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인터뷰] 김해란이 '디그의 여왕에게' "왜 그렇게 힘들게 했어?…고생했다"
'국가대표 리베로' 김해란(36·흥국생명)이 현역 은퇴한다.
김해란은 한국 여자배구가 2020 도쿄올림픽 진출권을 따낸 2020 아시아 대륙 예선에서 주전으로 활약했을 만큼 여전히 국내 최정상 리베로다. 도드람 2019~2020시즌에는 디그 2위, 수비 3위, 리시브 6위를 기록했다.
1년 전에도 고민했던 현역 은퇴를 이번에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출산을 위해서다. 2013년 결혼한 그는 신혼여행도 미루고 운동만 했을 만큼 배구에 모든 걸 쏟아 붓은 그는 출산을 계획하고 있다.
지금껏 수만 번 몸을 던져 강한 스파이크를 받아왔다. V리그 출범 전인 2002년 한국도로공사를 통해 데뷔한 김해란은 2005~2006시즌 이후 9시즌 연속 디그 1위를 차지했다. 통산 수비에서는 남녀부 통틀어 가장 많은 1만4428개를 기록했다. 그런 그에게 '디그의 여왕' '미친 디그'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은퇴 발표 다음 날, 김해란은 "정말 고지식하게 배구를 해왔다. 큰 압박감 속에 힘들게 훈련해온 스스로 '고생했다'고 하고 싶다"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마무리했다.
-'시원섭섭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은퇴까지 고민이 많았을 텐데.
"늘 고민해온 부분이다. 특히 2018~2019시즌 종료 후에 은퇴하려 했는데 1년을 더 뛰었다. 그때 (배구와 우승에 대한) 미련도 있었고 아쉬움도 커 놓기가 힘들었다. 남편도 '1년 더 해볼래'라고 해 더 뛰었다. 이번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시즌이 중단되면서 (은퇴) 생각을 많이 했다."
"늘 박수칠 때 떠나고 싶었고, 정상에 있을 때 떠나고 싶었다. 지난해 (은퇴하기에 적합한) 딱 이라 생각했는데, 한 번 더 우승해보고 싶어서 1년 더 했다. 아쉬울 때 모두 내려놓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웃음)"
-만일 도쿄올림픽이 예정대로 올해 7월 열렸다면?
"목표는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었다. 올림픽은 뽑힌다면 가고 싶었다. 선수라면 누구든 올림픽을 가보고 싶으니까."
(김해란은 1월 인터뷰에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도쿄 올림픽 출전은 기대도 안 했다. 도쿄 올림픽 진출 티켓 경쟁까지 뛸 거라고 생각도 안 했는데 여기까지 왔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말한 적 있다.)
-은퇴를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출산이다. 출산 이유만 아니었다면 할 수 있을 때까지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현재 1순위는 출산이다. (구체적인 자녀 계획에 관해 묻자) 요즘엔 딸이다. 사실 딸이든 아들이든 다 좋다. 힘들어도 한 번에 두 명, 쌍둥이로 낳고 싶다(웃음). 어찌 됐든 자녀 계획은 두 명이다."
김해란의 남편 역시 운동선수 출신이다. 2013년 김해란과 결혼한 남편 조성원은 현재 WK리그(여자실업축구) 보은 상무에서 코치를 하고 있다.
-그동안 남편의 응원과 지지가 큰 힘이 됐을 것 같다.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됐다. 은퇴와 관련해서도 늘 대화를 나눴다. 한 번에 내려놓기 쉽지 않아 조금씩 내려놓는 방향으로 얘기했다."
-아직 신혼여행도 못 갔다던데.
"그래서 이번에 가려고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힘들 것 같다. 나한테는 신혼여행이 없나 보다(웃음)."
"당연히 지난해 우승이다. 2005년 프로에 입단해 처음 우승을 경험해 감격스러웠다.
-남녀부 역대 최초 수비 1만5000개까지 572개 남겨놓고 있는데.
"기록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지금껏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막상 남겨놓은 기록을 보니 아쉽긴 하더라."
-2005년 입단 당시에는 레프트 공격수였다. 얼마지 않아 리베로로 전향했는데, 돌이켜보면 어떤 의미로 남을까?
"큰 부상으로 두 차례 수술을 한 적 있다. 프로 입단 후 발목 수술을 했는데 재수술까지 해야 했다. 이후 점프가 힘들어서 어린 나이에 리베로로 전향했는데 그게 내 배구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덕분에 국가대표도 하고, 선수 생활도 오래 할 수 있었다. 또 십자인대 수술을 받고 팀을 옮겼는데 좋은 조건으로 흥국생명에 입단해 처음으로 우승도 경험하고 다 좋았다. 우승을 한 번 하고 유니폼을 벗게 돼 마음이 조금은 편하다."
-타 포지션을 보면 출산 후 다시 현역으로 돌아온 선배들이 지금도 많다.
"당연히 몸이 된다면 플레잉 코치를 해보고 싶긴 하다. 다만 돌아올 때 몸이 따라준다는 보장이 없어 확신할 수 없다. 선수들을 도와주며 뛰는 플레잉 코치를 해보고 싶다."
김해란은 25년 넘게 배구를 했다. 그동안 공을 잡기 위해 이곳저곳 몸은 던졌다. 그래서 '미친 디그' '디그의 여왕'으로 불리는 스스로에게 인사말을 요청했다. 김해란은 다소 쑥스러워하면서도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모든 선수들이 고생했겠지만 너는 정말 고생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조금 내려놓고 하지 '왜 그렇게 욕심을 냈을까?'라는 후회도 든다. 정말 고지식하게 배구를 해온 것 같아. 물론 그 덕분에 정상에서 은퇴할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해. 조금은 내려놓아도 됐는데 너무 큰 압박감을 갖고 힘들게 훈련한 것 같아 '왜 그랬나'라고 묻고 싶네. 고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