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 “실수했다, 불운했다”는 첼시, 그게 실전이고 실력이다
[한준의 티키타카] FC바르셀로나와 첼시의 2017-18 UEFA 챔피언스리스 16강 2차전을 압축한 것은 메시와 실수다. 양 팀 감독과 선수 공히 “리오넬 메시가 차이를 만들었다”고 했다. 첼시 선수단은 입을 모아 “우리의 실수로 졌다”고 했다. 첼시 선수들은 1,2차전에 걸쳐 골대 불운으로 득점하지 못한 상황을 언급하며 “잘 했는 데 불운했다”고 했다. 그런데, 실전에서는 그게 실력이고 차이다.
좋은 경기를 위한 3요소는 기술, 체력, 전술이다. 바르사는 첼시 선수들과 비교 했을 때, 기술적으로 우세했고, 체력 관리를 잘 했으며, 전술적으로도 더 안정되어 있었다.
바르사에 우수한 선수가 메시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첼시도 유럽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선수들이 모인 팀이다. 이들 중 걸출했던 선수가 메시다. 메시는, 상대의 실수를 놓치지 않는다. 이는 즉,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는 얘기다.
첼시 레프트백 마르코스 알로소는 “저들은 메시를 가지고 있었고, 더 좋은 팀이기도 했다”고 했다. 안토니오 콘테 첼시 감독도 “우리는 지금 세계 최고의 선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며 메시가 발생한 차이를 말했다. 이는 디에고 시메오네 아틀레티코마드리드 감독도 얼마 전 했던 말이다. “메시가 우리 팀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면, 우리가 이겼을 것이다.”
첼시가 범한 실수가 어떻게 바르사의 기회가 되었을까? 메시는 어떻게 차이를 만들었을까?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바르사는 분명 스탬퍼드브리지에서 열린 1차전에 고전했다. 밀리는 경기를 했다. 메시가 후반전에 이니에스타의 패스를 받아 동점을 만들었다. 첼시 수비수 안드레아스 크리스텐센의 무리한 전환 패스가 차단되며 발생한 실점이었다.
■ 바르사의 선제골: 알론소의 불운, 무에서 유를 창조한 메시
메시는 2차전 경기 시작 2분 8초만에 득점했다. 오른쪽 측면으로 빠져 있던 메시는 우스만 뎀벨레와 2대1 패스를 주고 받으며 전진했다.
이때 뎀벨레가 다시 메시에게 주려던 볼은 알론소에게 걸렸지만, 알론소를 맞고 튄 볼이 하필 문전에 침투해 있던 수아레스에게 연결됐다. 마치 계획된 연결 과정의 일부처럼 논스톱으로 수아레스에게 이어진 공, 수아레스는 속도를 살려 문전 우측으로 침투한 메시에게 패스했다.
그런데 이 기회가 득점을 하기 위한 이상적인 상황이었냐면, 그렇지는 않다. 골문 오른쪽 부근에서 공을 받은 메시에겐 슈팅을 할 수 있는 각도가 충분하지 않았다. 티보 쿠르투아도 “그 앵글에서 슈팅을 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메시는 했다. 주로 쓰는 왼발이 아니라 오른발로 그대로 공을 찼다. 이미 수비 견제를 충분히 받고 있는 문전 중앙 부근의 동료에 크로스해봤자 차단되고, 역습의 빌미를 허용할 뿐이다. 메시는 이 상황에서 골을 넣기 위한 최적의 판단을 ‘오른발 논스톱 슈팅’이라고 생각했고, 실행했다.
메시의 슈팅은 쿠르투아 골키퍼의 다리 사이를 통과했다. 우연이 아니다. 쿠르투아는 “메시와 여러 번 경기해봤다. 그런 골도 먹어봤다. 골키퍼의 가장 약한 부분이 다리 사이”라고 했다. 메시는골이 될 확률이 높은 곳으로 슈팅한다. 골문 좌우 구석도 노리고, 골키퍼의 다리 사이와 다리 옆 부근도 잘 노린다. 물리적으로 반응하기 어려운 곳, 두 손으로 막기 어려운 위치를 교묘하게 노린다.
메시에게 기회가 찾아온 과정은, 알론소가 막은 공이 하필 수아레스에게 향한 ‘불운’이 작용했지만, 불운을 골로 완성한 것은 메시의 기술이다.
■ 바르사의 두 번째 골: 크리스텐센의 실수, 메시의 적극적인 압박, 뎀벨레의 기술
전반 20분의 두 번째 골. 에덴 아자르의 슈팅이 바르사 수비수 사뮈엘 움티티의 육탄 방어에 막힌 뒤 멀리 첼시 수비 지역까지 날아갔다. 크리스텐센이 자세를 낮추고 머리로 세스크 파브레가스에게 패스했다. 이 패스는 안일했다. 머리로 준 패스가 안정적이지 못했고, 파브레가스가 확시히 통제하기 어렵게 튀었다. 이 불안한 공을 향해 메시가 달려들었다.
