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헐크가 바꾼 건 몸 만이 아니다
물리학책을 통째로 베끼고 수많은 연구와 실험을 했다. 몸뿐 아니라 장비, 스윙, 전략, 머리까지 개조하려 하고 있다.
물리학도여서인지 그는 애매한 느낌으로는 만족 못 한다. 아침에 일어나 몸의 컨디션을 파악하는 데 좋다, 나쁘다 정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데이터를 원한다고 했다.
샷을 하기 전에도 모든 것을 확실히 해두려고 한다. 공 치기 전 샷 거리는 누구나 계산한다. 타깃이 10m 위라면 10m를 더하고, 바람이 강하면 두 클럽 더 잡는 정도다. 디섐보는 숫자가 필요하다. 그에게 필요한 숫자들이다.
첫째 ^공기밀도를 계산한다. 공기밀도와 샷 거리의 관계에 대한 계산법은 경쟁자들에게 알려질까 공개하지 않는다.
둘째 ^샷 지점과 타깃의 고저 차도 계산하다. 일반 골퍼처럼 단순하지 않다. 같은 7야드 위라도 4번 아이언으로 칠 때는 9야드, 피칭웨지는 4야드만 더한다.
셋째 ^바람 계산은 구질과 바람의 방향 세기 등에 따라 다르다. 아직 완전히 연구하지 못했다. 디섐보는 브리지스톤 공을 쓰는데 바람에 가장 안정적이어서다.
넷째 ^공이 놓인 라이 경사다. 역시 계산 방법 비공개다.
다섯째 ^런 거리는 공 떨어지는 곳의 경사 등도 고려한다. 2도 다르면 런치앵글이 2도 바뀌는 것과 같다.
여섯째 ^비밀. 뭔가 하는데 완전히 비밀이다.
상식과 달리 헤드 토우 쪽 뒤가 움푹 들어간, 보기 흉한 웨지를 제작해 달라고 해 오랫동안 사용했다. 그린 핀 위치를 재는 컴퍼스를 이용하는 등 끝없는 실험을 했다.
일반 선수들은 약간 창피하다고 여기는 암락킹 퍼트 그립을 쓴다. 물리학 용어인 벡터 퍼팅이라 불리는 퍼트 연습을 통해 거의 꼴찌이던 퍼트 능력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렸다.
머리도 훈련하려 한다. 연습라운드를 할 때 자율 신경계를 강화해 운동능력을 향상하는 기계를 쓴다.
디섐보의 이런 집념이 대단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잘 안됐을 때 분노를 제어하는데 약간 어려움을 겪는 듯하다. 2018년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에서 그는 퍼터를 차에 매달고 질질 끌고 다녔다.
퍼트가 잘 안 돼서, 퍼터에게 레슨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퍼터는 죄가 없다. 퍼터를 쓴 퍼티(puttee:골퍼)의 잘못이다.
그래도 대충 감으로 하던 걸 숫자로 바꾼 건 과학이고 발전이다. 그는 “공이 핀 10m에 떨어져 서는 것과 8m 옆에 멈추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면서 “내가 특별히 똑똑하지는 않지만 열정은 뛰어나다. 뭔가를 정말 좋아하고 헌신할 수 있다면 그 분야에서는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골프 칼럼니스트 박노승 씨는 “디섐보는 골프를 바꾼 역사상 5대 인물 중 하나”라고 했다. 충분히 동감한다. 6타 차로 앞선 US오픈 18번 홀 티샷을 한 후 야디지북에 뭔가를 꼼꼼히 적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마블 영화에서 헐크로 변하는 로버트 브루스 배너 박사도 물리학자다. 그는 인간적인 인물이다. 디섐보는 매우 입체적인 인물이다. 성과가 뛰어나니 좋아하든 싫어하든 새로운 골퍼의 전형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론 20세기 골퍼의 낭만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운 '감'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