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in 캠프] 맥커친, “Goodbye 피츠버그, Hello 샌프란시스코”
<훈련 전 더그아웃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앤드류 맥커친. 피츠버그를 떠난 심경, 샌프란시스코와 새로운 인연을 맺은 마음가짐 등을 인터뷰를 통해 진솔하게 풀어냈다.(사진=이영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스프링트레이닝 캠프에서 에반 롱고리아를 만났을 때보다 더 큰 느낌표를 선사한 이는 앤드류 맥커친(32)이었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클럽하우스에서 가장 넓은 라커를 사용하고 팀 리더로 선수단을 이끌었던 그가 주황색 로고가 박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애리조나 캠프에서 뛰는 모습은 여전히 낯설게 다가왔다.
2005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1번째로 피츠버그에 지명됐던 앤드류 맥커친은 2009년 빅리그 데뷔 후 9년간 1346경기에 출전해 203홈런 725타점 171도루 타율 .291 OPS .866을 기록했다. 2011시즌부터 2015시즌까지 4년 연속 내셔널리그 MVP 투표 5위 안에 들었고, 2013시즌에는 MVP를 수상했다. 2016시즌 이후부터 나돌던 트레이드 소문은 2018년 1월 16일 피츠버그가 공식 발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앤드류 맥커친은 트레이드 발표 후 자신의 SNS를 통해 피츠버그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남겼다. “피츠버그, 나의 집, 나의 팬들, 나의 도시. 그곳은 나를 성장시켰고, 오늘날의 날 있게 만들었다. 영원히 내 마음 속에 함께 할 것이다. 나와 여정을 함께한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젠 피츠버그가 아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소속 앤드류 맥커친과의 인터뷰는 약속했던 시간보다 꽤 긴 시간동안 진행됐다. 그는 주어지는 질문들에 정성을 담아 답변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영상으로 네이버 스포츠 팬들에게 인사해달라고 부탁하자,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해 기자를 놀라게 했다.
3월 11일(한국시간), 애리조나 주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서 만난 앤드류 맥커친과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내용이 다소 길지만 앤드류 맥커친의 야구관, 인생관을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프랜차이즈 스타플레이어가 되고 싶었던 맥커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있는 앤드류 맥커친을 만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나도 내가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웃음).”
2016년부터 계속 트레이드 루머가 나돌았다. 영원한 해적 선장일 줄로만 알았던 앤드류 맥커친이 트레이드 대상에 오른 것이다. 당시 어떤 심정이었나.
“야구 선수는 야구만 생각해야 하는 것 같다. 어느 팀에서 야구를 하든 말이다. 야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팀이 있어 고마웠다. 그렇게 받아들여야만 했다.”
‘야구=비즈니스’란 수식어가 와 닿았나.
“야구가 비즈니스처럼 운영이 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우리 같은 선수들도 ‘보스’가 있다. 그 보스를 위해 일하는 것이다. 선수 입장에선 구단이 가라고 하면 가야된다. 그런 구단의 선택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그렇다고 해서 심적으로 편한 것만은 아니다. 팀을 옮기는 건 선수들한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그냥 야구를 하고 싶은 거지, 야구를 비즈니스로 여기지 않는다.”
요즘 메이저리그에는 프랜차이즈 스타플레이어를 찾아보기 힘들다. 당신한테 ‘프랜차이즈’란 타이틀은 어떤 의미였나.
“프랜차이즈 출신의 스타플레이어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슬프다. 내가 어렸을 때 좋아하고 존경했던 야구 선수들은 모두 프랜차이즈 스타플레이어들이었다. 예를 들어 칼 립켄 주니어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21년 동안 선수 생활을 보냈다. 데릭 지터도 그렇고 치퍼 존스도 마찬가지다. 이런 선수들을 떠올리며 ‘나도 한 팀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한 팀과 자신의 선수 생활이 함께 간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 그러나 야구는 항상 변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스타플레이어가 거의 없다는 게 바로 그 증거다.”
버스터 포지 같은 프랜차이즈 스타플레이어가 있지 않은가.
“그도 그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는 월드시리즈 우승 경험도 많고 MVP를 받기도 했다. 그는 나이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선수 생활을 하려면 꾸준함과 건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선수가 건강해야지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인 때는 항상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야구 인생이 언제 어떤 운명에 처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는 자신이 상상했던 선수 생활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때 그걸 받아들이기 힘들고 무척 어색하다.”
