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MLB] '4인 로테이션' 탬파베이의 도전
2006년 조 매든이 부임했다. 2007년에는 짐 히키가 왔다. 그리고 2008년 4월. 에반 롱고리아(사진 왼쪽)가 데뷔했다.
창단 후 첫 10년(1998~2007) 동안 꼴찌 만 9번을 한 탬파베이 레이스는 그 해 10월 기적을 만들어냈다.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탬파베이에는 아무도 없다. 최후의 2인이었던 롱고리아와 히키 투수코치는 각각 고향 팀(샌프란시스코)과 매든 감독의 품(시카고 컵스)으로 떠났다.
지난해 팀 승리기여도(fWAR) 합계가 36.9였던 탬파베이는 스티븐 수자(3.7) 로건 모리슨(3.3) 코리 디커슨(2.6) 에반 롱고리아(2.5) 알렉스 콥(2.4) 제이크 오도리지(0.1) 6명의 이적으로만 호세 알투베(7.5)+코리 클루버(7.3)에 해당되는 14.6(40%)을 잃었다. 모리슨(38개) 수자(30개) 디커슨(27개) 롱고리아(20개)는 팀내 홈런 1~4위 선수들로 또한 홈런의 50%가 사라졌다. 지난해 탬파베이는 홈런 득점의 비중이 밀워키 다음으로 높았던 팀이다.
그렇다고 탬파베이가 리빌딩(또는 탱킹)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탬파베이는 에이스 크리스 아처(fWAR 4.6)와 마무리 알렉스 콜로메(1.2) 중견수 케빈 키어마이어(3.0)를 팔지 않았다. 이들은 트레이드 시장에서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었던 선수들이다. 탬파베이는 마이너 수업을 마친 선수들로 이들의 빈 자리를 채우며 포스트시즌에 도전한다.
그리고 또 하나. 탬파베이는 그동안 남들이 하지 않았던 일을 한다. 6인 로테이션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흐름과는 정반대로, 이미 40년 전에 수명을 다한 4인 로테이션을 시도하는 것이다.
탬파베이에 앞서 같은 모험을 한 팀이 있다. 콜로라도 로키스다. 그리고 콜로라도는 실패했다.
신인 윌린 로사리오(23)가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포수 최고 기록에 해당되는 28개의 홈런을 날린 2012년. 짐 트레이시 감독은 놀라운 발표를 했다. 개막전 선발투수였지만 심각한 부진에 빠진 제레미 거스리(11경기 3승6패 7.02)를 불펜으로 내리면서 그 자리에는 아무도 채워넣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대신 불펜을 한 명 더 늘리고(선발 4명+불펜 8명) 휴식일이 줄어든 선발투수는 한계 투구수를 75구로 낮추는 아이디어였다. (사진. 좌로부터 로사리오/아포대카 코치/거스리)
당시 콜로라도 선발진은 여기 저기서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영화 <2012>의 상황과 같았다. 그나마 불펜은 사정이 나았는데, 어차피 불펜의 과부하를 피할 수 없다면 불펜에 한 명을 더 추가하자는 게 콜로라도의 생각이었다. 더불어 4인 75구 로테이션을 도입하면 두 좌완 유망주 드류 포머란츠(23)와 크리스찬 프리드릭(24)에게는 정상 휴식 후 75구 등판을 맡길 수 있었다(대신 다른 두 명과 불펜에서 올라오는 임시 선발투수들이 3일 휴식 후 등판을 담당했다).
결과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가 될 것이라는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2012 콜로라도 선발&불펜 era 변화(이닝)
4~6월 [선] 6.37 (390.0) [불] 4.14 (289.2)
7~9월 [선] 4.99 (375.0) [불] 4.82 (368.1)
그러나 6월까지 5.42였던 콜로라도의 팀 평균자책점은 4인 로테이션을 쓴 7월 이후 4.91로 좋아졌다(시즌 최종 5.22). 불펜이 나빠진 것 이상으로 선발진이 좋아졌기 때문이었다. 완벽한 실패는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콜로라도의 실험은 더 진행되지 않았다. 불펜의 과부하 문제를 풀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콜로라도의 4인 로테이션은 2003년 보스턴의 집단 마무리 도입과 함께 실패한 도전으로 남았다.
그렇다면 탬파베이는 불펜 과부하의 해법을 찾아낸 것일까. 마지막 비상구를 찾아 헤맸던 콜로라도와 달리, 탬파베이의 실험은 <지친 선발투수보다 싱싱한 불펜투수가 낫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2017 메이저리그 타석별 ops
선발 상대 1번째 : 0.728
선발 상대 2번째 : 0.782
선발 상대 3번째 : 0.805
불펜 상대 1번째 : 0.720
불펜 상대 2번째 : 0.854
2017 선발투수 투구수별 피ops
0.738 [1~25구]
0.746 [26~50구]
0.769 [51~75구]
0.796 [76~100구]
LA 다저스는 지난해 선발 평균자책점 메이저리그 1위 팀이다. 하지만 선발투수를 75구 이하에서 교체한 것이 5번째로 많았다(29회). 평균자책점 29위 신시내티(30회)와 비슷했고 8번밖에 기록하지 않은 애리조나(선발 ERA 3위)와 큰 대조를 이뤘다. 선발투수와 타자의 세 번째 대결을 최대한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도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4회까지 7K 1실점으로 호투한 리치 힐을 투구수 60개에서 교체했다. 휴스턴의 5회초 타자들이 세 번째 타석에 등장하는 조지 스프링어-알렉스 브레그먼-호세 알투베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저스는 마무리 켄리 잰슨이 9회 마윈 곤살레스에게 동점 솔로홈런을 맞았고, 5개의 연장 이닝 홈런을 주고 받은 끝에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했다. 시리즈의 가장 큰 변곡점이었다.
