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이병철·이건희 회장의 골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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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 마지막 라운드했던 호암
범삼성가 골프 사랑에 영향 끼쳐
사업보국 차원 접근 이건희 회장
한국골프 기여 호암도 흡족할 것



33년 전인 1987년 이맘때다. 안양 컨트리클럽에 차를 마시러 왔던 호암 이병철 삼성 회장은 즉흥적으로 라운드에 나섰다. 오후 늦게 시작해 3번 홀을 마칠 때쯤 땅거미가 내렸다. 골프장에서는 카트와 자동차 등의 헤드라이트를 켜 페어웨이를 밝혔다. 이 회장은 6개 홀을 돌고 클럽하우스로 돌아왔다. 약 이십일 뒤에 세상을 떠났다.


투병 중이던 말년에 호암은 골프장을 찾아 차를 마시곤 했는데, 클럽하우스 밖 잔디가 누렇게 변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O. 헨리의 소설 『마지막 잎새』에서처럼, 맏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아버지를 위해 그린에 초록 페인트를 칠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골퍼의 관점에서 볼 때 호암의 마지막은 드라마틱했다. 골프 사랑이 대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만든 안양컨트리클럽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자신의 몸처럼 아꼈다고 전해진다.

호암의 영향으로 삼성가 일원은 어릴 때 골프를 배웠고, 다들 골프를 좋아했다. 여자 프로가 생기기 전, 이 회장 딸들은 한국 여자골프의 주요 인물이다. 한국 최초의 여자 골프대회는 1976년 열린 부녀 아마선수권이었다. 삼성 이인희, 명희 자매와 김우중 전 대우 회장 부인 정희자씨, 국화정, 조동순씨 등이 주름 잡았다.

이인희 고문은 2회(1978년) 3위, 4회(80년) 2위, 5회(81년) 3위에 올랐다. 그는 강원 원주 오크밸리에 아시아 최고 코스를 만들려고 했다. 완공하지 못했지만, 미국 밖에서는 거의 일을 하지 않던 탐 파지오에게 설계를 맡겼다. 이명희 신세계 그룹 회장은 이 회장을 닮아 ‘리틀 이병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버지가 안양 골프장을 만들 때 함께 보냈던 시간이 많았고, 함께 라운드하는 걸 즐겼다고 한다. 럭셔리하기로 손꼽히는 트리니티 클럽을 만들었다.

장손주인 이재현 CJ 회장은 스케일이 크다. LPGA 투어 대회인 나인브릿지 클래식을 한국에서 처음 열었다. PGA 투어 정규대회 더 CJ컵도 총상금 100억원이 넘는 규모로 개최하고 있다. CJ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한국의 유망한 남자 선수들이 PGA 투어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처럼 범(凡)삼성가는 한국 골프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범삼성가의 최고 명문 프라이빗 골프장 경쟁도 치열한 것 같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그 역시 골프를 좋아하고, 잘했다고 전해진다. 한장상 전 프로골프협회 회장은 “나보다 드라이버샷 거리가 더 나갈 때도 있었다”고 전했다. 직원들에게 골프의 정신을 강조했다. 삼성도 명문 안양 골프장을 가지고 있지만, 최고 골프장 경쟁을 하려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호암이 강조한 두 개의 축 가운데 ‘제일주의’보다 ‘사업보국’(事業報國) 쪽에 무게를 두는 것 같다.


박세리의 아버지 박준철씨는 원래 딸이 일본에 진출하기를 원했다. 삼성이 박세리에게 세계 최고 무대인 미국 진출의 비전을 보여주고 파격적으로 지원해, 미국 진출을 성사시켰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지금 한국 여자 골프가 세계를 휩쓸고, 골프가 대중화된 데는 삼성의 역할이 적지 않다. 이건희 회장은 이처럼 골프라는 분야에서도 멋진 길을 열었다.

33년 전 이맘때 어둠 속에서 마지막 라운드를 할 정도로 골프를 좋아했던 호암도 흡족하게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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