내가 선수라도 그럴 것 같다. 예를 들어 한 팀에서 프랜차이즈 스타플레이어로 남고 싶었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트레이드되거나 항상 건강할 줄 알았던 몸에 문제가 생긴다면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정말 그렇다. 좀 더 어렸을 때는 그냥 야구에만 집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걸 계산적으로 따지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구단들이 선수들을 비즈니스 차원으로 보기 때문에 계산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하지만 선수들이 싫다고 해서 비즈니스적인 면들이 사라질 수 없는 것 아닌가. 그건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맥커친은 5툴 플레이어에서 자신이 한 가지를 더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건 바로‘두뇌 (Brain)’였다.(사진=이영미)>
“난 5툴 플레이어가 아닌 6툴 플레이어”
옛날 얘기를 해보자. 2005년 1라운드 11순위로 피츠버그 입단 후 2009년 빅리그 데뷔할 때까지 마이너리그에서 어떤 시간을 보낸 건가.
“야구 선수는 마이너리그에서 참 많은 것을 배운다. 야구에 대해서도 배우는 게 많지만 실패란 것이 무엇인지도 배우는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때 재능이 많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었다. 물론 그랬으니 지금까지 야구를 하고 있겠지만 고등학교 시절에는 실패라는 걸 모르고 살았다. 그냥 야구를 하면 잘 풀렸기 때문에 힘든 적이 없었다(고교 3학년 때 맥커친은 타율 .709 16홈런 42타점을 기록했다). 마이너리그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며 우디 하이키(Woody Huyke)란 코치한테 내가 고3 때의 타율이 7할대였다고 자랑하니까 그는 마이너리그에선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더라. 3할대의 타율만 기록해도 잘 치는 거라고 설명해줬을 때 난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기 싫었을 것이다(웃음). 타율이 3할 대라니. 나한테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코치가 당신의 큰 꿈을 한방에 무너트렸나보다.
“(웃음을 터트리며) 정말 그랬다. 진짜 그의 말이 와 닿지 않았다. 내가 직접 느끼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이 어린 앤드류 맥커친은 배워야 할 것들이 아주 많았다. 코치의 예언대로 내 타율은 아마 .290정도였을 것이다. 성적을 보며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불만도 늘어났다. 그런 불만들이 나를 더 노력하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마이너리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당신을 5툴 플레이어라고 한다. 5툴 플레이어가 되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나.
“난 5툴이 아닌 6툴 플레이어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
“나의 6번째 무기는 바로 나의 ‘두뇌 (Brain)’라고 생각한다. 야구 선수로 생활하며 많은 배움을 가졌다. 그런 배움들이 나의 발전을 위해 쓰이지 않았다면 난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난 내가 완벽한 선수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머리를 써서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을 간직하고,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릴 줄 아는 선수로 살아왔다. 항상 보고, 듣고, 대화를 하다 보면 많은 지식이 쌓인다. 5툴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내게 야구에 관한 지능이 없었더라면 나머지 5툴은 아무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야구 선수들의 재능이나 신체 조건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하지만 재능만 있다고 선수 생활을 오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머리를 써야 경기를 잘 풀어 나갈 수 있고 더 좋은 선수로 발전할 수 있다.”
2011년 처음으로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가장 꿈꿨던 일이 눈앞에 펼쳤을 때의 기분이 어떠했나.
“사실 그 전 해인 2010년에 올스타에 선정될 줄 알았다(웃음). 당시 한 명의 선수를 고르기 어려워 나 대신 투수가 올스타에 선정됐었다. 물론 그 투수도 훌륭한 선수다. 그러나 올스타 로스터에 관한 규정으로 2010년에 내 이름을 올리지 못한 부분이 아쉬웠다. 그래서 2011년의 올스타 선정이 더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2010년 올스타 로스터는 34명으로 늘었는데 마지막 34번째 선수는 각 리그에서 후보 5명을 선정해 온라인 투표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조이 보토가 선정됐고, 야수가 들어온 상태에서 투수가 필요한 상황이 되자 감독이 앤드류 맥커친 대신 요바니 가야르도를 낙점했다.)
2012년 피츠버그와 6년 장기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계약 내용은 조금 놀라웠다. 6년간 5150만 달러였는데 금액적인 면에서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많았다.
“다른 사람한테는 그 계약 내용이 실망스러움을 안겨줬을지 모르지만 우리 가족을 서포트하기엔 충분한 돈이었기 때문에 전혀 실망스럽지 않았다. 지금도 우리 가족이 먹고 살기에 충분하고, 내 가족의 구성원이 늘어난다고 해도 충분히 많은 돈이다(웃음). 더 많은 금액을 욕심내지 않았다. 난 정말 만족하며 계약서에 사인했다.
