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특집 ①] 김기동, 3위 포항의 스타들이 대표팀 못 가는 이유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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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유현태 기자= "(벤투)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와 다를 순 있다. 그게 틀린 것도 아니다. 조금 다를 뿐이다. 그렇지만 선수들이 나때문에 조금 피해를 본 것 같다."

하나원큐 K리그1 2020 가장 뛰어난 감독으로 뽑힌 이는 포항 스틸러스의 김기동 감독이었다. 지난 5일, 3위 감독 최초로 감독상을 수상한 직후 김 감독을 만났다. 김 감독은 "지금까지 3위는 준 적은 없는데, 잘하면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시상식에 왔다. 정말 감사하다"고 솔직한 소감을 밝혔다.

얇은 스쿼드로 3위에 올랐다. 27경기 56골로 리그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터뜨리며 흥미진진한 내용을 보여줬다. 개인 순위에서도 공격 포인트(골+도움) 11위 이내에 포항 선수가 5명이나 된다. 유기적인 팀 플레이로 공격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책임감도 남았다. 국가대표 제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특히 지난 10월에는 국내파만으로 A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이 맞대결을 벌였는데, 포항 선수는 A대표팀에 한 명도 가지 못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나때문에 조금 피해를 본 것 같다"며 미안해했다.

K리그에서 가장 돋보이는 축구를 펼친 비결, 내년에 대한 구상, 포항 선수들의 대표팀 승선 이야기까지 김 감독에게 들었다. 다음은 김기동 감독과 일문일답.

- 감독상 수상을 축하한다.
3위 감독이 상을 받는다? 시상식 전에 생각해보니까 모라이스 감독은 이번 시즌을 마치고 떠난다는 것 같고, 김도훈 감독은 우승을 놓쳤다. 지금까지 3위는 준 적은 없는데, 잘하면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은 해 봤다. 정말 감사하다.

- 시즌 초 세웠던 ACL 출전권 확보라는 목표를 이뤘다. 선수단 구성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선수의 특징, 잘하는 것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잘못하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잘하는 것을 끌어내서 더 잘하게 만들어주려고 한다. 그게 자신감이 되고 결국 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훈련 때도 유심히 보고, 비디오 영상을 보면서 어떻게 바꿀까, 써먹을까 끊임없이 고민한다. 특히 팔라시오스와 전민광 같은 선수를. 사실 스쿼드가 두껍지 않다보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력을 극대화할 수 없다. 거기에 초점을 맞췄다.




-일관된 스타일 속에서 전술 변화 폭은 컸다. 임기응변이었나?
임기응변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엄청난 고민 이후에 판단하는 것이다. 선수들의 심리부터 생각했다. 이승모를 예로 들면 3선에 수비형 미드필더로 있을 때 볼을 받는 것과 패스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더라. 아시안게임에서 실수한 게 있어서 그렇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훈련할 때 보면 패스에 많이 소극적이다. 앞으로 올리면 맘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 거기서 공을 빼앗겨도 뒤에 두 줄이나 더 있지 않나. 그래서 앞에 세우자고 생각했다. 어차피 수비도 괜찮고 활동량도 많으니까.

팔라시오스도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반응이 아직 날카롭진 못하다. 그래도 많이 좋아진 건 맞다. 부리람(전지훈련)에서 처음 만났을 때 모든 선수가 '잘못 데리고 왔다'고 생각했다. 외국인 선수가 왔을 때 국내 선수들의 반응이 정말 중요하다. 잘못 데리고 왔다고 생각하면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좋은 선수가 오면 융화가 빨리 된다. 계속 팔라시오스랑 비디오 미팅을 하고, 세계적인 축구 흐름을 이야기해주고, '로멜루 루카쿠를 좋아한다는데 너처럼 하는 거 봤냐' 하면서 가르치고 독려했다. 콜롬비아 휴가 다녀와서 또 바뀔까봐 걱정이다. 잊어버릴까봐.(웃음)

- 올해 제일 어려웠던 점은
어렵기도 했고 아쉬웠던 점은 2가지다. 일단 시즌이 너무 짧았다. 막판이 너무 좋았다. 11경기가 더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어려웠던 점은 스쿼드 구성이다. 심상민, 김용환이 (상주 상무로) 떠나면서 상당히 힘들었다. 그래서 스리백도 썼고. 그때 '큰일났다' 싶더라.