크리스텐센은 공을 쥐고 좀 더 안정적인 방향으로 전개해야 했다. 첼시 수비진 부근에 메시와 수아레스가 도사리고 있었다. 등지고 공을 받는 상황이었던 파브레가스는 첼시 골문 방향을 바라보고 가속을 내고 달려든 메시에게 공을 빼앗겼다. 메시는 뒷걸음질로 쫓아오며 발을 뻗은 크리스텐센을 가볍게 통과했고,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으로 진입했을 때 아스필리쿠에타를 마주했다.
메시는 속도를 줄였다. 첼시 수비는 메시 부근으로 간격을 좁혔다. 달려들지 않았다. 메시가 그대로 감아찰 수도, 또 다시 속도를 내며 파고들 수 있었다. 메시는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으로 홀로 진입한 뎀벨레를 보고 길게 패스를 넘겼다. 첼시 수비는 다시 뎀벨레 방향으로 이동했으나 뎀벨레는 지체 없이 오른발 슈팅을 시도해 골문 구석에 꽂았다. 쇼트 카운터의 교과서적인 장면이다.
메시의 전방 압박, 메시의 돌파, 메시의 패스 모두 오차 없이 깔끔했다. 뎀벨레의 슈팅까지 그 위치에서, 그 각도에서, 수비 견제가 들어온 가운데 유일하게 득점이 될 수 있는 공간으로 향했다. 첼시의 수비 실수가 야기한 상황이지만, 바르사의 기술적 우월함이 없었다면 득점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바르사가 실력으로 넣은 골이다.
■ 바르사의 세 번째 골: 아스필리쿠에타의 패스 실수, 메시의 확실한 마무리
후반 18분 첼시의 숨통을 끊어 놓은 바르사의 세 번째 골 상황도 바르사의 역습 공격이 잘 먹혔다. 첼시의 오른쪽 센터백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가 안토니오 뤼디거가 길게 넘겨준 패스를 무리하게 전진 패스로 연결하다가 조르디 알바에게 차단당했다.
알바가 수아레스에게 패스하며 바르사가 달리기 시작했다. 수아레스의 뒤편에 있던 메시가 수비 시야 밖에서 달려 나오며 수아레스의 패스를 받아 문전 왼쪽까지 돌파해 마무리했다. 이 골도 기술적 완성도가 높았다. 메시의 첫 골을 도왔던 루이스 수아레스가 전진 패스를 보냈고, 메시는 번개 같이 문전 왼쪽을 파고들어 깔끔하게 마무리 슈팅을 성공시켰다.
첼시 수비 세 명이 메시가 볼을 몰고 오는 것을 견제하고 있었지만 달려들지 못했다. 달려들든, 기다리든, 메시는 골로 가는 길을 여는 기술을 가졌다. 메시의 기술이 비범하지만, 유럽에는 이런 실수를 범했을 때 골을 만들 수 있는 공격 패턴을 구성하는 감독, 수행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선수가 즐비하다.
■ 실수 때문에 진 첼시? 기술, 체력, 전술 모두 진 첼시
바르사는 첼시와 비교하면 기술적으로 우월했다. 첼시도 기회가 있었지만 살리지 못했다. 3골을 실점하는 와중에서 가장 좋은 위치를 잡고 분전한 은골로 캉테가 바르사 문전까지 진입해서 슈팅했으나 어이없이 빗나갔다. 수비력이 좋은 캉테는 슈팅 기술이 부족했다.
바르사는 첼시 수비가 실수를 범하면 번개 같이 달려들었지만, 대체로 자기 진영에서 4-4-2 대형으로 수비하며 체력 소모를 줄였다. 바르사는 이날 첼시보다 덜 뛰었다. 팀 전체 활동거리가 첼시는 110km에 달했는데, 바르사 선수들은 그 보다 적은 106.2km를 뛰었다. 평소 메시가 그렇듯, 전체 경기 흐름을 살피며 좋은 위치를 선점하고, 꼭 필요한 순간에만 스프린트를 했다.
바르사는 일찌감치 두 골 차로 리드하자, 미련 없이 주축 선수들을 교체했다. 후반 11분에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를 빼고 파울리뉴, 후반 16분에 세르히오 부스케츠를 빼고 안들 고메스, 후반 22분에 뎀벨레를 빼고 알레시 비달을 투입했다. 부상에서 회복한 이니에스타를 관리하고, 부스케츠도 통증을 느끼는 표정이 있었지만, 리드 상황을 안정적으로 지키고 효율적이고 실리적인 경기를 하기 위해 빠른 판단을 내린 것이다.
네이마르라는 초대형 스타를 잃고도 올 시즌 라리가에서 28라운드 일정까지 무패를 유지하고, 코파델레이 결승 진출,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을 이룬 바르사의 힘은 에르네스토 발베르데 감독이다. 발베르데 감독은 MSN 트리오의 비범한 기술로 대표되었던 바르사를 견고한 전술적 규율을 바탕으로 실리적으로 경기하는 팀으로 만들어 놨다. 메시는 언제나 특출나지만, 올 시즌 바르사는 늘 팀으로 경기하는 느낌을 준다.
