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지헌의 브러시백] ‘거의’ 무관중 경기의 추억…“팬없는 야구는 죽은 야구”
[BO]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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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0 11:13
-코로나19 여파로 스포츠계 시즌 중단, 리그 연기, 무관중 경기 확산
-야구에서 무관중 경기는 어떤 느낌일까…메이저리그는 2015년 무관중 경기 경험
-프로야구는 아직 무관중 경기 없어…1999년 관중 54명 경기가 역대 최소
-야구인들 “팬 없는 프로야구는 죽은 야구”…무관중 경기 고려 안 하는 이유
[엠스플뉴스]
만약 야구장에 관중이 한 사람도 없으면 선수들은 어떤 느낌일까.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선 이런 보기 드문 체험을 해본 선수들이 있다. 지난 2015년 4월 28일 ‘볼티모어 사태’ 여파 속에 무관중 경기로 진행된 시카고 화이트삭스 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경기다.
당시 경기에 출전했던 제프 사마자는 3월 8일 ‘디 애슬레틱’과 인터뷰에서 “관중 없는 경기는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광경”이라며 “첫 이닝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고 밝혔다. 케빈 가우스먼도 “몸을 풀 때 중계진이 하는 이야기도 다 들렸다. 정말 이상했다”고 당시의 느낌을 전했다.
최근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며 스포츠계에선 ‘무관중 경기’가 대안으로 거론되는 분위기. 하지만 한번 무관중 경기를 해본 선수들은 다시는 같은 경험을 하길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사마자는 “야구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나는 무관중 경기가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팬 앞에서 경기하고 싶다”고 했다. 화이트삭스 유격수 팀 앤더슨도 AP 통신과 인터뷰에서 “무관중 경기는 지루하다. 선수들은 팬들에게서 에너지를 얻는다. 무관중 경기는 정말 별로”라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1999년 ‘관중 54명’ 거의 무관중 경기의 불행한 추억
아직 KBO리그에선 한 번도 무관중 경기가 나온 적이 없다. 하지만 ‘거의 무관중에 가까운’ 경기는 나온 적이 있다. 프로야구의 암흑기였던 1999년. 그해 프로야구에선 한 경기 관중 100명 이하 경기가 두 차례나 나왔다. 모두 전주야구장에서 열린 쌍방울 레이더스의 홈 경기다. 당시 IMF 여파로 해체 일보직전이던 쌍방울은 주력 선수를 죄다 다른 팀에 뺏긴 가운데 승률 2할대로 최악의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특히 전주 홈에서 열린 마지막 3경기가 절정이었다. 10월 6일 LG 트윈스 상대 더블헤더 1차전에 총 관중 87명(2차전 연기), 10월 7일 현대 유니콘스 상대 홈 경기는 관중 54명이 찾았다. 8일 열린 LG와 더블헤더 2차전이자 쌍방울의 역사상 마지막 경기 홈 관중은 107명에 불과했다. 특히 비인기 구단의 쌍두마차 현대와 쌍방울이 만난 7일 경기는 지금까지도 역대 KBO리그 한 경기 최소관중 기록으로 남아 있다.
관중이 54명밖에 없는 야구장. 경기에서 뛰는 선수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당시 현대 소속이었던 박재홍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당시 경기가 기억난다. 54명이면 관중 수가 홈팀 관계자 수보다 적은 것 아닌가. 관중들 하는 얘기가 다 들릴 정도로 사람이 적었던 기억”이라 했다.
쌍방울 투수로 활약한 성영재 광주일고 감독은 “그 당시엔 항상 관중이 적었던 기억이다. 많이 와도 2, 300명 정도 올 때가 워낙 잦아서 관중이 54명이라고 특별히 다르게 느끼진 않았다”고 했다.
현대 소속이었던 전준호 NC 다이노스 코치는 “그 당시엔 관중 적게 온 경기가 워낙 많았다”며 “현대라는 팀은 좋은 팀인데,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긴 뒤로 관중이 너무 없어서 불행했다”고 당시 상황을 돌아봤다.
“관중 없으면 집중력 떨어져…팬들 없으면 선수들도 경기력에 영향받는다”
관중의 유무는 경기에서 뛰는 선수들의 경기력에도 영향을 준다. 박재홍 해설위원은 “관중이 없으면, 선수들도 힘이 나질 않는다. 관중이 선수에게 주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고 했다.
“관중이 꽉 찬 운동장에 나가는 순간의 희열은 선수를 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관중석에 만원 관중이 꽉 찼을 때와, 관중석에 사람이 드문드문 있을 때는 경기장 나갔을 때 받는 느낌부터 달라요.” 박 위원의 말이다.
성영재 감독은 “쌍방울 시절 잠실이나 부산 같은 야구장에 가면 관중이 많아서 게임할 맛이 났다”며 “당시 쌍방울은 전력도 약했고, 팬들의 관심도 적다 보니까 선수들의 의욕도 다른 팀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늘 관중이 없다 보니 경기에 나가도 흥이 나질 않았다”고 했다.
“관중이 많고 적고에 선수들도 민감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더 집중력도 생기고 좋은 플레이가 나오게 마련이에요. 아무리 열심히 하려고 해도, 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집중력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성 감독의 생각이다.
전준호 코치는 “물론 프로 선수니까 관중이 없더라도 열심히 할 의무가 있다. 경기력에 지장을 받아선 안 된다”면서도 “관중이 없으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경기하면서 짜릿한 느낌도 없고, 연습경기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경기력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르브론 제임스가 자기는 무관중 경기엔 뛰지 않겠다고 했다면서요? 저도 르브론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관중 없는 프로야구는 너무나 불행한 일입니다. 다시 반복돼서는 안 될 일입니다.” 전 코치의 말이다.
전 코치 외에도 야구인들은 하나같이 ‘팬 없는 프로야구는 존재 이유가 없다’는 데 동의한다. 롯데 선수 시절인 2002년 관중 69명 경기(역대 최소 2위)를 경험해본 이동욱 NC 감독은 “팬이 없는 프로야구는 죽은 야구”라고 힘줘 말했다.
“하루빨리 상황이 종식 돼 창원NC파크에서 많은 팬분들과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감독이 입국 인터뷰에서 밝힌 소망이다. NC 주장 양의지도 “야구로 팬들께 즐거움을 드리고 싶은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속상하다”며 “다 같이 잘 극복해서 하루빨리 야구장에서 팬분들 응원 소리를 듣고 싶다”고 희망을 이야기했다.
10일,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KBO 긴급 이사회가 열린다. 이 자리에서 KBO와 구단들은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현재로선 리그 개막 연기가 유력한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무관중 경기는 논의 대상이 아니다. 다소 개막을 늦추더라도, 보다 많은 팬들 앞에서 ‘정상적인’ 야구를 하는 게 많은 야구인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