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 은퇴 이후' 벤투호 빌드업 실험, 변형 스리백의 디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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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고양] 유현태 기자= 벤투호는 빌드업에 공을 들인다. 이번 2연전에서는 몇몇 실험을 진행하며 세밀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 축구 A대표팀은 12일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0 하나은행컵' 2차전에서 올림픽대표팀을 3-0으로 이겼다. 결국 A대표팀이 1,2차전 합계 5-2로 승리하며 형님의 체면을 살렸다.

벤투호를 둘러싼 화두 가운데 하나는 '빌드업'이다. 빌드업 자체가 목적은 아니나, 경기를 운영하는 중요한 요소다. 지나치게 패스가 많아 속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후방부터 공이 예쁘게 나가지 않으면, 저항이 거세지는 전방에선 완성도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파울루 벤투 감독의 지향점은 세밀한 빌드업에 더해 빠른 공격을 펼치는 것이다. 벤투 감독은 "경기 템포가 느린 걸 선호하지않는다. 빠른 패스 플레이로 상대 조직을 깨뜨리길 원한다. 빠르게 문전에 도달하는 게 목표지만 수비가 갖춰져 있으면 2,3번 패스로 문전으로 갈 순 없다, 그래서 볼을 소유하는 것이고, 선수들이 움직임으로 공간을 창출하고 빈곳을 만들기 위해 점유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진 완성도가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벤투호는 실험을 마다하지 않고 빌드업의 질을 높이려고 노력한다.



이번 2연전에서 벤투 감독의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 포메이션 변화는 물론, 선수들의 기본 위치까지 조정하며 빌드업 전술을 실험했다. 해외파 선수들이 없지만 분명 벤투 감독에겐 의미 있는 시도였다.

김학범호는 적당한 평가전 상대였다. 전력상 벤투호가 우위에 있지만, 김학범호는 많이 뛰는 스타일에 수비 조직력도 강하다. 중앙을 단단히 지킬 줄도 안다. 벤투호가 아시아 무대에서 종종 상대하는 '밀집 수비', '빠른 역습' 등을 수준 높게 재연해줄 수 있었다. 덕분에 벤투호 역시 의미 있는 실험이 가능했다.

1차전 벤투 감독은 4-1-4-1 포메이션을 세웠다. 수비형 미드필더 '1'의 위치엔 손준호를 기용했는데 빌드업에서 키플레이어였다. 손준호는 기본적으로 중원에서 움직였지만, 권경원-원두재 두 센터백 사이로 내려갈 때 전술적 효과가 뚜렷했다. 손준호 덕분에 원두재와 권경원이 좌우로 벌려설 수 있게 됐고, 측면 수비수 이주용과 김태환은 최후방 빌드업에 관여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포진했다. 수적 우세로 김학범호 투톱의 압박에도 더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손준호가 빠진 중원은 한승규, 이영재가 채웠다.

풀백들이 전진한 효과는 상대를 좌우로 빠르게, 크게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지적된 '속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손준호는 단번에 좌우로 열어주는 긴 패스가 좋고, 원두재와 권경원 역시 롱킥을 포함해 패스가 좋은 선수들이다. 전반 14분 이주용이 왼쪽 측면을 허물고 득점한 것은 우연은 아니었다고 봐야 한다.

빌드업이 잘 풀린 전반까진 수비적으로도 괜찮았다. 공이 전방으로 연결되면 최후방까지 물러났던 손준호는 다시 중원으로 올라왔다. 한승규-이영재라는 두 공격적인 미드필더들의 뒤를 받쳐줬다. 손준호는 요소요소에서 몸으로 부딪히고, 반칙까지 동원하며 김학범호의 역습 속도를 눌렀다. 소속팀인 전북 현대에서 이번 시즌 보여줬던 수비력은 대표팀에서도 비슷했다.



후반전 공격이 잘 풀리지 않자, 김학범호의 역습에 고전하며 내리 2실점했다. 벤투호가 빌드업에 공을 들이는 이유를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2차전에선 유사하지만 다른 디테일을 갖고 후방 빌드업을 전개했다. 벤투 감독은 2차전을 앞두고 "팀을 만드는 과정은 항상 있다. 언제나 뭔가 채워야하고 개선해야 한다. 일단 기본적인 큰틀을 잡아놓고 소폭의 변화를 줄 수 있을 때를 찾고 있다. 이번에도 그런 과정에서 실험을 한 것"이라며 실험을 예고한 바 있다.

