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9번 완벽 정착' 하베르츠, 독일 최전방 고민 해소할까? [김현민의 푸스발 리베로]
▲ 레버쿠젠, 하베르츠 2골로 묀헨글라드바흐전 3-1 승
▲ 하베르츠, 가짜 9번으로 4경기 연속 골(6골 1도움)
▲ 하베르츠, 후반기 공격포인트 18개(11골 7도움)으로 분데스리가 선수 최다
[골닷컴] 김현민 기자 = '신성' 카이 하베르츠가 가짜 9번 포지션에서 4경기 연속 골을 넣는 괴력을 과시하면서 바이엘 레버쿠젠을 넘어 독일 대표팀의 아킬레스건인 최전방 공격수 포지션의 새로운 희망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레버쿠젠이 보루시아 파크 원정에서 열린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와의 2019/20 시즌 분데스리가 27라운드 경기에서 3-1 완승을 거두었다. 이 경기는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놓고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팀들간의 맞대결이었기에 한층 의미가 있었다(26라운드 기준 묀헨글라드바흐가 승점 52점으로 3위였고, 레버쿠젠이 승점 50점으로 5위였다).
이 경기에서 레버쿠젠은 3-4-2-1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하베르츠가 최전방에 서면서 '가짜 9번' 역할을 수행했고, 무사 디아비와 카림 벨라라비가 이선에서 공격 지원에 나섰다. 케렘 데미르바이와 샤를레스 아랑기스가 더블 볼란테(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허리 라인을 지탱해주었고, 데일리 싱크라벤과 미첼 바이저가 좌우 측면을 책임졌다. 스벤 벤더를 중심으로 드라고비치와 에드몬드 탑소바가 스리백을 형성했고, 루카스 흐라데츠키 골키퍼가 골문을 지켰다.
지난 화요일 새벽(한국 시간), 베르더 브레멘과의 경기에서 4-2-3-1을 가동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엔 묀헨글라드바흐의 전력을 고려해 공격형 미드필더를 한 명 제외(나디엠 아미리)하고 중앙 수비수 한 명을 더 추가(알렉산다르 드라고비치)하면서 수비에 조금 더 무게를 실어준 레버쿠젠이었다.
레버쿠젠은 최전방 공격수라는 중책을 수행한 하베르츠의 맹활약 덕에 공격 자원이 한 명 더 줄었음에도 위협적인 공격을 구사할 수 있었다. 이 경기에서 하베르츠는 출전 선수들 중 가장 많은 4회의 슈팅을 가져갔고, 키패스(슈팅으로 연결된 패스)도 2회를 기록하면서 공격 전반에 걸쳐 높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베르츠는 경기 시작 6분 만에 벨라라비의 수비 뒷공간을 파고드는 패스를 받아 논스톱 슈팅으로 선제골을 성공시켰다. 보통 논스톱 슈팅은 강하게 가져가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는 골키퍼가 나오는 걸 보고선 힘을 주지 않은 채 골키퍼 다리 사이로 정교하게 볼을 밀어넣는 차분함을 보여주었다.
하베르츠는 전반 종료 직전에도 골을 추가할 수 있었다. 루즈볼을 잡은 그는 드리블로 몰고 가다 패스를 주고선 그대로 페널티 박스 안으로 침투해 들어가선 데미르바이의 리턴 패스를 논스톱 슈팅으로 가져갔으나 아쉽게도 골대를 맞고 나왔고, 이어진 데미르바이의 논스톱 슈팅은 묀헨글라드바흐 수비수 니코 엘베디의 육탄 방어에 막혔다. 이대로 전반전은 레버쿠젠의 1-0 리드로 막을 내렸다.
후반 초반 묀헨글라드바흐의 공세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후반 7분경 묀헨글라드바흐 공격수 알라산 플레아의 대각선 크로스를 또 다른 공격수 마르쿠스 튀랑이 논스톱 발리 슈팅으로 골을 넣으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대로 경기의 흐름은 홈팀 묀헨글라드바흐로 넘어가는 듯싶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 다시 한 번 레버쿠젠을 구해낸 건 하베르츠였다. 실점을 허용하고 곧바로 2분 뒤에 하베르츠의 환상적인 스루 패스를 받은 벨라라비가 페널티 박스 안에서 슈팅을 가져가는 과정에서 엘베디의 태클이 깊게 들어오면서 파울이 선언됐다. 하베르츠는 골대 구석으로 강하게 페널티 킥을 처리하면서 추가 골을 성공시켰다.
레버쿠젠은 경기 종료 9분을 남기고 데미르바이의 간접 프리킥을 벤더가 헤딩 슈팅으로 골을 넣으며 3-1 승리의 마침표를 찍었다. 결국 레버쿠젠은 하베르츠의 멀티골 활약 덕에 중요한 일전에서 3-1로 승리하면서 승점 53점으로 묀헨글라드바흐를 제치고 5위에서 4위로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반면 묀헨글라드바흐는 26라운드까지 4위였던 RB 라이프치히마저 마인츠 원정에서 5-0 대승을 거두는 바람에 3위에서 5위로 내려앉았다).