- 경기 운영이 능수능란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상황에 따른 대처가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의 패턴은 일정하다. 상대가 내려가 있을 때, 압박할 때는 우리도 변화는 준다. '이런 식으로 축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본 틀은 확실하고 선수들이 인지를 하고 있다. 그러면 변화를 주더라도 선수들이 바로 알아듣는다. 항상 이야기했던 것들이기 때문에. 상대가 압박해 오면 어디를 노려야 될까? 수비 뒤 공간이 있으니까 팔라시오스가 뛴다. 이런 식이다. 그래서 경기 중에 변화를 주더라도 선수들이 쉽게 인지가 됐던 것 같다. 어떻게 경기를 해야겠다는 패턴은 있다. 그리고 상대에 따라서, 경기 흐름을 보고 내가 변화를 주는 것이다.

- 공격 포인트 상위 10위 안에 4명이나 있다. 팀플레이가 강하다는 뜻일텐데(팔라시오스는 11위)
56골을 넣었는데, 도움이 압도적으로 많다. 같이 축구를 했다는 데이터인 것 같다. 다른 팀들이 어느 정도는 한 선수에 대한 의존이 있었다고 하면, 우리는 전체적인 팀으로 싸웠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 그 비결은?
훈련밖에 없다. 큰 건 없다. 아무리 복잡한 것을 가지고 있어도, 선수들에게 전달해도 이해를 못한다면 좋은 축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술 30개를 가지고 있고, 그 전술대로만 하면 이길 수가 있다고 치자. 그런데 선수들에게 설명할 수 없다면 좋은 축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이해할 수 있는 축구를 같이 소통하면서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점은 확실하다.




별 건 아니어도 선수들이 '아 이거구나, 이렇게 하니까 되네, 이렇게 하니까 허점이 나오네'라고 알아야 한다. 상대가 스리백을 설 때, 4-4-2, 4-1-4-1, 4-3-3 섰을 때 어디가 약점인지, 어떻게 위치를 잡아야 하는지 선수들이 이제는 다 안다.

- 실용주의자라는 생각이 든다.
축구는 그럴 수밖에 없다. 현실화하지 못한다면 좋은 축구는 아니다.

- 골 장면을 보면 선수들 개개인의 위치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구도나 그림은 비슷할 때가 많다.
어느 위치에서 볼을 받아야 하는지 명확히 이야기한다. 팔로세비치가 처음 왔을 때 정말 미팅을 많이 했다. 그 어려운 상황에도 팔로세비치를 안 썼다. 제멋대로였다. 밑에 동료가 있는데 자꾸 공을 받으러 내려오는 거다. 앞에선 일류첸코가 외로운데. '앞에서 기다려라. 뒤에서 받아도 횡패스, 백패스밖에 안 나온다. 결국 높은 위치에 있어야 골이 나온다. 넌 기술이 있어서 상대를 제치고 키패스를 하든 마무리가 되는데 자꾸 내려오면 누가 공격할거냐'라고 말했다. 그게 습관 때문에 잘 바뀌지 않더라.
계속 영상을 보여주고 이야기했다. 최근에 다친 뒤에 돌아오니까 또 잊어버렸더라. 부상 복귀했는데 또 습관이 나왔다. 미팅하고, 미팅하고. 동해안더비 때 팔로세비치를 뺀 이유도 그거다. 전반에는 넣으면 안 되겠더라. (팔로세비치가) 지금은 어느 위치에서 볼을 받아야 하는지 안다고 한다. 그런데 공이 안 오면 애가 닳는다고 한다. 축구를 평생 그렇게 했다고 하니까. 자꾸 공에 관여해야 하고, 자기 발에서 상황이 시작돼야 하고. 충분히 이해하니까 타협을 했다. 정 못 견디겠으면 뒤로 내려와서 터치 한 번으로 연결해주고 다시 올라가라고.(웃음)

- 공격적인 강상우가 들어오고 나니, 반대편에 중앙 수비수로도 뛰는 전민광이 들어왔다. 밸런스를 고려한 기용이었는지.
그럴 수밖에 없다. 왼쪽이 공격적인데 오른쪽까지 나가면 수비가 두 명밖에 없다. 왼쪽 수비는 전진하고, (나머지 수비수 3명은) 조금씩 왼쪽으로 당기는 것이다. 전민광이 속도도 괜찮으니까 공을 돌리다가 반대로 단번에 때려주면 팍 들어가서 해결하는 형태로 만들었다. 스타일은 늘 비슷하지만, 경기를 어떻게 풀지 선수들에게 이야기하고 훈련한다.

