지 한 상태였다고 한다.) 

어찌보면 사생활에선 결점이 많은 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자유로운 사고와 결단력이 적어도 현재까지는 직업의 영역에서 긍정적으로 발현되고 있는 셈이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생각과 과감한 실행력이 만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달까. 덕택에 유벤투스는 앞서 말한대로 매년 주요 선수들이 팀을 떠나는 와중에도 이탈리아 최강자의 자리를 흔들림없이 지켜내고 있다. 

그렇다면 알레그리의 유벤투스는 올 시즌 챔스에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이미 두 차례 준우승에 그쳤던 아쉬움을 올해엔 씻어낼 수 있을 것인가. 객관적인 전력 면에서 물음표를 던지는 이들이 많지만, 그래도 (자칭) 천부적인 감독인 알레그리의 전술적 감각을 떠올린다면 더 높은 곳을 기대해도 이상하진 않을 것 같다. 토트넘의 파상공세를 능숙하게 견뎌내고 8강에 오른 유벤투스가 올 시즌 어느 역에서 종착할지 궁금해진다.

기사제공 서형욱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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