힐의 조기 교체는 결과적으로는 다저스의 패착이 됐다. [마에다+왓슨]과 [모로+잰슨] 사이에 1이닝이 비게 된 다저스는 7회초에 올린 스트리플링이 선두타자 볼넷을 내주자 모로를 일찍 투입했다. 그리고 이는 8회초 모로의 선두타자 2루타 허용과 잰슨의 조기 투입, 한 점 차로 쫓기는 실점으로 이어졌다. 반면 휴스턴 A J 힌치 감독은 잘 던지고 있는 투수에게는 손을 대지 않았다. 단기전에서 휴스턴은 투수의 책임감을, 다저스는 숫자를 믿었다.
그러나 장기 레이스인 정규시즌에서는 다저스의 접근법이 틀리지 않다. 선발투수들은 완급조절이 가능했던 전보다 더 빨리 지친다. 이어서 올라올 투수들은 전보다 더 뛰어나다. 문제는 선발투수를 빨리 내리면 그만큼 불펜의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탬파베이의 해법은 보통 팀 당 한 두 명인 멀티 이닝 릴리버를 불펜에 더 많이 배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문제가 있다. 멀티 이닝이 가능한 투수를 늘린다고 불펜 이닝의 총량은 줄지 않는다. 또한 <2이닝 후 하루 휴식>은 1이닝 연투보다 불펜 운용을 어렵게 만든다.
이에 탬파베이는 선발을 네 명으로 줄이고 불펜을 8명으로 늘리는 대신 2012년의 콜로라도와 달리 5선발 경기를 불펜에 맡기기로 했다. 대체 선발이 마땅치 않을 때나 사용했던 불펜 이어던지기를 상설화하겠다는 것이다.
즉 5경기 중 네 경기가 <선발 5이닝+멀티 이닝 릴리버+8회 셋업+마무리>의 형태라면(에이스인 크리스 아처는 그 중 한 경기에서 불펜 소모를 줄여줄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 한 경기는 셋업맨이 나오기 전까지를 멀티 이닝 릴리버들이 책임진다. 이 경우 불펜 과부하를 피하면서도 선발투수의 빠른 교체가 가능하다.
2012 콜로라도(선발 4명, 불펜 8명)
1경기 - 1선발
2경기 - 2선발
3경기 - 3선발
4경기 - 4선발
5경기 - 1선발
6경기 - 2선발
2017 탬파베이(선발 4명, 불펜 8명)
1경기 - 1선발
2경기 - 2선발
3경기 - 3선발
4경기 - 4선발
5경기 - 불펜 이어던지기
6경기 - 1선발
탬파베이가 이런 실험에 나설 수 있는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메이저리그는 올해부터 팀당 휴식일이 나흘 더 늘었다. 187일 시즌을 치름으로써 5선발 경기가 더 줄었다(탬파베이는 22경기 전망). 지난해부터 도입된 10일짜리 부상자명단은 선수층이 풍부한 팀에게는 로스터를 늘려준 효과를 내고 있다. 이 역시 멀티 이닝이 가능하며 아직 마이너 옵션이 남은, 즉 콜업/강등이 자유로운 선발 출신 유망주를 대거 거느리고 있는 탬파베이에게 유리한 부분이다.
하지만 선발투수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 멀티 이닝 릴리버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불펜에서 길게 던질 수 있으려면 좌우타자를 가리지 않아야 한다. 불펜 투수에게도 서드 피치의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뉴욕 메츠의 감독이 된 미키 캘러웨이가 클리블랜드 불펜의 가장 큰 성공 요인으로 든 것도 '우타자에게 강한 좌완' 앤드류 밀러와 '좌타자에게 강한 우완' 브라이언 쇼'의 존재였다(캘러웨이 역시 선발투수 보호를 위해 멀티 이닝 릴리버의 발굴과 적극적인 대체 선발 활용을 예고했다). 이는 오클랜드가 2이닝 전문 투수 유스메이로 페티트(33)에게 2년 1000만 달러 계약을 전광석화처럼 안긴 이유다.
크리스 아처(29) 네이선 이볼디(28) 블레이크 스넬(25) 제이크 파리아(24)가 현재 고려 중인 네 명의 선발투수인 탬파베이는 알렉스 콜로메(29) 다니엘 허드슨(31) 댄 제닝스(30) 서지오 로모(35)를 제외한 네 자리 정도를 멀티 이닝 릴리버들로 채울 전망이다.
과연 탬파베이의 시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 탬파베이의 모험이 혁신이 된다면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는 큰 지각 변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아니 메이저리그에는 엄청난 변화의 물결이 몰려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