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로 세계를 만난다-최종회] 한국배구의 현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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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배구리그를 보유하고 있는 이탈리아와 러시아 취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점점 한국인들을 입국금지하는 국가가 늘었고 갈 수 있는 곳도 적었다. 결국 어떻게든 여행을 이어가고 싶어 아예 불가능했던 이탈리아는 뒤로하고 육로로 이동할 수 있는 불가리아-우크라이나-러시아 루트로 이동하기로 정했다.

그렇게 불가리아로 향했고 며칠 머물다 이동하려고 했지만 그때쯤엔 세계 대부분 국가가 외국인 입국금지를 선언했고 국경이 봉쇄되다 보니 모든 이동 수단이 멈췄다. 원래 같았으면 끝까지 버티면서 기다렸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지치기도 했고 가족들도 다시 나가더라도 일단 한국으로 돌아오길 원했다.

마지막 글의 주제를 어떤 것으로 잡을까 생각하다 결론을 내린 것이 ‘한국배구의 현재와 앞으로의 방향성’이다. 이탈리아와 러시아는 취재를 못했지만 그래도 총 23개국을 여행하면서 17개(쿠바,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독일, 폴란드, 체코, 터키, 헝가리,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스위스) 국가 배구를 취재해보니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세계적인 시점으로 바라봤을 때 우리나라 배구 현재와 앞으로 발전하기 위해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지 지금부터 알아보자.


우리나라 배구리그 환경은 좋은 편이다
취재를 하면 할수록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은 ‘우리나라 배구리그 환경이 좋은 편’이라는 것. 많은 경기를 본 것은 아니지만 현장에서 직접 보고 관계자들과 이야기하면서 확실히 우리나라는 체육관 시설, 팬층, 구단의 지원이 좋은 편이라는 것이다.

17개국 중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정도의 환경을 갖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던 곳은 브라질, 프랑스, 독일, 폴란드, 터키였다. 5개 국가 모두 리그로만 봤을 때는 우리나라보다 나은 점은 팀이 많은 것과 2부리그 혹은 그 이상의 리그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밖에 없었고 환경 수준은 거의 비슷했다.

그 외 나머지 국가는 대표적인 세 가지(시설, 팬층, 지원) 중 부족한 부분이 있거나, 체육관 시설도 오래됐고 팬층도 적으며 구단의 지원이 없는 곳도 있었다. 세계적으로 전력이 약한 페루, 볼리비아, 크로아티아는 이해가 갔지만 꾸준히 강팀으로 평가받던 세르비아는 정말 의외였다.

특히 연봉 부분에서도 우리나라는 샐러리캡 제도를 적용하고 있음에도 세계적으로 상위권의 연봉을 받는다는 것이 놀라웠다. 위에서 언급했던 5개 국가를 제외하곤 각국에서 최고로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우리나라 V리그 최저연봉(남자부 4천만 원, 여자부 3천만 원)보다 적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한국배구가 국제대회에서 뒤처지는 이유
한국배구가 현재 국제대회에서 뒤처지는 이유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특히 남자배구는 더더욱. 과거를 떠나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로만 봤을 때 해외에서 뛴 경험이 있는 선수라곤 남자배구에선 문성민(독일 프리드리히스하펜, 터키 할크방크), 여자배구에선 김연경(일본 JT 마블러스, 터키 페네르바체 SK, 중국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 터키 엑자시바시 비트라)이 유일하다.

여자배구는 김연경이란 세계적인 선수가 든든히 버텨주고 있고 이재영 이다영 쌍둥이 자매가 빠른 성장을 보이고 명장 라바리니 감독의 전술이 좋은 시너지를 만들며 3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김연경이란 프랜차이즈 스타가 은퇴를 하고 라바리니 감독이 더 이상 한국 팀의 지휘봉을 맡지 않는다면?’이란 질문을 떠올렸을 땐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남자배구는 현재 5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국제대회에서도 약팀으로 꼽히며 점점 도태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철우, 한선수, 신영석 등’ 황금세대 선수들은 지난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대륙예선을 끝으로 은퇴했고 후계자로 불리는 선수들 중 특별히 눈에 띄는 선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세계배구에 대한 경험을 한 선수들이 없고 항상 같은 수준의 리그에서 늘 하던 스타일대로 경기를 뛰다 보니 발전은 없고 점점 뒤처질 수밖에. 그리고 취재를 통해 모든 국가에서 국제대회 공인구인 'MIKASA' 공으로 훈련을 하고 경기를 치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STAR‘ 공으로 리그를 운영한다. 이 작은 부분으로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흐름이 어디로 향하는지 예상되지 않나?