벤투호는 4-2-3-1에 가까운 형태로 경기에 나섰다. 주세종이 권경원과 김영빈 사이로 내려가 숫자를 늘려주는 임무를 주로 맡았다. 손준호는 그 앞에 남아서 공을 받았다. 변형 스리백에 수비형 미드필더가 하나 남아 있는 형태였다. 상황에 따라 손준호와 주세종이 임무를 바꾸기도 했다. 여전히 풀백들은 높은 위치까지 전진했다.

허리에 손준호와 함께 주세종까지 배치해 후방에 숫자가 하나 늘어나긴 했지만, 오히려 공격적으로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빌드업에 안정을 꾀한 덕분에 공격 2선이 후방까지 내려올 필요 없었다. 수비적으로도 손준호 한 명을 배치할 때보다 안정감이 높았다. 대신 공격 2선은 이동준, 이동경, 김인성으로 빠르고 활동량이 많은 선수를 배치해 '공격 전환'에 신경을 썼다. 손준호와 주세종 모두 롱패스가 좋아 공격 방향을 빠르게 바꿀 수 있었다. 풀백들이 전진하면서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진 않았다.



후반 10분 결승골도 빠른 전환에서 나왔다. 손준호가 공을 끊어내자 전방에 머무르던 이동준이 전방으로 튀어나갔다. 손준호의 정확한 롱패스 한 번으로 김학범호의 수비 뒤를 공략했다. 이동준의 돌파에 이어 이동경이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빌드업에 대한 고민은 지난 10여 년 중원을 책임졌던 기성용의 은퇴와 맞물려 있다. 기성용의 존재감은 공수 양면에서 대체불가다. 2019년 아시안컵을 마친 뒤 은퇴를 선언해 벤투호는 기성용의 후계자를 찾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벤투 감독도 "기성용이 은퇴를 했고, 눈여겨봤던 좋은 옵션은 장현수였는데 다른 이유로 팀에서 제외됐다. 많은 조합들을 생각했다. 정우영, 주세종, 손준호까지 지켜보고 있다. 손준호는 지난해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에서 뛰었다. 기본적으로 그 포지션을 잘 해줄 수 있는 자질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러 선수를 두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완전히 같은 선수가 존재하지 않는 만큼 기성용이 했던 임무를 그대로 해줄 선수도 없다. 비슷한 위치에서 뛰더라도 다른 특성과 장단점이 있다. 벤투 감독으로선 각각의 선수를 고려해 전술을 조합하는 것이 필요했다. 손준호는 이번 2연전에서 모두 풀타임 활약했고, 각기 다른 임무를 맡아 전술적 활용도를 평가받았다. 벤투 감독은 "(손준호는) 기본적으로 그 포지션을 잘 해줄 수 있는 자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1,2차전에 다른 포메이션, 전술로 경기를 했기 때문에 손준호의 임무에도 변화가 있었다. 기본적으론 기성용과 다른 유형의 선수라고 보고 있다. 같은 포지션의 선수도 똑같을 순 없다. 하지만 손준호가 지금까지 보여준 경기력에 만족한다. E-1 챔피언십에서 활약이 좋았고, 이번 소집 때도 좋은 활약을 했다. 지켜볼 것이라는 의미라고 한다면 그래야 할 선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두재 활용 역시 실험에 가깝다. 소속팀 울산 현대에선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지만 중앙 수비수로 기용됐다. 하지만 분명 수비력보단 패스 전개에 무게를 두고 활용했다. 손준호가 후방으로 물러난 덕분에 원두재는 중앙에서 조금 벗어난 위치에 설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압박 강도가 약했고, 원두재는 비교적 자유롭게 전진도 가능했다. 중앙 지역에서 순간적으로 패스길을 찾거나, 단번에 방향을 전환하는 패스는 '미드필더' 원두재의 장점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11월엔 팀의 주축인 유럽파를 포함해 평가전에 나선다. 멕시코와 경기가 확정됐고 서아시아 지역 팀과 경기도 추진되고 있다. 벤투호가 김학범호와 2연전에서 얻은 성과가 11월에 연결될 수 있을까. 기성용 은퇴 이후 이어졌던 수비형 미드필더와 빌드업에 대한 고민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았다면, 이번 2연전은 벤투호엔 말 그대로 '스페셜매치'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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