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내년엔 딱 5등만” 구단보다 힘들었던 한화 대전구장 주변 상인들

[BO]스포츠 0 932 0



지난 23일 한화생명 이글스파크가 자리잡은 대전시 중구 부사동. 그라운드는 마무리 캠프 중인 선수들의 함성소리로 시끄럽지만 야구장 앞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조용하다. 어쩌면 당연하다. 시즌만 되면 설렘을 안고 야구장을 찾는 인파는 보통 11월부터는 종적을 감춘다. 야구장 앞 치킨집, 김밥집, 조그만 식당들도 덩달아 ‘동면’을 준비한다.

그러나 올해의 야구장 주변 상권은 그저 ‘동면기’에 접어든 게 아니다. 너무도 길고 혹독해 ‘빙하기’라는 표현이 더욱 어울린다. 연 초부터 창궐한 코로나19는 야구장 인근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지난 5월 개막 이후 7월말까지 무관중 경기가 이어졌다. 이후 관중 입장도 제한적이었다. 어렵게 야구장을 찾은 관중들조차 식당에 발을 들이길 꺼려했다. 야구장 주변상권은 ‘뉴 노멀(New Normal)’이라는 변화에 직격탄을 맞았다.

이글스파크는 1964년 개장했다.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와 비교해도 다섯 손가락에 들 정도로 오랜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1986년 빙그레로 창단해 34년째 한화가 홈으로 쓰고 있는 구장은 현재 KBO리그 10개 구단 중 가장 오래됐다. 오랜 역사는 오랜 이야기와 함께 했다. 이제 대전의 구도심으로 물러나 있는 중구 부사동이지만 야구가 있어 오랫동안 북적였다.

야구장 오른쪽 쪽문을 나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나오는 중화요리점 ‘동춘원’의 사장 이태우씨(65)는 2012년 이곳에 터를 잡았다. 빙그레가 창단하던 그해 1986년, 중구 목동의 형님집에서 함께 일하며 중화요리를 익혔다. 오랜 수련 끝에 독립해 부사동 거리에 정착했다. 시즌 때면 안방까지 32석의 자리가 가득 차는 게 일상이었다. 한화의 팬들을 물론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의 발걸음 속에 어느새 거리의 터줏대감이 됐다.

코로나19의 맹습은 준비없이 올라갔다 난타 당하는 신인투수의 심정처럼 갑작스러웠다. 뉴스가 많아지던 2월을 지나 3, 4월이 되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인건비 문제로 배달을 하지 않다보니 매출은 한화의 승률처럼 깎여나갔다. 2018년 승률 0.535의 한화가 올시즌 0.326로 주저앉았듯 40%의 매출이 사라졌다. 무엇보다 이 한파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두려운 상태다. 많을 때는 70여개였던 동네 가게는 40여개로 줄었다.

이씨는 김성근 감독이 한화를 맡았던 2015년쯤을 떠올렸다. 그는 “성적이 좋을 때는 1만 여 명의 입장객이 모두 찼다. 그러면 가게에도 200명씩 찾아왔다. 모든 테이블이 보통 7차례 이상 로테이션 될 정도였다. 경기 전 3시간 전을 시작으로 경기 이후에도 홀이 꽉꽉 들어차곤 했다”고 말했다.



동춘원에서 나서 오른쪽 사선을 보면 커피전문점 ‘커피체리’가 보인다. 이곳을 운영하는 백계영씨(45)는 부사동에 온지 2년 반이 됐다. 원래 야구장 인근은 자동차 특화거리로 조성됐다. 자동차의 각종 액세서리나 내비게이션, 블랙박스 등을 파는 가게가 늘어서있다. 2교대 생산직 근로자였던 백씨는 늦기 전에 가게를 운영해보고 싶어 원래 자동차 용품점이던 터에 커피전문점을 차렸다. 백씨 역시 혹독한 한 해를 피하지 못했다.

마침 그가 처음 장사를 시작한 해는 2018년 한화가 가을야구에 나섰던 때였다. 야구장 앞에서 장사를 하면 원래 이렇게 손님이 많은 줄 알았다. 많을 때는 2~3시간 안에 150명이 넘는 손님이 다녀갔다. 한 달에 매출 1000만원이 잡혔다. 코로나19가 닥치고 한화의 성적까지 추락하자 매출이 10분의 1로 줄었다. 백 사장은 급기야 시즌 중반으로 접어들면서는 오전 10시 매장 오픈에서 앞서 잠시라도 돈을 벌기위해 새벽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심야 특타를 하는 타자들처럼 그 역시 뭐라도 해야 했다.

