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코어 [야큐 리포트] 이치로의 고뇌, 이치로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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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로가 시애틀 매리너스에 복귀했다. 달리 표현하면,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17년을 뛴 44세의 선수가 1년 더 그 기회를 얻게 됐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뉴욕 양키스에서 마이애미 말린스에 입단할 무렵으로 기억한다. 좀처럼 계약이 정해지지 않을 때, 그는 자신을 “애완 동물가게에서 너무 커져, 사려는 사람이 없는 개와 같은 존재”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자존심이 세고, 결코 부정적인 면을 보이지 않는 그답지도 않은, 매우 자학적인 비유였다고 기억하고 있다. 이번에도 어느 모임에서 마이크를 잡았을 때, 그는 같은 비유를 하며 아직 계약이 결정되지 않은 자신의 처지를 나타냈다.

말린스를 나와 그다음 목적지로 매리너스가 정해지기까지 약 3개월간. 과연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번 비시즌은 비정상이라고 할 정도로 “계약이 늦은 비시즌”으로 말해진다. 그러므로 이치로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계약 협상이 어떻게 전개되어 갈지, 그런 흐름조차도 추측하기 어려웠다. 기본적으로 계약 협상은 대리인에게 맡기는 것이므로,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도 대리인을 통해서만 엿볼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는 초조함, 안달, 혹은 체념.

이번에 있었던 매리너스 기자회견에서 언론매체가 “자신의 야구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라고 질문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저 자신은 태연한 상태였다고 생각합니다. 태연하다는 것은 제가 선수로서도 인간으로서도 항상 유지하고 싶은 상태, 지향해야만 하는 상태. 그런 저 자신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기뻤습니다.”

- 마음 상하지는 않았는가?

“상심한 것과 같은 상태라면 태연하게 있을 수는 없지요. 그렇다는 것은 그렇지는 않았다는 거죠.”

태연이란, 사전에 따르면 “차분한 상태라서 매사에 놀라지 않는 모습”이라고 한다. 메이저리그 구단과의 협상이 잘 안 되더라도, 결코 초조하거나 안달하지 않고 차분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런 의미일 것이다. 이 대답이, 얼마큼 그의 본심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결과가 좋았으니까 여유를 보인 것으로도 생각된다(기본적으로 언론매체를 대상으로 한 기자회견에서 속내를 말할 필요도 의무도 없다).

새해가 되고 중순 무렵의 일이었다. 미일 언론매체에서는 “메이저리그 전 구단과 협상한 결과, 기분 좋은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멕시칸리그에 갈지도 모른다”라든지, “메이저리그가 안 된다면 일본 야구계에 복귀하는 것도 선택지 가운데 하나”라고 대리인이 말한 적도 있다. 2월이 됐을 무렵에는 이제 “마이너리그 계약이나 일본 복귀”라는 견해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얼마큼 태연한 상태로 있을 수 있었을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이 이치로의 뛰어난 점일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 일반인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이치로는 자신의 현재 능력에 대해 전혀 불안이나 걱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록 44세라도, 출장할 기회만 주어진다면, 그에 걸맞은 결과는 낸다. 그런 자신은 틀림없이 있었다.

그렇기에 기다릴 수도 있었다.

아마… 이것은 가정이지만, 만약 이 시기가 되어서도 메이저리그 구단의 제안이 없었다면 그는 은퇴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항상 말해온 일본 야구계에 복귀하는 것은, 실은 그의 마음속에는 전혀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그를 잘 아는 사람일수록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한다. 메이저리그에서 정점에 선 자가 아무리 야구가 하고 싶다고는 해도, 이제 일본 야구계에는 돌아올 수 없다.

예를 들면 만약 돌아왔다고 하자. 물론, 야구계가 발칵 뒤집힐 정도로 북새통을 이룬다. 스프링캠프, 시범경기, 그리고 시즌 개막 모두 이치로가 이야깃거리를 독점한다.

개막 후, 쭉 활약을 이어가면 괜찮다. 하지만 아무리 이치로가 뛰어나더라도, 일본 야구계의 수준도 그렇게 낮지는 않다. 그 결과, 한 시즌 동안 100경기 안팎의 경기에 출장해 타율 2할 8푼 정도를 기록해서는, 메이저리그에서 이치로가 거둔 빛나는 실적에 먹칠하게 된다. 그런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이치로가 가장 바라지 않을 것이다. 감독설도 마찬가지다. 막연히 감독이라는 자리에 관심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유니폼을 입은 순간, 12개 구단의 감독 가운데 한 명이 된다. 시즌에서도 1위로 독주를 펼치면 괜찮지만, 패배가 이어질 때도 있다. 그렇게 되면 좋든 싫든 감독에게 비판이 집중된다. 과연 이치로는 그런 처지가 되어서도, 벤치에서 지휘하고 싶을까. 아마 대답은 ‘아니오’다.

그렇기에 그는 현역을 고집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만약 감독 등 지도자에 관심이 있다면, 오히려 일찍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그 길을 공부하는 편이 나으니까.


 
이치로는 일생 현역을 원하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이번의 기자회견에서도 “적어도 50세까지는 뛰고 싶다”고 말한 데는 거짓도 과장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비시즌의 계약이 정해지지 않았을 때, 태연하다면서 초조함을 부정한 시기,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뒷이야기로는, 비시즌이 시작됐을 때부터 매리너스의 GM은 이치로에게 관심을 나타내며, 대리인과는 빈번하게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정말로 영입하고 싶었다면, 좀 더 일찍 계약을 맺었을 것이다. 스프링캠프에 들어간 뒤, 주전 외야수가 다쳐 이치로가 필요해졌다. 말하자면 이치로에게 긍정적인 상황이 생긴 것이다. 우발적인 제안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생각한다. 정말로 태연하게 시기를 기다릴 수 있었냐고. 어쩌면 메이저리그 생활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르는 그런 시기에.

애리조나에서는 이치로가 매리너스의 유니폼을 입고 선수들과 웃으면서 대하는 모습이 TV나 신문에 나오고 있다. 거기에는 고뇌는커녕 태연하게 기다리고 있었을 때의 이치로 표정은 없다.

1년 더, 적어도 이제 1년은 더 현역으로 뛸 수 있다는 기뻐하는 표정이다.

그의 고뇌는, 우리 일반인은 헤아릴 수도 없다. 그러므로 기쁨 역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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