한국배구만의 스타일이 뭐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라 점점 한국배구만의 스타일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남자배구를 봤을 때 유럽배구의 추세를 따라가기 위해 장신 선수들을 선발해서 국제대회에 나갔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안 되는 방법을 계속해서 추구하니 달리지는 게 없다. 한국인 특성상 유럽인과 같은 체구를 가진 선수가 나오긴 현실적으로 힘들다. 인구가 많거나 유럽과 비슷한 몸을 가진 중국, 이란, 카타르는 다르겠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가까운 일본을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일본은 선수들의 신장을 떠나 오로지 실력으로만 대표팀을 선발하는 시스템을 추구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현재 일본 남자배구 에이스인 니시다 유지(2000년생)다. 186cm의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높은 점프력을 이용해 파워풀한 공격력을 뽐낸다. 장신 선수들로만 팀을 꾸리려고 했다면 과연 니시다 유지라는 유망주를 발굴해낼 수 있었을까?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신장이 부족하다면 팀으로 강해져야 한다. 말 그대로 ‘조직력’이 강하면 핸디캡을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 무작정 신장이 크다고 선수를 뽑는 것이 아니라 팀으로 뭉쳤을 때 좋은 시너지를 보일 선수들을 선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자배구도 이재영과 이다영의 성장세가 큰 자산이긴 하나, 가장 중요한 순간엔 김연경이란 거포가 해결사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지금의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는 것이 어김없는 사실이다. 김연경이 은퇴를 하고 김수지, 양효진, 김희진과 같은 베테랑들이 떠났을 때 어떤 선수들로 어떻게 팀의 스타일을 만들어갈지 지금부터 구상하고 준비해야 한다.


유소년과 2군의 상관관계
대표팀을 향해 ‘세대교체와 2군 운영의 필요성’이라는 말이 가장 많이 나오고 있다. 이 모든 문제는 바로 ‘선수가 부족하다’라는 입장과 관련이 있다. 선수가 부족한데 어떻게 세대교체를 할 수 있고 2군을 운영할 수 있냐는 말이다.

지난 2019-2020 프로배구 신인드래프트에서 남자부는 69.8%의 취업률을 보이며 양호한 편이였지만 여자부는 48.57%라는 저조한 취업률을 보이며 한쪽에선 선택받지 못한 선수들의 부모들이 “배구 시킨 거 후회합니다. 그때 말릴 걸 그랬어요.”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취업이 되질 않으니 배구를 시키길 꺼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 현재 한국배구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실력이 없는 선수를 무작정 뽑을 수도 없기에 프로팀들의 탓으로 돌릴 수도 없다.

몇 년에 한 번 운이 좋게 기량이 출중한 유망주들이 나오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과감한 투자와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유소년 배구를 발전시키고 활성화를 시키는 것이 곧, 취업률을 높이고 2군을 운영할 수 있는 길이며 그렇게 선순환이 이어져야 한국배구가 지금처럼 뒤처지는 게 아닌 성장의 길로 다다르고 리그에서 신생팀 창단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적인 방안은 무엇인가?
현재 한국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선수의 수요를 늘리는 것이다. 김연경이란 프랜차이즈 스타로 인해 배구의 인지도가 높아졌을뿐더러 이재영 이다영 쌍둥이 자매의 활약으로 인기가 계속해서 오르고 있는 만큼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협회와 연맹에서 유소년들을 위한 투자와 이벤트 등 다양한 방법으로 어린아이들이 다른 스포츠가 아닌 배구를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나이대에 맞는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으로 유망주를 발굴해내야 한다.

취재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국가들로 예를 들면 대표팀과 프로팀 모두 ‘12~14세, 14~16세, 16~18세, 18세 이상’ 이런 식으로 팀을 나눠서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다. 나이는 국가마다 다르지만 같았던 것은 나눈 팀의 코칭스태프는 모두 다르고 훈련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나이대에 맞게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으로 운영을 하다 보니 유망주들이 많이 배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이미 하고 있는 구단들도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 물론 많은 돈을 투자해야겠지만 지금처럼 소극적인 마인드론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이루지 못한다.

또 선수들이 해외리그로 진출을 못한다면 세계적으로 강한 국가들과 교류를 꾸준히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지 않을까? 짧은 전지훈련이나 이벤트성 경기도 좋으니 강팀들과의 연습과 경기가 곧 국제대회에서의 실전 감각을 끌어올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각국을 취재하면서 직접 이것과 관련된 질문을 한 결과 모두들 호의적인 대답이었다. 충분히 현실성이 있다는 뜻.

우리나라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것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 요즘 들어 ‘스피드 배구’를 한다고는 하지만 무작정 낮고 빠른 세트플레이가 스피드 배구를 뜻하진 않는다. 선수들의 호흡과 플레이가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하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전술 그리고 한국이라는 팀을 떠올렸을 때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도록 특색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게 무엇인지는 대표팀 스스로가 찾아내야 하는 책임이 있다.



필자는 현재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일부분만 이야기를 한 것이고 다른 점들도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을 여기서 멈추게 됐지만 그동안 무사히 여행과 취재를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몸소 경험했던 것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한국배구의 발전을 생각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것. 앞으로 필자가 어떤 직업으로 활동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배구와 관련된 것이 아니더라도 뒤에서 묵묵히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우리나라 배구는 멀리 봤을 때 세계적으로 뒤처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쉽진 않겠지만 이제 그 현실을 적극적인 투자와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그동안 글을 봐주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끼쳤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한국배구가 더 이상 뒤처지지 않고 발전할 수 있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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