만약 돈을 더 받고 싶은 마음에 당시 장기 계약에 사인하지 않았다고 치자. 그 후 내가 부상을 당할 수도 있고, 경기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다음 계약이 더 힘들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적당한 돈을 받고 장기 계약하는 게 선수 생활을 오래 보장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난 그때 피츠버그와 맺은 계약에 만족했다. 장기 계약 덕분에 별다른 걱정 없이 야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더 큰 계약을 했더라면 오히려 부담이 커졌을지도 모른다. 부담이 없었기 때문에 야구에 집중할 수 있었고, 피츠버그가 내게 그런 기회를 줘 참 고맙게 생각한다.”
우익수 자리가 불편했던 맥커친
2013년 피츠버그가 2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가슴이 벅차 오르지 않았나.
“포스트시즌 진출 관련해서 답을 할 때마다 항상 떠올리는 건 21년 동안 피츠버그 팀을 거쳐 간 선수들이다. 어떤 선수는 10년간 피츠버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어도 포스트시즌 진출의 기쁨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당시 포스트시즌 진출을 경험한 건 매우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2013년 포스트시즌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2005년 피츠버그와 계약할 당시만 해도 피츠버그는 강한 팀이 아니었다. 모든 선수들이 함께 노력했기 때문에 포스트시즌을 경험할 수 있었다. 동료 선수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부분이 내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후 내셔널리그 MVP를 수상했다. 투표수 30표 중 무려 28표를 달성했다.
“내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MVP를 수상할지 누가 짐작이나 했겠나. 나도 못했는데(웃음). 메이저리그에는 나보다 훌륭한 선수들이 훨씬 많다. 난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MVP를 수상할 수 있었던 건 우리 팀이 잘 했기 때문이다. 동료들과 코치들 덕분에 나도 주목받을 수 있었다. 상을 받은 건 나였지만 팀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 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2016년 타율과 수비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다. 어떤 문제를 느끼고 있었던 건가.
“2016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팀에선 외야에 변화를 주고 싶어 했었다. 내가 항상 하던 것과 다르게 수비 위치를 파울 라인 선상에서 많이 떨어진 곳으로 잡았다. 솔직히 난 그런 조언이 내키지 않았다. 우리 팀의 투수들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투수들은 투심 패스트볼, 싱커를 강하게 던지는 걸 좋아했다. 그런 공이 제대로 맞으면 멀리 뻗어 나가는 터라 내가 라인에서 멀어진 쪽으로 들어가는 게 걱정됐었다. 하지만 구단은 그런 변화를 원했고, 나도 받아들였는데 수비에서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구단에 돌릴 수는 없다. 무엇보다 난 선수이고 경기에 나가는 건 구단이 아니라 선수이기 때문이다.
타율에 대해선 확실하게 어떤 점이 문제였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2011년의 타율이 .259정도 됐었다. 내가 장기계약을 하기 바로 전 시즌이다. 그런데 아무도 내게 2011년의 타율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웃음). 사람들이 계속 2016년의 타율(.256)을 물어보는 건 내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2016년과 2011년은 숫자로만 봤을 때 별다른 차이가 없었는데 말이다.”
다른 선수들도 종종 비슷한 답을 한다. 그 전에도 부진 한 적이 있었는데 왜 한 시즌에 대해서 물어보느냐고 말이다.
“하하, 잘 하고 있다가 한 번씩 부진하면 그 부진이 더욱 부각되는 것 같다. 몇 시즌 동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그 선수가 항상 잘 할 거라고 믿는다. 그만큼 사람들이 갖고 있는 기대치가 높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게 2016년 성적을 기억하고 그에 대해 더 자주 물어보는 것 같다. 선수들은 항상 발전하려고 노력한다. 당신은 선수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생각하나.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변화의 과정 속에 있는 선수들은 종종 부진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 부분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2017 시즌을 앞두고 포지션을 중견수에서 우익수로 옮겨야 했다. 물론 스탈링 마르테의 개인적인 문제로 우익수에서 다시 중견수로 옮겼지만 처음 우익수에 섰을 때는 그 자리가 굉장히 낯설었을 것 같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중견수로 뛰었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다 보면 그 일이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우익수에 섰을 때 그 자체가 이상해 보였다. 좀 더 솔직히 표현해서 재미없었다. 우익수는 중견수보다 많이 달리지 않는다. 그래서 지루했다(웃음). 중견수를 보면 공이 자주 오기 때문에 방심할 틈이 없었다. 왼쪽, 오른쪽, 중간 지점으로 계속 공이 온다. 그리고 그 공을 받으려고 열심히 달린다. 우익수는 필드 한 쪽에만 신경 쓰면 된다. 라인 드라이브에 다이빙 캐치도 해야 좀 더 재미있게 야구할 수 있는데 우익수에선 그런 재미가 반감됐다.”
그럼 올 시즌에 다이빙 캐치를 많이 하길 바라나.
