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다르 대신 미친 허수봉…“계속 미치고 싶다”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은 18일 우리카드와 플레이오프 2차전을 승리한 뒤 “가만히 둔 것이 오히려 잘 됐다”고 말했다. 1세트 막바지 결정적 승부처에서 허수봉(21·현대캐피탈)에게 계속 공을 넘긴 세터 이승원의 토스를 두고 한 이야기다.
이날 현대캐피탈은 경기 전 허리 부상을 당한 외국인선수 파다르의 공백을 안고 경기에 나섰다. 1차전에서도 30득점을 쏟아낸 파다르의 이탈은 경기 전 현대캐피탈의 치명타였다. 문성민의 무릎 상태를 고려한 최태웅 감독은 파다르를 대체할 라이트 자리에 허수봉(21·현대캐피탈)을 세웠다. 대단한 기대는 없었다. 레프트로 나선 문성민과 전광인의 활약 여부가 초점이었다.
그러나 허수봉은 서브 에이스 4개를 포함한 20득점으로 양팀 통틀어 최다 득점을 쏟아냈다. 대반전의 출발점은 최태웅 감독의 예상을 거스른 세터 이승원의 토스였다. 치열한 시소게임이 벌어진 1세트 후반 22-22부터 이승원은 허수봉에게 토스했다. 결정타를 때려야 할 시점, 대표 공격수 문성민과 전광인이 아닌 허수봉에게 토스가 갔고 허수봉은 22-22, 23-24, 24-24, 25-26에서 연속으로 공격득점을 올렸다. 덕분에 듀스 승부에서 무너지지 않은 현대캐피탈은 32-30으로 이날의 승부처였던 첫 세트를 따냈다.
최태웅 감독은 “1세트 20점대에서부터 이승원이 허수봉에게 토스를 하는데,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지만 (나의) 그 선택이 틀렸던 것 같다. (이승원을) 가만히 둔 게 잘 된 것 같다”고 웃었다.
최태웅 감독의 예상마저 깬, 이승원이 믿은 허수봉은 이제 불과 3년차 신예다. 주포지션은 레프트다. 화려한 현대캐피탈 레프트 멤버 속에 교체 선수로 나서던 허수봉은 올시즌 신영석과 김재휘가 다쳤을 때는 미들블로커로 나섰다. 그러나 이날 중요한 경기에서 파다르를 대신해 라이트로 출전했다. 갑자기 큰 부담을 맡은 허수봉은 경기 시작 직후에는 6차례 연속 공격을 실패하기도 했지만 점점 긴장감을 떨쳐냈다. 1·2세트 6득점씩 올린 허수봉은 3세트에는 강력한 서브로 경기 초반 현대캐피탈에게로 승기를 가져갔다. 3-2에서 오픈 공격으로 4-2를 만든 허수봉은 5연속 강력한 서브를 넣었고, 현대캐피탈은 허수봉의 서브 에이스 2개를 포함해 5연속 득점을 올리며 9-2까지 달아나 사실상 승부를 3세트 초반에 갈랐다. 허수봉은 24-12에서도 백어택을 성공시키며 승부를 직접 마무리지었다.
허수봉은 “어느 포지션이든 준비하고 있지만 (최)민호, (신)영석이 형이 돌아와 센터 연습은 하지 않고 있었다”며 “오늘 경기 직전에 파다르가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코치님들이 ‘(네가)미칠 때가 됐다’고 격려하셔서 겁 없이 뛰었다. 이렇게 잘 할줄 나도 몰랐다”고 웃었다. 1세트 막판 고비에서 연달아 공이 올라온 데 대해서는 “공을 계속 올려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승원이 형한테 올려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허수봉의 깜짝 대활약에 현대캐피탈은 파다르 없이도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해 3년 연속 대한항공과 우승을 다투게 됐다. 3차전을 하지 않게 되면서 사흘 쉬고 22일부터 챔피언결정전에 들어간다.
최태웅 감독은 “위기를 맞았지만 선수들이 분발했다. 경기 전 선수들에게 ‘국내 선수끼리 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오는 게 아니다. 힘을 보여달라’고 했다”며 “허수봉이 기대 이상으로 잘 했다. 올시즌 여러 포지션을 소화했는데 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선수”라고 흡족해했다.
문성민도 경기 중 “왜 이렇게 잘 하느냐”고 물을 정도로 깜짝 활약을 펼친 허수봉은 “챔피언결정전에서도 미치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