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前 백호 엠블럼 디자이너 "19년 전 첫 공개하자 '착한 고양이'라 혹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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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동안 한국 축구와 함께 해온 '백호'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01년 처음 세상에 공개된 백호 엠블럼. 이전까지는 축구공 모양의 단조로운 엠블럼이었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엠블럼의 대대적인 변화가 요구됐다. 단순함을 넘어 엠블럼에 처음으로 호랑이의 모습을 새겼다. 호랑이 중에서도 신성시되는 백호를 등장시켰다. 백호는 엠블럼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품었다. 백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대표팀 유니폼 왼쪽 가슴에 태극기를 부착했는데, 백호가 태극기를 대신한 것이다. 국가와 한국 축구를 상징하는 역할을 백호에게 맡긴 것과 다름 없었다.

백호가 전면으로 나서자 놀랍게도 마법처럼 한국 축구는 역대 최고의 성과를 일궈냈고, 가장 뜨거운 환호가 함께했다. 세계대회 데뷔전이었던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시작으로 2010 남아공 월드컵 원정 첫 16강을 지나 2012 런던 올림픽 최초 동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그리고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최강 독일을 잡더니 2019 폴란드 U-20 월드컵에서 사상 최초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 결승에 진출했다.

그렇게 백호와 한국 축구는 19년을 함께 했다. 그리고 은퇴를 결정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2월 새로운 백호 엠블럼을 발표했다. 첫 번째 백호는 한국 축구 최고의 업적을 남긴 엠블럼으로 역사에 남게됐다.

이대로 보내기엔 아쉬웠다. 19년 동안 백호의 노력과 성과를 기리고, 감사함을 전할 '은퇴식'이 필요했다. 일간스포츠가 은퇴식을 열었고, 이 자리에 특별한 손님을 초대했다. 첫 번째 백호를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지난 5일 서울 모처에서 백호 엠블럼을 디자인한 주인공 김홍준 스포츠 디자이너를 만났다. 그는 현재 한 디자인 업체의 대표이자 한국 축구대표팀 서포터즈 붉은악마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려운 만남이었다. 김 대표는 백호 엠블럼에 관해 자신이 전면으로 나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미 한국 축구에 양도한 엠블럼이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한국 축구의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백호 엠블럼의 19년 역사를 되돌아보고,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는 설득에 어렵게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이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는다며 정중히 사진촬영을 거절했다. 김 대표는 그렇게 차분하고 조용하게 백호 엠블럼 은퇴식을 함께 했다.

-붉은악마로 활동하는 등 한국 축구에 대한 애정이 커보인다.


"나에게 축구는 취미이자 일이고, 일이자 취미다. 붉은악마 활동은 1999년 정도부터 한 것 같다. 해외 원정 경기도 많이 다녔다. 처음으로 중국 상하이 원정을 갔었고, 마지막으로는 지난해 폴란드에서 열린 U-20 월드컵을 다녀왔다. 2002년 월드컵을 포함해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열심히 도와준 기억이 난다."
 

 


-백호 엠블럼을 디자인한 계기는.


"내 기억으로는 2001년 대한축구협회에서 엠블럼 공모전을 했던 것 같다. 이전까지는 축구공 모양의 엠블럼이었고, 2002 월드컵을 앞두고 새로운 엠블럼을 원했다. 태극기에 있던 자리에 들어갈 엠블럼이었다. 세계적 추세가 국기 대신 엠블럼이었다. 그래서 공모전을 했는데 당선작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대한축구협회에서 몇몇 전문 디자이너에게 의뢰를 했다. 나 역시 디자인을 전공했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내가 디자인한 엠블럼이 최종 선택됐다. 무상으로 했다."

-백호를 선택한 이유는.