■ 촘촘하고 적게 뛴 바르사, 따로 놀고 많이 뛴 첼시
바르사와 1차전 경기에서 아자르를 제로톱으로 두고 윌리안과 페드로를 좌우 측면에 두면서 전방 수비와 커트인 공격에서 좋은 효과를 봤던 첼시는 콘테 감독의 전술 변화가 오히려 패착이 됐다. 겨울 이적 시장에 영입한 올리비에 지루를 통해 롱 볼과 포스트 플레이, 2선 연계 플레이를 추구했으나 지루는 고립됐고, 아자르의 측면 수비는 좋지 않았다.
바르사가 같은 방식에 두 번 당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 첼시는 5-4-1 대형을 유지하며 경기했는데, 아자르와 윌리안이 바르사 공격 지역까지 올라가는 거리가 멀었고, 지루와 거리도 타이트하게 유지되지 못해 좋은 공격 패턴을 만들지 못했다.
캉테와 파브레가스도 따로 놀았다. 바르사는 메시가 페너트레이션 과정에서 투톱 자리로 올라가지만, 빌드업 과정에는 이니에스타의 뒤 혹은 옆으로 내려와 공격형 미드필더처럼 뛴다. 뎀벨레가 사이드로 벌리고, 수아레스가 전방에 포진, 알바와 세르지가 전진하면 중원 지역을 장악할 수 있는 블록이 만들어진다.
이에 반해 5-4-1 대형으로 두 줄을 세우고, 측면 지향 선수들을 다수 배치한 첼시는 공격 과정에서 유기성이 부족했다. 첼시는 압박과 패스를 근거리에서 조직적으로 전개한 바르사와 중원 대결에서 완패했다.
메시와 뎀벨레의 지속적인 측면 위협은 알론소의 전진을 제어했고, 이니에스타와 알바를 대적인 모지스도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어떻게 조합하고, 어떻게 라인을 형성하느냐에 따라 선수의 역량은 달라진다. 장점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로 경기했다.
후반전에 지루를 빼고 알바로 모라타를 투입, 모지스를 빼고 자파코스타를 투입하거나, 아자르 대신 페드로를 넣는 등 선수만 바꾸고 틀은 바꾸지 못한 교체 작전도 무위에 그쳤다.
첼시는 실수 때문에, 운이 없어서 진 것이 아니라 사실은 애초에 모든 면에서 열세였기 때문에 졌다. 오히려 1-1로 비긴 1차전 경기가 잘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실수와 불운을 ‘사고’로 여긴다. 그런데, 그 실수와 불운이 실패로 이어지게 된 배경에는본인의 실력이 있다. 실수도, 불운도 통제할 수 있는 견고함을 갖춰야 챔피언이 될 수 있다. 위닝 멘털리티는 그렇게 형성된다.
프랑스 축구 레전드 미셸 플라티니가 “축구는 실수의 스포츠다. 모든 선수가 완벽한 플레이를 펼치면 스코어는 언제나 0-0일 뿐”이라고 한 말은, 축구계의 유명한 격언이 됐다. 잘 조직된 팀, 잘 준비된 팀끼리 격돌하면 팽팽하다. 그 팽팽한 균형이 깨지는 순간은, 어느 한 쪽이 무너졌을 때다. 메시처럼 매 경기, 꾸준히, 알고도 막을 수 없는 차이를 만드는 선수의 존재는, 실수를 야기한다.
K리그 무대에 입성한 박주호는 "유럽에서는 아차하고 빠진 순간 따라가면, 우려한 그 자리로 골이 들어간다. K리그에 와보니 '큰일났다' 싶은 상황에 열심히 따라 내려갔는데 큰일이 나지 않더라. 그렇다고 해서 안일하게 하면 내 페이스도 떨어질 수 있다. 그런 상황에더 유럽에서 뛸 때처럼 더 집중하고 빠르게 대비할 것"이라고 했다.
실수가 발생한 상황을 단호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기술이, 클래스다. 그게 한국 축구가 세계 축구와 느껴온 격차다. 실수에 대하는 수비의 자세, 그리고 공격의 자세 모두 강해져야 한다.
축구에서 우연과 사고가 실수와 불운을 야기하고,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것도 사실이다. 득점이 많이 나지 않는 경기라 한 골이 갖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실수와 불운으로 인해 한 골을 얻거나 내주는 것에 따라 흐름이 요동치고, 팀 전술과 선수들의 정신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변수에도 정상적으로 경기를 할 수 있는 정신력과 기본기다.
많은 경험을 가진 축구인들은, 결국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단합된 팀’이라고 했다. 11명의 선수가 강한 정신으로 뭉쳐있다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이 강한 정신은, 단 한 경기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시즌 내내 이어진 체력 훈련과 전술 정비를 통해 하나의 유기체처럼 팀이 뭉쳐질 때 가능하다. 단발적으로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바르사는 팀으로도 강했고, 첼시는 바르사보다 약했다. UEFA 공식 홈페이지에 기고하는 첼시 담당 기자 대니얼 대커는 "첼시는 이 경기에서 잘 한 포인트가 없었다"고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글=한준 (스포티비뉴스 축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