- 포항은 재미있는 축구를 추구한다고 한다. 강상우가 공을 많이 만지고 싶다고 하더라. 선수들도 즐기는 것 같다.
그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그렇지만 7월에 선수들의 자신감을 느낀 일이 있다. 7월 말부터 2무 3패를 했다. 나는 괜찮은데 선수들이 내가 자꾸 땅을 봤다고 하더라. 최영준이 감독님이 고민이 많았다고 느꼈다고 하더라. 선수들끼린 자신감이 있는데 왜 땅을 보고 다녔냐고 시즌 끝나고서야 말하더라. 선수들은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다는 뜻 아니겠나. 감독을 볼 여유가 있었다는 뜻이니까. 당시에도 인터뷰할 때 우리가 결과는 못 내고 있지만, 우리 축구를 하고 있고 골만 들어가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나도 자신감이 있었지만, 선수들도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그런 자신감 때문에 공을 더 만지고 싶어하는 것 같다.

- 분석에 따른 맞춤 전술도 자주 꺼내들었다.
우리는 어떻게 할지 정립이 돼 있다. 여기에 상대가 잘하는 걸 못하게 하면 승리의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상대 분석엔 공이 많이 들텐데.) 1년 만에 눈이 안 좋아졌다. 노안이 왔다. 그정도로 눈이 침침해질 정도다. 시상식 때 홍철이 와서 "'포항항TV' 봤는데 전반전 끝나고 내 얘기 하면 어떡하냐"고 하더라. 그때 팔라시오스한테 홍철이 겁먹었으니까 계속 부딪치라고 했었다.




- 포항항TV 때문에 지나치게 내밀한 이야기까지 나오는 것 아닌가?
난 크게 상관 없다. 감독실에 들어와도 괜찮다. 우리가 상황이 좋든 아니든 이왕 하기로 한 거 다 찍고 내보내라고 했다. 그것 때문에 성적이 나빠지진 않을 것이다. 팬들이 궁금한 건 언제든지 환영이라고 했다. 훈련 때마다 카메라를 들이민다. 12월엔 다큐멘터리도 나올 예정이다.

- 훈련 공개를 꺼리거나, 전술적 질문을 피해가는 지도자들도 있는데.
이야기한다고 해서 크게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진 않다. 우리가 축구를 1, 2년 한 것도 아니고 영상을 분석하면 팀 컬러가 딱 나온다. 분석을 하더라도 접근하는 관점이 다르면 다르게 보인다. 축구는 사실 거기서 거기다. 접근하고 결과를 끌어내는 게 차이일 것이다.

- 선수 육성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어린 선수들이 기회를 많이 잡는다. 송민규, 이승모의 성장도 있었고, 시즌 말엔 고영준도 골까지 넣었다.
재능도 보여야 하고, 스타일에도 맞아야 한다. 선수라면 승부욕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송)민규나 (이)승모는 승부욕이 아주 강하다. (고)영준이는 아직 그게 부족한 것 같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전반전에 들어가는 건 아니라고 봤다. (고영준은) 힘이나 수비력, 적극성이 떨어져서 볼 한 번 제대로 못 찰 것 같은 스타일이라고 봤다. 후반전에 들어가면 상대가 지치고 공간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순간적인 드리블 능력이 아주 좋다. 마지막 라운드에 들어갈 때도 분명히 기회가 올텐데, 집중해서 넣으라고 강조했더니 결국 넣더라. 기술은 정말 좋다. 그런 점을 가르치고, 또 잘할 수 있는 점들을 많이 알려주려고 한다. 적극성과 수비력만 키우면 좋을 것 같다. 20세 이하 대표팀 김정수 감독하고 가끔 통화하는데 비슷한 생각 같다.

