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우진 ‘마구’ 160km, 그 괴물 같은 진화의 비밀 [정철우의 애플베이스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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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우진(20·키움)은 KBO리그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다. 올 시즌 평균 구속 151.3km로 전체 1위에 올라 있다.
지난 17일 두산전서는 전광판에 160km를 찍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구속은 원래부터 공인 구속이라는 것이 따로 없다. 스피드건이 놓이는 위치나 순간 반응에 따라 측정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안우진의 160km를 KBO리그 최고 구속으로 여겨도 손색이 없는 이유다.자료=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안우진이 원래부터 이 정도 구속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파이어볼러 중 한 명이었지만 지난해보다 구속이 상승했다. 더불어 성적도 탄력이 붙고 있다.

안우진은 지난해 평균 구속 147km를 기록했다. 올 시즌엔 이 구속이 5km가까이 더 빨라진 것이다.


지난해엔 150km가 넘는 광속구 비율이 20%였지만 올 시즌엔 92%로 크게 높아졌다. 그만큼 빠른 공을 많이 던지고 있다는 뜻이다.

우선 안우진이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이 빠른 구속을 갖게 됐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안우진은 MK스포츠와 인터뷰서 “지난겨울 익스텐션(투구 때 발판에서 공을 끌고 나와 던지는 손끝까지 거리)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 전에 익스텐션이 너무 짧아 체감 구속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최대한 공을 앞으로 끌고 나와 던지려고 노력했고 그 노력이 결실을 맺으며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안우진은 올 시즌 익스텐션이 지난해보다 훨씬 길어졌다. 지난해 기록된 안우진의 익스텐션은 1.67였다. 올 시즌엔 이 길이가 1.80m까지 길어졌다. 투구 폼 자체에 큰 변화가 생겼음을 뜻한다.

익스텐션이 길어지며 릴리스 포인트는 자연스럽게 낮아졌다. 타점을 낮추는대신 공을 더 끌고 나와 때리는 방식으로 변화를 꾀한 것이다.



지난해 안우진의 릴리스 포인트 높이는 179.5cm였다. 그러나 올 시즌엔 173.5cm로 6cm가량 높이가 낮아졌다.
중요한 건 좌·우 릴리스 포인트다. 패스트볼을 던졌을 때 –34.8cm였던 것이 –24.1cm로 옮겨졌다. 팔 각도가 좀 더 왼쪽으로 움직였음을 뜻한다. 무려 10cm나 바뀌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릴리스 포인트의 높이는 낮아졌지만 공을 좀 더 오버핸드 스로에 가깝게 팔 놓는 위치를 변경하며 타점을 유지했다는 뜻이 된다.

실로 괴물같은 진화가 아닐 수 없다. 구속을 끌어올리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안우진처럼 빠른 공을 던지던 투수가 더 빠르게 던지게 되는 일은 더욱 흔치 않다. 안우진은 투구폼의 변화를 통해 그 어려운 걸 해냈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이룬 변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다.

그렇다면 안우진이 던지고 있는 광속구는 얼마나 위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

안우진의 패스트볼은 일단 피안타율이 크게 떨어졌다.


지난해보다 7%가량 구사율이 늘어날 정도로 패스트볼에 자신감이 붙었고 피안타율은 0.347에서 0.243으로 1할 이상 떨어졌다. 피OPS는 0.968에서 0.673으로 드라마틱하게 떨어졌다. 헛스윙을 유도하는 비율도 12%에서 21%로 껑충 뛰어올랐다.

단순히 공만 빨라진 것이 아니라 제구가 되는 공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와 올 시즌의 150km 이상 패스트볼의 로케이션을 쫓아가 봤다. 결론은 안우진의 광속구가 제구까지 등에 업고 있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 시즌 그래픽을 보면 빨간 점들이 스트라이크 존 안쪽으로 촘촘하게 박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시즌 150km가 넘는 공들은 하이 패스트볼이 되는 비율이 높았다. 타자가 속지 않으면 볼이 되는 공이 많았다. 올 시즌은 다르다. 스트라이크 존 안쪽에 형성되는 공의 비율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공이 빨라지고 구사 비율이 늘었는데 존으로 공격적으로 들어오는 공까지 늘어났기 때문에 타자들이 쉽게 공략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안우진의 패스트볼은 손대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지고 힘이 붙었다. 아직 155km가 넘는 공은 단 한 개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았다.자료=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155km가 넘는 공의 구사 비율은 12%로 높게 형성돼 있는데 아직 이 공은 안타를 맞지 않았다.

타자들은 안타는커녕 인플레이 타구를 만드는 것 조차 어려워 했다.


155km가 넘는 광속구의 인플레이 타구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관계자는 “2020시즌 안우진이 던진 155km 이상 패스트볼은 총 36구로 단 한 개의 피안타도 맞지 않았다. 타자들은 안우진의 155km 이상 패스트볼을 상대로 인플레이 타구조차 단 5개를 만들어내는데 그쳤으며, 그마저도 땅볼과 얕은 플라이가 전부였다. 타자들은 안우진의 155km 이상 패스트볼을 정타로 맞추기 어려워했는데, 이는 나머지 투구 결과에서 파울과 헛스윙의 비중이 눈에 띄게 높은 점에서도 드러난다”고 해석했다.

타자들이 칠 수 없는 광속 패스트볼은 모든 투수의 로망이다. 타격의 달인 양준혁(현 MBC스포츠 플러스 해설위원)은 “투수가 던지는 공 중 최고의 마구는 빠른 공”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무나 손에 넣을 수 없기에 더욱 갈망하게 되는 존재가 바로 광속구다. 안두진은 그 어려운 일을 불과 몇 달 만에 해냈다. 나름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에서 한국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됐다.

그가 던진 ‘마구’ 160km는 땀과 노력, 그리고 타고난 재능이 더해져 만들어진 결과다. 더 무서운 건 아직 안우진의 진화가 끝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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