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구 '유재학 시대'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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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최고령-최장수 명장 유재학 감독, 모비스와 재계약 시기

[오마이뉴스 이준목 기자]

한국농구에서 유재학 감독의 시대는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올 시즌을 끝으로 울산 현대모비스와 계약이 만료되는 유재학 감독의 행보가 농구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유재학 감독은 자타공인 한국농구 최고의 명장이다. 유 감독은 1997년 프로 출범 원년 인천 대우 제우스(현 인천 전자랜드) 코치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23년간 단 한 번도 프로농구 현장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켜온 한국 농구 역사의 산 증인이다.

특히 2004년 울산 현대모비스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로는 16년간 KBL 정규리그 우승 6회, 챔피언결정전 우승 6회 및 최초의 3연패를 기록하며 '모비스 왕조'를 구축했다. 정규리그 통산 최다승 감독이자 600승 이상을 넘긴 사령탑은 유 감독뿐이다. 국가대표팀에서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농구에 12년 만의 금메달을 안겼다.

유재학 감독이 남긴 업적은 화려한 성적도 성적이지만 무엇보다 KBL 특유의 농구스타일과 리더십의 롤모델이 되었다는 점이다. 탄탄한 조직력과 변화무쌍한 전술을 바탕으로 한 '수비 농구'는 오늘날 KBL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많은 현역 지도자들이 유재학 감독의 전술적 역량과 지도 스타일을 따라잡기 위하여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도자로서 깐깐하고 엄격한 이미지가 강하지만 의외로 유연성도 뛰어났다. 김효범이나 이대성, 전준범, 이승준같이 재능은 있지만 튀는 성향이 있는 선수들을 잘 조련하며 한국 농구에 맞게 가장 잘 활용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양동근이나 함지훈은 프로 데뷔 초기만 해도 특A급 평가를 받던 선수들은 아니지만 '유재학 농구' 시스템에서 그 능력을 극대화하며 프로농구에 한 획을 긋는 레전드로 성장했다. 인맥과 학연에 얽매이지않고 선수들의 잠재력을 알아보는 통찰력은 국내 감독 중 단연 독보적이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작전타임 중 선수 입에 테이프를 붙이거나 꿀밤을 먹이는 등 구시대적인 훈육 방식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또한 외국인 선수 발탁이나 선수 혹사 문제에 관해 독단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KBL에서 꼭 유 감독만의 사례라고 하기도 어렵고, 정작 선수들과의 관계나 지도력에 대한 신뢰도는 여전히 매우 높은 편이다.

1998년 대우 감독으로 첫 취임할 때만 해도 35세의 최연소 사령탑이었던 유 감독은 22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어느새 57세의 프로농구 최고령 사령탑이 됐다. 올시즌 고양 오리온 사령탑에서 물러난 추일승 전 감독, 전창진 전주 KCC 감독과 동갑이다. 90년대부터 감독 생활을 시작으로 2020년대까지 현역으로 프로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인물은 유 감독이 유일하다.

승승장구해온 유 감독이지만 지난 2019-2020시즌을 마감하면서 3가지의 큰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는 라건아-이대성의 이적으로 팀 전력 약화로 지난 시즌 우승을 차지했던 모비스가 8위에 그쳤다. 둘째는 프로 데뷔 시절부터 줄곧 유 감독과 함께해온 '애제자'이자 모비스 왕조의 또다른 주역인 레전드 양동근이 은퇴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유 감독 자신이 올시즌을 끝으로 모비스와의 5년 계약이 만료됐다는 것이다.

모비스가 유재학 감독과 재계약을 망설일 이유는 없어보인다. 유 감독은 모비스를 넘어 프로농구 역사상 최고의 성공을 일궈낸 감독이다. 올시즌 대형 트레이드와 그로 인한 성적 하락은 팀의 미래를 고려할 때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기에 유 감독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려운 대목이다. 유 감독도 모비스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강하다.

다만 모비스가 다시 한번 리빌딩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은 변수가 될 수 있다. 역시 은퇴가 멀지 않은 노장인 함지훈을 제외하면 전준범-이종현-김국찬 등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새 판짜기에 돌입해야한다. '유재학의 페르소나'라고 할 만했던 양동근마저 은퇴하며 팀을 이끌 새로운 구심점도 찾아야 한다. 모비스-유 감독과 자주 비교되는 NBA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그렉 포포비치 감독도 팀 던컨이라는 리더가 은퇴한 이후 몇 년간 우승권에서 멀어지며 험난한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앞으로 모비스의 미래를 어떻게 이끌고갈지 방향성을 제시해야 하는 것은 리더의 몫이다.

프로의 세계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종종 예상밖의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2004년 당시 구단 최고 성적을 거둔 유 감독이 전자랜드를 떠나 모비스로 옮길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유재학 감독이라고 언제까지 영원한 모비스맨으로만 남으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만에 하나 유 감독이 모비스와 계약하지 않는다고 해도 LG나 삼성처럼 기존 감독들의 계약기간이 만료되고 성적에 목마른 대형 구단들이 관심을 보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모비스 팬들이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유 감독과 다시 한번 재계약하여 팀을 안정 궤도에 올려놓은 이후 양동근같은 다음 세대의 지도자들에게 바통을 넘기는 것이다.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걸을 것이 유력한 양동근은 '유재학 농구'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보고 경험한 수제자이자 유력한 차기 모비스 감독 후보로 꼽힌다. 하지만 앞으로 몇 년간은 경험을 쌓아야 할 필요가 있다.

유 감독이 현역 사령탑 자리에서는 물러나더라도 단장같은 프런트나 행정업무로 자리를 옮겨 계속 함께하는 방법도 있다. 야구의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회장은 2004년 삼성 라이온즈 감독에서 물러나 구단 사장까지 맡은 바 있다.

'장수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도 의미있는 도전이다. 최근 프로농구 지도자들도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며 한동안 젊은 감독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득세했지만 결과가 모두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프로스포츠 현장에서 60대 이상의 베테랑 감독들은 점점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축구의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은 70대의 고령에도 은퇴할때까지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녹슬지않은 지도력을 과시한 바 있다. 감독으로서의 능력과 열정이 변함이 없다면 나이가 큰 문제는 될수 없다. 유 감독은 과연 앞으로도 한국농구에서 퍼거슨이나 포포비치처럼 장수 감독의 모범사례로 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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