"처음부터 동물을 그리고 싶었다. 곰곰히 대표적인 상징적 동물들을 생각해봤다. 삼족오, 주작, 현무 등도 생각해 봤다. 그런데 너무 고대로 가는 것 같아 제외했다. 호랑이가 떠올랐다. 한반도 땅도 호랑이 모양이라 했고, 한국을 대표하는 맹수다. 호랑이 중에서도 영물인 백호를 모티브로 삼자고 결정했다. 또 백호는 우리 선수들을 보호한다는 의미, 경기를 지배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백호가 앞발로 공을 누르고 있는 것 역시 장악력을 표현한 것이다. 불꽃무늬 눈썹도 초안에는 없다가 나중에 수정해 넣은 것이다. 마지막 작업이 눈동자였다. 캐릭터지만 생명력이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눈동자를 그려 넣었다."

-참고한 엠블럼이 있었나.


"축구의 대륙 유럽에서 많이 쓰는 스타일을 기본으로 했다. 웬만한 유럽 클럽과 국가 엠블럼은 다 깔아놓고 분석을 한 것 같다. 방패모양의 외관과 리본에 글씨를 쓰는 스타일은 유럽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스타일이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숨은 의미가 있나.


"엠블럼의 색깔이다. 많은 분들이 엠블럼이 왜 파란색인 지 모른다. 한국 대표팀은 붉은 유니폼이 상징적인 색깔이다. 서포터즈도 붉은악마다. 그래서 엠블럼을 파락색으로 해 태극기의 컬러를 나타내고 싶었다. 태극기 의미가 들어있으면 더 강한 힘을 발휘할 것 같았다. 또 쓰는 용도에 따라 금색 테두리를 두를 때가 있다. 이는 왕의 의미를 담은 것이다."

-첫 공개 당시 엄청난 혹평을 받았다고.


"호랑이는 정말 어려운 디자인이다. 사자보다 어렵다. 처음 공개했을 때 '고양이 아니냐'라는 반응이 많았다. 호랑이를 디자인하면서 오직 세고, 너무 강한 이런 이미지를 원하지 않았다. 너무 강하면 거부감이 들 수 있어 조금은 선하게 만들고 싶었다. 눈동자를 착하게 만들어서 그런가 생각도 들었다, 고양이라는 말이 가장 상처를 주는 말이었다. 내가 백호 엠블럼 디자이너인 줄도 모르고 내 앞에서 엠블럼을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혹평이 언제 찬사로 바뀌었나.


"사실 디자인은 100명이 보면 100명 다 취향이 다르다. 100명을 전부 만족시킬 수 있는 디자인은 없다. 앞에 나서서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호감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도 뒤에 많았다. 처음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 같다. 디자인은 노출도와 호감도가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눈에 익숙해지면 좋게 봐 준다. 백호도 노출이 많이되고, 백호 엠블럼을 단 대표팀이 최고의 성적을 내니까 어느순간 호감도가 굉장히 높아져 있었다."

-가장 뿌듯했던 반응은.


"백호라는 모티브를 잡았다는 것에 좋은 반응이 많았다. 백호라서 좋은 기운이 대표팀에 전달된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좋은 성적을 이룬 엠블럼이라며 부적과 같다고 말하는 것도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위로가 됐다. 내 앞에서 욕했던 이들도 어느순간 호감 쪽으로 돌아섰다."

-엠블럼에 대한 자부심이 클 것 같다.


"우리 대표팀 선수들이 잘해줘서 엠블럼의 가치를 키워줬다. 또 많은 분들이 좋아해 줘서 브랜드 가치가 높아진 부분도 있다. 이 엠블럼을 달고 좋은 성적을 냈다는 말을 들으면 나 역시 자부심이 생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역시나 2002 월드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엠블럼을 달고 나선 첫 세계대회였고, 최고의 성적도 냈다. 그리고 지난해 U-20 월드컵이다. 너무나 기분 좋은 대회였다. 사실 그때가 사무실 이사하는 날이라 가지 않으려 했는데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또 FIFA 대회 결승을 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아침에 비행기 표를 끊어 폴란드로 날아갔다. 사실 이 대회가 백호 엠블럼의 마지막 세계대회였다."

-엠블럼이 교체된다는 건 언제 알았나.