“너무 많으면 곤란하다. 그럴 기회가 적당히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내 몸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웃음). 샌프란시스코에선 우익수로 뛸 예정이다. AT&T 파크는 구장이 크기 때문에 우익수라도 많이 달려야 한다. 어느 포지션이든 달릴 준비는 돼 있다.”
<로베르토 클레멘테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맥커친. 그는 좋은 야구 선수 이전에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사진=이영미)>
‘좋은 선수’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맥커친
당신의 타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때, 심적 부담으로 괴로울 때, 당신이 찾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나님이다. 나의 힘은 하나님이 주신다고 믿는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힘든 일도 헤쳐 나갈 수 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내가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더라도 즉시 내 자신을 바로 잡을 수 있다. 내가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살 수 있는 것도 믿음 때문이다. 난 살면서 많은 기쁨을 누렸다. 그래서 내 믿음에 감사한 마음뿐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선수가 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당신은 그 성공의 의미를 어떻게 두고 있나.
“나에게 성공이란 의미는 내가 선수 생활을 마쳤을 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는 정말 좋은 야구 선수였다’보다는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로 기억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좋은 사람은 다른 이들의 기억에 더 오래 남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까지 온 선수들 중에서 재능이 없는 선수는 없다. 다들 야구를 잘 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더욱 더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내 롤 모델이 누구인지 아나. 바로 로베르토 클레멘테이다. 그는 정말 훌륭한 야구 선수지만 사람들은 그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한다. 클레멘테는 지진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도우러 가다 사고로 돌아가셨다. 난 그런 그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클레멘테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이야기할 때 눈을 반짝거린다. 클레멘테의 집 문을 노크하면 그는 항상 모든 사람들을 반겨줬다고 한다. 한 번은 아이들 3명이 그의 집 문을 두드렸는데 그는 아이들을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레몬에이드를 만들어주고, 친절하게 야구 카드에도 사인해줬다고 들었다. 그 아이들은 죽을 때까지 그 기억을 간직하고 살았을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스토리인가. 나도 클레멘테처럼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기억되는 게 바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올시즌을 앞두고 많은 선수들이 FA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메이저리그 구단이 돈을 쓰지 않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분명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야구 선수들이 야구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바로 좋은 계약의 기회를 얻기 위함이다. FA가 됐는데 계약을 이루지 못해 꿈이 무산되는 건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다. 다른 스포츠는 선수들에게 장기 투자를 하는 반면 올해 메이저리그에선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채 야구와 동행했던 삶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마무리된다면 매우 슬플 것 같다. 다음 시즌에는 구단들이 좀 더 성숙한 태도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피츠버그에서의 맥커친은 팀 리더로 나이 어린 선수들을 이끌어가야 했다면 샌프란시스코에선 그런 부담을 덜었다고 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피츠버그보다 베테랑 선수들이 많기 때문이다.(사진=이영미)>
베테랑 선수와 젊은 선수를 성장시키는 부분은 공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나. 일부 팀은 젊은 선수에게 기회를 주려고 베테랑 선수에게 희생을 강요하기도 한다.
“난 아직 베테랑 선수가 아닌 것 같다. 어제 루키였던 것 같은데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갔다. 어린 선수였을 때 베테랑 선수들이 지금의 시간을 즐기라고 했는데 그땐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다. 팀들이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선수들도 언젠간 나처럼 본인들의 선수 생활을 돌아보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지금의 순간들을 즐기는 것이다. 나중에 가면 내 이름을 불러주는 팬들도 적어질 것이고 나를 선수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 것이다. 내가 베테랑으로 해야 할 일은 남은 선수 생활 동안 최선을 다 하는 것이다. 베테랑 선수나 젊은 선수나 본인의 의무를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면 함께 큰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에반 롱고리아와 같이 팀에 합류한 느낌은 어떠나.
“에반 롱고리아와 같은 팀에서 뛰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웃음). 샌프란시스코 팀에 내가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내가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라 아주 색다르다. 사람들은 피츠버그 팀을 ‘어린’ 팀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자이언츠는 선수들이 거의 다 베테랑들이다. 다들 골드글러브, MVP, 월드시리즈 타이틀이 몇 개나 있는 선수들이다. 피츠버그에서는 내가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는 역할을 해야 했지만 여기서는 다른 선수들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 다들 베테랑이기 때문에 자신의 의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올 시즌이 기대된다. 다른 선수들을 챙길 필요 없이 나만 챙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까.
피츠버그를 떠날 때는 슬픔이 앞섰다. 그러나 애리조나에서 훈련하며 새로운 환경을 통해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피츠버그가 날 버린 게 아니라 내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줬다고 믿는다. 그래서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