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타순 없는 추신수, 선수와 구단의 다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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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프런트오피스가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는 선수다. 선수는 승리하기 위해 그라운드에 오른다.”

메이저리그(ML) 리빌딩 팀 스프링캠프에 가면 들을 수 있는 얘기다. 리빌딩 팀의 중심, 혹은 베테랑 선수들은 마냥 긍정적 전망을 경계하면서도 부정론에는 반기를 든다. 더불어 트레이드를 진행하고 있는 구단 수뇌부에 일침을 가한다. “야구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올해를 포함해 텍사스와 4년 8200만 달러 계약이 남아 있는 추신수(36)도 비슷한 상황이다. 팀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바라보고 선수는 눈앞의 승리에 목말라 있다. 생소한 타순에 이름이 올라갔지만 선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뿐이다. 타순을 짜는 것은 선수가 아닌 감독이다. 추신수는 올시즌 첫 두 경기서 6번 타순에, 세 번째 경기에선 5번 타순에 들어갔다. 지난해까지 추신수가 6번 타자로 선발출장한 경기는 50회, 5번 타자로 선발출장한 경기는 98회였다. 1300경기 이상을 소화한 추신수의 커리어를 생각하면 6번과 5번이 추신수에게 익숙한 자리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런데 지난 3일(한국시간)과 4일 오클랜드전에서 추신수의 타순은 1번으로 바뀌었다. 텍사스 제프 배니스터 감독이 “추신수는 타순을 가리지 않고 자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타자”라며 타순에 변화를 준 이유를 설명했지만 배니스터 감독의 말을 고스란히 믿기는 힘들다. 추신수는 1번 타자로 선발출장한 경기가 470회에 달한다. 3번 타자 294회, 2번 타자 214회로 1번 타자로 선발출장한 경기가 가장 많다. 성적도 좋다. 4일까지 1번 타자로 출장한 경기에서 타율 0.279 출루율 0.386 장타율 0.447을 기록했다. OPS(출루율+장타율) 0.833으로 수준급 1번 타자다. 

물론 추신수의 기량이 전성기를 지나고 있다는 점, 1번 타자로 세운 기록도 전성기에 집중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숫자가 올시즌에도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 확신할 수는 없다. 그래도 배니스터 감독이 승리할 수 있는 최적의 타순을 구상했다면 추신수를 6번 보다는 앞자리에 놨어야 했다. 개막 시리즈서 추신수 대신 1번 타자로 출장한 델리노 드쉴즈는 1번 타자 출장시 통산 출루율이 0.333에 불과하다.

추신수 타순 변화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텍사스는 지난해 여름 에이스 다르빗슈 유를 트레이드하면서 리빌딩 체제로 전환했다. 지난겨울 프리에이전트(FA) 시장에서도 조용했다. 대형 FA보다는 앞으로 1~2년 자리를 메워줄 베테랑 영입에 집중했다. 텍사스는 새 구장이 건립되는 2021년에 맞춰 도약을 바라보고 있다. 앞으로 2~3년은 도약을 준비하며 선수단을 다지는 기간이다. 젊은 선수 육성에 집중하고 베테랑 트레이드를 통해 유망주를 얻는다. 2020년까지 계약된 추신수는 텍사스가 세운 청사진에 포함돼 있지 않다. 오프시즌마다 지역언론에서 추신수의 트레이드를 전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추신수보다 10살 어린 드쉴즈가 1번 타순에 갔다가 드쉴즈가 고전하자 추신수가 1번에 들어간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추신수가 프런트오피스의 방향과 계획을 바꿀 수는 없다. 추신수가 할 수 있는 일은 타순에 관계없이 매 경기 최상의 결과를 내는 것 뿐이다. 시즌 중 뜻하지 않은 트레이드로 유니폼을 갈아입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우승을 노리는 팀으로 가는 게 최선이다. 2014년 2월 시카고 컵스 스프링캠프가 열린 애리조나 메사에서 제프 사마자는 “프런트오피스가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는 선수다. 선수는 승리하기 위해 그라운드에 오른다”고 했다. 당시 최약체 컵스 선발진의 기둥이었던 사마자는 시즌 중 우승을 노리는 오클랜드로 트레이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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