- 축구 선수로서 기술, 신체적 능력, 축구 지능 모두 갖추고 있어야 좋은 선수가 된다고들 한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음, 열정이 첫 번째라고 본다. 그리고 두뇌가 빨라야 한다. 왜냐면 사람이 달리는 것보단 공이 움직이는 게 빠르다. 머리가 빨리 돌면 어떤 위치에 어떤 타이밍에 가야 하는지를 안다. 더구나 요즘엔 공간과 시간적 여유가 적다. 그래서 더 빨라져야 한다. 볼을 내주고 나가고 하는 것들도 그렇다.

- 일류첸코가 굉장히 열정적이라고 들었다. 그럼에도 서로 돕고 이타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류첸코는 팔로세비치가 다친 뒤에 '발목에 붕대를 감고 해야지'라고 할 정도로 열정이 있다. 외국 선수답지 않게 승부욕도 강하고, 팀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선수다. 그런데 그게 과해지면 짜증을 엄청나게 낸다. 소리를 지르고, 어린 선수들한테도 막 뭐라고 한다. 그건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전지훈련 때는) 집에 가라고까지 했다. 시즌 들어오고 나니까 바뀌긴 하더라. 그런 게 팀에 많이 도움이 됐다. 일류첸코는 인터뷰를 보면 항상 팀이 먼저고, 팀이 잘돼야 한다고 말한다. 항상 정답만 내놓는다. 완전 모범생이다. 그런 마인드 때문에 연계 플레이나 이타적인 플레이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다.

- 가족같은 팀 분위기가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게 중요하다. 팀 분위기가 좋지 않으면 성적을 낼 수가 없다. 내가 감독으로서 권위 의식을 세우면, 안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예전의 감독이 아니라, 현재의 감독이다. 빠르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린 선수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축구에 접근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선수들에게 '난 감독이기 이전에, 오랜 시간 너희들이 가야 할 길을 먼저 간 선배다. 무슨 말을 해주더라도 조언이다'라고 말한다. 그런 게 일종의 소통이고, 그 덕분에 분위기도 만들어갈 수 있다. 지금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려고 한다. 시상식장에서 감독한테 와서 하이파이브를 하는 것도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 예전에 만났던 지도자들 가운데도 편안한 스타일이 있었나.
외국인 감독들하고 잘 맞았던 것 같다.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이나 파리아스 감독이나. 내가 싫어하는 건 다른 사람한테도 안 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경기가 밤 7시면, 아침 8시 아침 식사 시간을 없애버렸다. 먹고 싶으면 먹고, 더 자고 싶은 사람은 자라고. 우리 때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지, 지금은 밤에 선수들이 게임하느라고 늦게 잔다. 매일 늦게 일어나는데, 경기날 일찍 일어나라고 하면 일어나지겠나. 오히려 리듬이 바뀔 것이다. 집에서 하던 패턴대로 하라고 했다. 아침밥을 먹을 사람들은 오전 8시 반부터 10시 사이에 먹되, 안 먹어도 되니까 편하게 하라고 했다. 그리고 선배 선수들한테 '편하게 해줄테니 알아서 잘하라'고 말한다. 그러면 선참 선수들이 다른 선수들한테 '잘해주실 때 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게 팀 분위기로 간다.

- 늦은 시간까지 게임을 하는 것에 대해선 이야기가 많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프로 의식 부족이란 지적이 나오기도 하는 것 같은데.
문제가 없다면 터치하지 않는다. 지나가면서 게임 한 시간 이상씩 하지 말라고 한다. 햄스트링 나간다고.(웃음)

- 선참 선수들을 잘 쓰고 있다.
저도 오랫동안 축구를 해서, 베테랑들의 아픔을 안다. (김)광석이나, (오)범석이나 1년씩 연장하면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컨디션이 조금만 떨어지면 '나이가 있으니까'라는 선입견도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자기들이 헤쳐나가야 한다. 은퇴할 때까지 선입견과 싸워야 한다. 그래서 한 마디라도 해주고 한다.

