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이슈] 벨기에에 '졌잘싸' 일본, 착실히 한국 따라잡은 저력

[BO]엠비 0 1956 0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일본이 축구를 잘하는 배경은?

3일 새벽(이하 한국 시간) 로스토프 아레나에서 열린 2018년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 16강전에서 일본이 선전 끝에 벨기에에 2-3으로 역전패한 경기를 본 많은 축구 팬들이 느낀 궁금증일 것이다.

이어서 따라붙는 의문은 “그렇다면 한국 축구는?”일 것이다. 두 번째 의문 또는 궁금증은 스포티비뉴스 스포츠팀이 분석한 [정몽규 6년 직설진단] 시리즈를 보면 어느 정도 풀릴 것이다.

야구 기자 출신인 글쓴이도 갖고 있는 첫 번째 궁금증과 관련해 20여 전 일화를 소개한다.

일본 프로 축구 J리그가 출범한 뒤 2, 3년 뒤쯤인 1990년대 중반 어느 날,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아시아 지역 연령대별 대회에서 한국이 일본에 1-0으로 이겼다. 한국이 승리했지만 경기 내용은 누가 봐도 한국이 밀렸다. 그때 청소년 대표 팀이었지만 그때 일본은 이미 미드필드에서 ‘패스 축구’를 하고 있었다.

글쓴이가 옆자리에 있는 후배 축구 기자에게 ‘감히’ 말했다. “○○○아. 앞으로 일본 축구 발전 과정을 잘 살펴봐라.” 그때 그 후배가 말하기를 ‘선배, 일본은 아무리 용써도 축구는 한국에 안됩니다.”

20여 년 시간이 흐른 지금도 대한축구협회 임원을 비롯한 축구 관계자들이 그 후배와 같은 생각을 혹시나 갖고 있는 건 아니길 바라는데.

그리고 그 무렵 한국 동해를 맞대고 있는, 크지 않은 항구 도시 니가타를 연고로 하는 J리그 구단 경기에 만원 관중이 들어찬 것을 NHK 중계 화면으로 보고 놀란 기억도 있다.

역대 전적, 특히 1990년대 이전 한국에 일방적으로 밀린 일본이지만 따지고 보면 세계 무대에서 한국에 크게 밀리지 않는 성과를 올렸다.

아시아 나라 가운데 처음으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고[1968년 멕시코시티 대회 동메달]. FIFA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아시아 나라로는 1981년 호주 대회 카타르에 이어 두 번째로 준우승[1999년 나이지리아 대회]했으며 아시아 나라로는 처음으로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2011년 독일 대회]했다.

그리고 이번 대회 8강 문턱에서 밀려났지만 아시아 나라로는 첫 번째로 월드컵 3차례 1라운드 통과 기록을 세웠다.

일본의 준비성과 관련해서는 축구 팬들이 잘 알고 있는 J리그 출범 과정에서 나타난다.

한국이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누가 먼저 프로화를 하느냐를 두고 야구와 경쟁하다가 야구보다 1년 늦은 1983년, 아마추어 팀인 국민은행을 불러들여 어설프게 5개 구단으로 ‘슈퍼 리그’를 출범시킨 데 반해 일본은 1992년 시즌 세미프로 리그를 펼치는 등 착실한 준비 과정을 거쳐 1993년 10개 구단으로 J리그를 시작했다.

‘하얀 펠레’로 불리는 지쿠[가시마 앤틀러스]를 비롯해 우수 외국인 선수를 영입해 초창기 반짝 흥행을 보인 J리그는 1990년대 후반 위기를 맞는다. 1994년 1만 9,000명을 웃돈 경기당 평균 관중이 1997년 1만 131명으로 급감했기 때문이다. 1만 131명!

이후 J리그 성장 과정은 생략하고 국가 대표 팀 경기에서 한국에 계속 밀리던 일본은 프로 야구 전통의 명문 요미우리가 1980년대 워렌 크로마티를 4번 타자로 기용했듯이 이른바 ‘순혈주의’를 포기하고 귀화 외국인 선수를 내세워 경기력 향상을 꾀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한국과 경기 등에 나선 브라질 출신 공격수 와그너 로페스와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출전한, 역시 브라질 출신인 수비수 알레산드로 산토스[일본 이름 삼도주(三都主)]가 대표적인 귀화 일본 국가 대표 선수다.

일본이 이런 노력을 기울이게 된 배경에는 올림픽 동메달에 취해 ‘탈 아시아’를 내세우다 크게 낭패를 본 아픈 과거가 있다.

일본은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지만 메달 획득 과정이 아슬아슬했다.

멕시코시티 올림픽을 1년여 앞둔 1967년 9월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막을 올린 축구 종목 아시아 지역 A조 예선에서 한국은 자유중국(오늘날 대만)을 4-2, 레바논을 2-0, 월남(남베트남)을 3-0으로 물리치고 같은 3승의 일본과 맞붙었다. 접전 끝에 두 나라는 3-3으로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한국은 필리핀, 일본은 월남과 경기를 남겨 놓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골 득실 차에서 +7로 +21의 일본에 크게 뒤져 있었다. 일본이 필리핀을 15-0이라는 기록적인 스코어로 이겼기 때문이다. 골 득실 차에 대한 부담 속에 한국은 필리핀을 5-0으로 이긴 반면 일본은 월남을 1-0으로 누르고 본선 티켓을 손에 넣었다.

그렇게 멕시코시티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일본은 한국과 비긴 과정을 빼놓고 우쭐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메르데카배 등 아시아 지역 대회에 2진을 보내거나 아예 불참하는 등 거드름을 피웠다.

그 결과는 아프게 나타났다. 1970년대 이후 올림픽과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번번이 미끄러졌다. 올림픽은 멕시코시티 대회 이후 28년 만인 1996년 애틀랜타 대회에 이르서야 참가했고 월드컵은 1998년 프랑스 대회에 약간의 한국 도움을 받아 처음으로 출전했다.

그사이 일본은 J리그를 바탕으로 착실하게 ‘일본식 축구’를 만들었고 그 결과물이 2일 새벽 벨기에와 경기에 상당 부분 나타났다. 새벽잠을 설치면서 이 경기를 본 팬들은 알 내용이다. 경기 종료 직전 터진 벨기에의 역습 결승 골이 일본의 선전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 같은 아이러니한 측면도 있고.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