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김기태-한화 한용덕, 엇갈렸지만 이해되는 '대타 문경찬'
[광주=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KIA 김기태 감독이 무언의 시위를 했다. 6점 차로 뒤진 9회말 2사 후 한화 한용덕 감독이 마무리 정우람을 투입한 것에 진한 아쉬움을 행동으로 드러냈다. 한화 한용덕 감독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KIA는 26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9 KBO리그 정규시즌 한화와 홈경기에서 7-13으로 완패했다. 경기 초반 이성열과 송광민에게 2점홈런 세 방을 내주고 주도권을 빼앗겼다. 한화의 완승으로 끝나는 듯 하던 경기는 9회말 묘하게 흘렀다. 8회말 2사 후 마운드에 오른 이태양이 무결점 투구를 하던 9회말 2사 후 정우람이 마운드에 올랐다. 한화 한용덕 감독은 “정우람은 개막 후 실전등판 기회가 없어 점검을 위해 등판시켰다”고 말했다. 감독 입장에서는 아무리 베테랑 투수여도 개막 세 경기 동안 실전등판이 없으면 불안해하기 마련이다. 큰 점수 차에 아웃카운트 한 개를 처리하고 염려되는 부분을 해소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을 수 있다.
하지만 김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6점 차 리드한 9회 2사 후 마무리를 등판시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판단한 듯 했다. 김 감독은 LG 사령탑 시절에도 같은 행동을 한적이 있다. 2012년 9월 12일 잠실 SK전에서 0-3으로 뒤진 9회말 2사 후 SK가 투수 교체를 단행하자 당시 신인 투수였던 신동훈(현 SK)을 대타로 내보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김 감독의 행동이 ‘승리를 위한 최선을 노력을 소홀히 해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스포츠 정신을 훼손했기 때문’이라며 상벌위원회를 개최해 제재금 500만원을 부과했다. 이번 사안은 상벌위원회에 회부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굳이 따지자면 당시와는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SK는 포스트시즌 진출을 사실상 확정했지만 LG는 하위권으로 밀려난 상황이었다. 확대엔트리로 경기를 치르던 9월인데다 경기 내용상 역전을 노릴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김 감독 입장에서는 섭섭할 수 있었다. 이 전에 쌓인 여러가지 감정이 폭발한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이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점수 차가 크게 벌어졌고 8회부터 문선재와 이창진, 황재인 등 신인급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나섰다. 사실상 패배를 인정하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겠다는 시그널이다. 이른바 동업자 정신으로 불리는, 승패가 사실상 갈린 경기에서 양쪽이 인정하는 수준이다. 가령 무사 1루 1사 1, 3루 등에서 뒤지고 있는 팀 1루수가 베이스를 지키지 않는 것도 이런 시그널 중 하나다. 승리를 하더라도 패한팀을 존중하자는 의견도 같은 맥락이다. 겨우 개막 세 번째 경기에 불과하고, 신인급 타자들로 라인업을 채운 6점 차에 굳이 마무리 투수를 투입했느냐는 무언의 항의를 할 수 있는 상황이기는 했다. 더군다나 공수모두 무기력한 플레이로 개막 3연패에 빠진 팀원들에게 강렬한 충격요법을 준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한 감독 입장에서 보면 어차피 승패가 갈린 상황이니 마무리 투수에게 조금 더 편안한 상황을 만들어주고 싶은 심정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항변할 수 있다. 6연전을 시작하는 첫 머리에 마무리 투수의 건재함을 확인해야 불펜 운용 퍼즐이 완성되는, 한화 마운드의 현실도 고려한 기용으로 봐야 한다. 특히 KIA와 3연전은 젊은 투수들이 선발로 등판하기 때문에 불펜 운용을 철저히 계산해야 승률을 높일 수 있다. 한 감독의 행동을 무턱대고 비난하기는 어려운 이유다.
어찌됐든 문경찬은 서서 삼진을 당한 뒤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김 감독은 그 때나 이날이나 말을 아꼈다. 대신 선수단이 받아들인 메시지는 상당히 묵직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