"2019년 초 즈음에 처음 들었던 것 같다. 대한축구협회에서 전화가 와 새로운 엠블럼을 제작하고 있다며 교체될 것이라 알려줬다. 엠블럼이 바뀐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렇게 대한축구협회에서 직접 설명을 해준 것을 고맙게 생각을 한다. 전 엠블럼 디자이너에 대한 예의를 지킨 것으로 본다. 그래서 감사하다."

-19년 만에 은퇴한 심정은 어떤가.


"시원섭섭하다. 한편으로는 홀가분해서 좋다. 엠블럼이 바뀐다는 이야기를 미리 들었고, 폴란드에 갔을 때 이번 대회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을 세상에 내놓으면 부모의 역할은 끝이다. 나머지는 자신이 알아서 사회적으로 커나가는 것이다. 사회로 나가 잘 큰 것 같다. 자수로 부착했던 것도 마지막에는 인쇄로 부착하다보니 퀄리티도 좋아졌다. 좋은 분위기와 흐름을 타서 이렇게 완성이 됐다. 백호 엠블럼이 '오랫동안 정말 열심히 했구나, 자신의 역할을 다 하고 떠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체시기는 적절한가.


"20년 정도 썼으면 다른 것이 나올 때가 됐다. 세대가 바뀌었듯이 엠블럼의 세대도 바뀌었다. 엠블럼과 함께하는 선수들과 팬들의 세대도 달라졌다. 20년 전 축구에 미쳤던 이들이 중장년층이 되서 생계와 육아에 힘을 쏟으며 축구와 멀어진 이들이 있다. 그러면서 새롭게 유입되는 팬들도 있다. 팬들의 문화도 바뀐 것 같다. 과거에는 축구 자체에 집중을 했다면 최근에는 축구 선수들을 연예인, 아이돌처럼 바라보는 젊은 팬들이 있다. 나는 이런 유입도 좋다고 본다. 유입 경로가 다양해지면서 더욱 다양한 응원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새로운 문화에 맞춰가야 한다. 엠블럼도 마찬가지다."

-돌아보면 아쉬운 점이 있나.


"너무 착하게 만든 게 아쉽다. 물론 너무 강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너무 선한 것 같기도 하다. 또 형태적으로 너무 복잡한 것 같다. 시간이 충분했다면 복잡한 형태를 단순하게 할 수 있는데 당시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단순하게 그리고 조금은 더 강한 스타일을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 본다."

-새로운 백호 엠블럼에 대한 생각은.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봤을 때 좋은 디자인이다. 디자인적인 완성도도 높다.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활용도도 높다고 생각한다. 이를 활용해 축구팬들이 좋아할 많은 것들을 만들 수 있다. 형태적인 것 뿐 아니라 시스템적으로도 어떻게 활용할 지 계획에 맞게 만들어진 것 같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드러날 것이다. 나의 엠블럼 보다도 훨씬 더 공과 시간이 많이 들어간 디자인이다. 나의 백호 엠블럼도 그랬듯이 지금은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노출도가 높아지면 호감도도 높아질 거라 생각한다."

-왜 본인이 백호 엠블럼 디자이너라고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나.


"주변에 아는 사람은 알고 있다. 하지만 모르는 이들이 더 많다. 대한축구협회 직원들 중에서도 내가 디자인을 했다는 걸 모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돈을 벌려고 한 것이 아니다. 무상으로 했다. 유명해지려고 한 것도 아니다. 정말 축구가 좋아서, 축구가 재미있어서 한 일이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을 가지고 굳이 내가 했다고 내세울 필요는 없다고 본다. 순수성을 의심받고 싶지 않다. 디자이너는 미술작가가 아니다. 미술작가의 작품은 자신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판매도 한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작품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클라이언트의 것이다. 양도를 했으면 그때부터 고객 소유다. 이게 미술작가와 디자이너의 가장 큰 차이다. 나는 디자이너다. 내가 디자인을 했다고 내가 유명해질 필요는 없다. 이 백호 엠블럼은 내 것이 아니라 한국 축구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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