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철, 아우크스부르크 역대 베스트11 후보
역대 최고의 아우크스부르크 중앙 미드필더 네 명 최종후보 4인 중 한 명으로
▲구자철, 아우크스부르크 베스트11 후보
▲미드필드 한 축 담당할 최종 후보 4인 선정
▲유럽에서 활약한 여덟 시즌 중 여섯 시즌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골닷컴] 한만성 기자 = 구자철(31)이 경쟁력 있는 독일 분데스리가 구단으로 거듭난 FC 아우크스부르크의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선수로 선정됐다.
아우크스부르크는 9일(현지시각) 구단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팬 투표로 구단 역사상 포지션별로 최고의 선수를 선정하는 '드림팀(베스트11)' 구성에 나섰다. 지난 2011/12 시즌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분데스리가 무대를 밟은 아우크스부르크는 이후 여덟 시즌 연속으로 잔류에 성공했고, 2014/15 시즌에는 5위에 오르는 이변을 일으키며 2015/16 시즌 유로파 리그에도 출전했다.
지난 8~9년간 아우크스부르크 구단의 전성시대를 논할 때 구자철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아우크스부르크가 분데스리가에 소속된 아홉 시즌 중 여섯 시즌을 팀과 함께했다.
아우크스부르크는 역삼각형 미드필드를 중심으로 한 4-3-3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진행한 구단 역대 드림팀 투표에서 구자철을 오른쪽 중앙 미드필더 자리를 차지할 최종 후보 네 명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그는 마르셀 은젱(37), 마르코 리흐터(22), 조나단 슈미트(29)와 구단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후보로 지목됐다. 이 중 리흐터만이 여전히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활약 중이다.
후보 네 명 중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한 선수는 단연 구자철이다. 그는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컵대회 포함 118경기, 분데스리가 104경기를 소화했다. 은젱은 61경기, 리흐터는 59경기, 그리고 슈미트는 71경기로 구자철과 비교하면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기록한 출전 횟수가 현저히 떨어진다. 통산 득점 또한 구자철이 14골로 최종 후보 네 명 중 가장 많다.
이처럼 아우크스부르크는 구자철이 유럽 무대, 특히 분데스리가에서 경쟁력 있는 미드필더로 인정받는 데 터전이 된 구단이다. 구자철은 단 21세에 불과했던 2011년 2011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득점왕을 석권한 후 당시 독일 분데스리가의 다크호스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했다. 그러나 그는 시즌 도중 볼프스부르크에 합류한 후 주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구자철은 2012년 1월 시즌 도중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 이적하며 분데스리가에서 본격적으로 능력을 발휘했다. 아우크스부르크는 구자철을 영입한 시점에 분데스리가에서 3승 7무 9패로 강등권인 17위에 머물러 있었다. 당시 분데스리가 승격팀이었던 아우크스부르크는 단 1년 만에 다시 2부 리그로 강등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아우크스부르크는 구자철을 영입한 2월부터 5승 7무 3패로 반전에 성공하며 14위로 시즌을 마쳤다. 이 기간 구자철은 아우크스부르크의 붙박이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15경기 5골 1도움을 기록했다. 구자철은 2012/13 시즌에도 임대 계약 연장 후 아우크스부르크가 15위로 분데스리가에 잔류하는 데 큰 보탬이 됐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구자철은 2013년 6월 볼프스부르크로 임대 복귀한 후 반 시즌 만에 마인츠로 약 500만 유로에 완전 이적했다. 그는 마인츠에서 2013/14, 2014/15 시즌을 통틀어 38경기 7골 3도움을 기록하며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구자철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 아우크스부르크는 2015년 8월 구단 역사상 최고 이적료(500만 유로)를 투자해 그를 재영입했다.
이후 구자철은 2018년 2월에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전에서 분데스리가 역사상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 출전했다.
구자철은 작년 독일 축구 전문지 '키커'를 통해 "2012년부터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뛰었다. 매년 분데스리가 생존을 위해 싸웠고, 성공했다. 그동안 성장을 거듭한 구단 사무실이 리모델링된 모습을 보면 나 또한 뿌듯한 마음이 든다. 나 스스로, 그리고 이 팀에 자부심을 느낀다. 나는 오랜 시간 아우크스부르크에 모든 걸 바쳤다. 아우크스부르크는 내 인생의 일부"라며 팀에 대한 애정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