야구장 앞에서 장사를 시작했지만 야구는 잘 몰랐다. 그저 길 건너편 야구장에서 함성소리가 나면 무언가 좋은 일이 있는 줄로 알았다. 그 함성도 이제 사라진지 오래다. 대신 선수들이 가게를 자주 찾아준다. 정은원과 최재훈이 자주 온다. 송광민, 정우람, 오선진 등도 왔다. 얼마 전 김태균이 은퇴했을 때는 팬들의 부탁으로 매장 앞에 김태균을 격려하는 플랜카드를 걸어 뉴스에 등장했다.

동춘원 사장 이씨에게 “장사를 접을 생각은 없었냐”고 물었다. “지금은 아니지. 그래도 내년도, 내후년도 이러면 모르지”라는 대답이 희미한 미소와 함께 돌아왔다. 그래도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 가게를 찾았던 선수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쑥스러워 가게 안에 싸인이나 사진을 붙이지 않았지만 시골에서 야구를 보러 올라오는 학생, 어린이들에게는 몰래 싸인공를 받아뒀다 챙겨주곤 했다. 선수들이 아들 같기도 하다. 스물 다섯살 된 투수 김민우의 이야기를 했다. “민우는 덩치는 큰데 너무 착해. 반찬이 모자라면 더 달라는 이야기도 잘 못하는 아이야”라며 웃었다. 배달은 안 했지만 선수들이 찾으면 별개였다. 30개씩의 요리를 카트에 담아 라커룸으로 나르는 날도 많았다. 그것도 올해는 한 번, 야구장 입구까지 전하는 게 전부였다.

커피체리 사장 백씨 역시 많은 이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느새 얼굴이 익숙해진 단골 팬들, 선수들도 가끔 라커룸으로 배달을 주문하기도 했다. 선수들은 동생 같았다. “잘 먹고 갑니다”라는 한 마디에 시름이 녹곤 했다. 물론 먹고 살아야 한다면 가게를 접을 수도 있었다. 허나 새로 취직을 하기엔 나이가 적지 않았다. 고3, 중3인 자녀들도 떠올랐다. 지금까지 버틴 시간이 아까워 가족들의 힘으로 남은 파고를 넘고 싶다.

“딱, 5등만 했으면 좋겠네.”

이씨, 백씨의 소망은 비슷했다. 올해 꼴찌를 한 한화가 내년엔 딱 10개팀 중 절반 안에 드는 일. 그래서 가을야구에라도 나갈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물론 성적이 매출과도 이어져있지만, 어느새 이들의 일상은 코로나19의 확산세 그리고 야구와 운명공동체가 됐다.

야구는, 이렇게 야구장 밖에도 있다. 이들은 스프링캠프에 구슬땀을 흘리는 선수처럼 개막을 준비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매일 저녁 판매전표를 보는 일이 고됐다. 연패에 빠진 감독이 선발 라인업을 고민할 때만큼 입술이 말랐다. 떨어지는 타격감처럼 매출은 떨어지고, 루틴을 깨는 불면의 밤은 늘었지만 어제 열렸고 오늘도 다시 열리는 야구경기처럼 삶은 그대로다. 야구장이 풍파를 거치며 56년을 견딘 것처럼, 그들은 그렇게 견디려 한다.

어쩌면 야구장의 밝은 조명과 큰 함성이 가려 자세히 봐야만 살필 수 있는 골목골목의 작은 희망들이다. 이씨는 “조금만 버티면 예전 좋았던 그 시절로 분명히 돌아갈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을 열심히 산다면 내일은 결국 온다”고 했다. 야구가 그리웠던 관중들과 관중의 함성이 그리웠던 선수들 그리고 야구장의 활기찬 분위기가 너무나 아련한 전국 10개 구장 인근 상인들에게 또한 어쩌면 야구를 좋아하는 모두에게, 그들은 위로를 건넨다.

백씨는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돼서 마스크를 벗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관중들도, 선수들도, 상인들도 모두 즐거운 시간이 꼭 왔으면 한다”고 했다. ‘동춘원 사장님’ ‘커피체리 사장님’의 2020시즌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야구는 다시 봄을 기다린다. 야구와 함께 하는 모두의 마음도 그렇게 다시 움트는 희망의 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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