- 두루 잘해줬다. 그 와중에도 특별히 칭찬해주고 싶은 선수는.
정말 다들 잘해줬다. 광석이, 범석이가 구심점으로 정말 잘해줬다. 민규도 어리지만 당돌하게 잘했다. 그럼에도 (최)영준이가 임대를 오면서 주장 고민을 엄청나게 했다. 영준이한테 시킬 때 못한다고 하면 어떻게 설득할까 고민을 했다. 영준이가 신중하다. 처음 말했을 때 하겠다고 하더라. 6번까지 달라고 추천해 줬다. 다 잘 될 거라고. 시즌 마치고 밥을 먹으면서 '고맙다, 고생했다'고 말했더니, 영준이가 '여기 있으면서 축구도 배웠다. 주장을 해본 게 자기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임대생이니까 감독님한테 가감없이 말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 정말 매번 영준이가 찾아오더라. '훈련 힘들어요, 하루 더 쉬어요'라고. 정말 고마웠다.

- 내년 시즌 구상에 고민이 있을 것 같다.
주변에서도 말이 많고,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작년에도 막판에 워낙 팀이 잘했고, 이 선수들을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지켰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선수를 못 받는다면 지키는 게 목표다. 구상에 대해서 구단에 명확히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사장님이 회장님을 만나러 가신다고 하더라.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오면 그에 맞게 구성을 해야 한다. 없으면 가진 대로 팀을 꾸려야 한다. 팬들의 눈높이는 높아졌는데 그게 걱정이 된다. 스틸러스가 예전처럼 재정적으로 풍부하고, 선수가 많은 시절이 아니다. 영상으로도 눈높이를 낮춰주시고, 성적보단 어떤 축구를 펼치는지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얘기했다.

- 최영준을 잡지 못하는 것이 많이 아쉬울텐데.
메신저로 이야기를 했다. 고맙다고, 내년에도 같이 하고 싶은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전북에서 보내줄지 안 보내줄지 모르겠다. 아마 안 보내주지 않겠나. 최영준도 많이 배운 것 같다고, 최고의 한 해였다고 하더라. 최영준 같은 선수를 키워야 한다. (한숨) 아쉬워한다고 바뀌는 것도 없다.




- 결국 알짜배기 선수 영입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선수단 구상은.
우리는 전북, 울산에 비교해서 어린 선수들이 뛰기에 좋은 팀이다. (이)수빈이가 돌아올 것이고, 승모도 그 자리에서 뛸 수 있다. (오)범석이도 그 자리에서 중심을 잡아줄 수 있다. 새로운 선수 1명을 영입한다면 미드필더는 괜찮을 것 같다. 일류첸코가 나간 이후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류첸코는 큰 금액을 제시하면 팔 수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팔로세비치는 임대 복귀를 했다.

- 투자가 조금 더 있다면?
울산, 전북처럼은 아니더라도 조금만 투자해주시면 좋은 위치에서 좋은 축구를 펼칠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고민이다. 저희 지출이 8위라더라.

- 저비용 고효율의 원동력은?
다른 팀에서 보기에 좋은 일은 아니다. 전북이나 울산처럼 투자를 하고 성적을 내야 한다. 우리의 방법은 장기적이지 않은 방법이고, 지속적으로 갈 수 없는 방식이다. '포항은 저렇게 하는데, 왜 너희는 못해'라는 말을 다른 팀이 듣는다면 곤란한 일이다. 저희는 운도 많이 따랐다. 선수들도 노력하고, 저도 노력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선 곤란하다. 투자를 한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율을 보면 투자해야 성적이 나는 경우가 많다.

- 포항 선수들이 잘하고 있는데, 벤투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서운했다. 이름을 직접 언급해서 미안하지만 주세종이 경기를 많이 못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최영준은 충분히 갈 수 있지 않을까 했다. (하)창래도 아주 잘하고 있었고, (강)상우도 왼쪽에서 정말 좋았다. (대표팀 소집 선수가 나오지 않으면서) 약간 침체기가 왔었다. 동해안 더비를 준비하면서. 그때 분위기가 완전 가라앉았다. 2번인가 엄청 뭐라고 했다. 훈련에서 한 번 화를 내고, 연습 경기하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떨어진 분위기를 못 살리겠더라. 그래서 팔로세비치와 송민규를 빼는 강수를 뒀다.

-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나.
벤투 감독은 왼쪽 수비는 무조건 왼발잡이를 쓰려고 한다더라. 무조건 왼쪽엔 왼발잡이를 세우는 게 철학이라고 한다. 빌드업, 패스에서 속도를 높이는 것보다, 빌드업을 주고받는 걸 중요시해서 주세종이 더 낫다고 본 것 같다.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와 다를 순 있다. 그게 틀린 것도 아니다. 조금 다를 뿐이다. 그런데 선수들이 나때문에 조금 피해를 본 것 같다. 전북전이 끝나고도 3위 팀에서 대표팀이 한 명도 안 나와서 책임이 크다고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 포항이 주로 쓰는 4-2-3-1과 대표팀이 쓰는 4-1-4-1을 비교했을 때 빌드업에서 차이가 있나.




조금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를 혼자 놓으면, 앞에 있는 미드필더들이 앞선으로 올라가거나 측면으로 빠져야 한다. 공을 빼앗겼을 때 위험이 커질 수 있다. 홀딩(수비형 미드필더)이 수비할 때 많은 몫을 해줘야 한다. 체력적으로도 힘든다. 볼도 잘 다뤄야 하고 체력적으로도 강해야 한다. 4-2-3-1의 미드필더 2명이 나란히 서는 건 아니지만 약간 올라가고 빠지더라도 4-1-4-1처럼 되진 않는다. 빌드업을 하더라도 약간씩은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포메이션이든 각 감독이 추구하는 게 있을 것이다. 나는 1자 형태도 아니고, 완전히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공을 잡지 않은 선수를 활용해 상대 미드필더를 묶어놓는 형태도 많이 취한다. 그래야 뒤가 편하다.

- 포항식 4-2-3-1에선 공격형 미드필더가 많이 뛰어야 한다는 말 같다.
많이 뛰어야 한다. 그래서 팔로세비치에게 내려오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활동량이 제일 많다. 경기마다 12km씩 뛴다. 스리백으로 섰을 때 사이드백을 올리지 않으면 수비적이다. 포백으로 서도 풀백을 적극적으로 쓰지 않으면 수비적이다. 경기를 어떻게 풀어가는지가 중요하다. 그게 감독의 색깔이다.

- 내년에 지향하는 축구는.
크게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다. 선수들이 이해하고 편안하게 할 수 있다. 전술이야 4-3-3이나 다이아몬드 4-4-2를 쓸 수도 있다. 움직임의 차이일 뿐이지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 선수 구성을 보고 장단점을 빨리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스리백을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선수 구성이 그렇게 돼 있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스리백을 고집한다면 잘못된 거라고 본다. 구성에 맞게 (전술을) 써야 한다.

- 맨시티의 과르디올라 감독은 주로 자신의 전술을 고집하면서 적합한 선수를 영입하곤 한다. 그런 감독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나.
부럽다. 그렇게 투자를 하는 팀에 가서 축구를 하면 얼마나 행복하겠나.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지 않나. 지금은 하고 싶어도 자제를 해야 한다. 하고 싶어도 선수들의 수준에 맞게 끌고 가야 할 점도 있다. 지금은 어려운 점이 분명히 있다. 나는 무조건 현실적으로 하는 게 맞다고 본다.

- 선수 영입을 맘껏 할 수 있다면 김기동식 축구는 어떻게 바뀔까.
지금과 같은 축구를 하는데 더 세밀할 것이다. 실수가 줄어들고, 더 강한 임팩트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완성도가 높아질 것이다. 지금은 나가면서 실수가 너무 많다. 파도가 치듯이 쭉 밀고 나가서 방파제에 가서 타격을 줘야 한다. 지금은 지나가다가 바위를 만나듯이 팍 터지는 느낌이다. 세밀하고, 빠르고, 간결한 축구가 나올 것이다. 엄청나게 빨라질 것이다. 리버풀이 지난 시즌 보여준 것처럼 빠르게 공격을 마무리하고, 또 수비로 돌아오는 축구다.

K리그에서 가장 재미있는 축구를 하고 짜임새 있는 팀, 가장 공격적인 팀, 그리고 국가대표를 배출하지 못하는 팀. 현재 포항스틸러스의 모습이다. '풋볼리스트'는 포항의 주역들을 만나 이번 시즌을 돌아봤다. 아울러 국가대표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들을 수 있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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