하베르츠는 묀헨글라드바흐전에서 2골을 추가하면서 개인 통산 처음으로 분데스리가 6경기 연속 공격포인트(6골 3도움)를 기록했다. 공식 대회로 따지면 무려 10경기 연속 공격포인트(9골 6도움)를 올리고 있는 하베르츠이다. 하베르츠의 활약 덕에 레버쿠젠은 공식 대회 5연승 포함 12경기 11승 1무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다.
하베르츠는 전반기만 하더라도 단짝이었던 율리안 브란트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이적 공백에 따른 팀 전술의 변화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단 역대 최고 이적료를 들여 야심차게 영입한 데미르바이가 전반기 내내 팀 전술에 녹아들지 못하면서 자주 허리 라인까지 커버를 들어가야 했던 하베르츠였다. 이로 인해 하베르츠까지 덩달아 부진에 빠지면서 전반기 내내 공식 대회 21경기에서 3골 1도움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 디아비가 하베르츠의 새로운 공격 파트너로 급부상했고, 데미르바이도 팀에 녹아들면서 후방에서의 지원이 늘어나자 이제는 하베르츠가 허리 라인으로 내려오는 일 없이 공격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면서 득점 생산성도 자연스럽게 급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 하베르츠는 후반기 공식 대회 16경기에서 11골 7도움을 올리면서 총 18개의 공격포인트(골+도움)를 적립하고 있다. 이는 분데스리가 선수들 중 최다(2위는 도르트문트 공격수 엘링 홀란드로 13골 2도움 공격포인트 15개)에 해당한다.
당연히 레버쿠젠 역시 하베르츠의 경이적인 공격포인트 행진에 힘입어 2020년 들어 공식 대회 16경기에서 14승 1무 1패라는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이에 힘입어 후반기 성적만 놓고 보면 분데스리가 3위를 달리고 있고, 유로파 리그에선 16강에 진출했으며, DFB 포칼(독일 FA컵)에선 준결승에 올랐다. 레버쿠젠의 포칼 준결승전 상대가 3부 리가 구단 자르브뤼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결승 진출이 유력하다고 할 수 있겠다.
더 고무적인 부분은 하베르츠가 최근 가짜 9번으로 선발 출전한 4경기에서 모두 골을 넣으면서 6골 1도움으로 절정에 오른 득점 감각을 자랑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는 레버쿠젠 구단은 물론 독일 대표팀에게도 상당한 이점을 가져다줄 것으로 보인다.
레버쿠젠의 단점은 최전방 공격수 포지션에 있었다. 케빈 폴란트는 분데스리가 22경기에서 9골 7도움을 올리면서 나름 득점 생산성에 있어선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키핑에 약점이 있기에 공격에 끼치는 영향력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정통파 공격수 루카스 알라리오는 페터 보슈 레버쿠젠 감독의 전술에 맞지 않는 유형의 공격수이기에 주로 교체로 활용되고 있는 모양새이다(19경기 6골 1도움. 선발 출전은 9경기가 전부).
독일 대표팀 역시 마찬가지. RB 라이프치히 간판 공격수 티모 베르너는 폴란트와 여러모로 유사한 유형의 공격수이기에 독일 대표팀에서 겉도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 베르너는 최근 A매치 15경기에서 3골에 그치고 있다. 독일 대표팀이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실패한 원인 중 하나로 베르너가 선배 공격수들의 공백을 메우지 못했다는 게 지적되고 있었을 정도였다. 이에 요아힘 뢰브 독일 대표팀 감독은 바이에른 뮌헨 측면 공격수 세르지 그나브리를 최근 가짜 9번으로 활용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다행히 그나브리는 최근 A매치 8경기 중 7경기에 가짜 9번으로 선발 출전해 9골 2도움을 올리면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개인 통산 A매치 13경기 13골 4도움). 이 덕에 독일 대표팀은 네덜란드를 제치고 유로 예선 C조 1위로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나브리가 근원적인 해결책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나브리 역시 최전방 공격수에게 요구하는 키핑에선 약점이 있는 선수이다. 그나브리에게 있어 최적의 포지션은 역시 측면 공격수이다. 유로 예선이라면 모를까 강팀들이 버티고 있는 본선에서 그나브리 가짜 9번 카드가 통한다는 보장이 없다(베르너도 2017 컨페더레이션스 컵과 월드컵 예선까지 꾸준하게 골을 넣으며 첫 A매치 14경기에선 8골 2도움으로 선전했으나 본선을 기점으로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반면 하베르츠는 189cm의 장신을 바탕으로 키핑은 물론 공중볼도 곧잘 따내는 선수이다. 지난 브레멘전에선 2골을 모두 헤딩으로 넣었고, 이번 묀헨글라드바흐전에서도 레버쿠젠 선수들 두 번째로 많은 3회의 공중볼을 획득했다.
게다가 공격형 미드필더 출신답게 연계 플레이에도 강점이 있다. 실제 그는 가짜 9번으로 출전한 4경기에서 84.9%라는 최전방 공격수로는 상당히 준수한 수치의 패스 성공률을 자랑하고 있다(통상적으로 최전방 공격수는 패스 성공률이 70% 중반대만 되더라도 좋은 수치에 해당한다. 분데스리가 최정상급 공격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시즌 평균 패스 성공률은 71.5%이다). 경기당 패스 횟수도 43회로 많은 편에 달한다(레반도프스키의 경기당 평균 패스 횟수는 24.8회다). 즉 하베르츠가 가짜 9번에서 지금같은 활약상을 이어간다면 레버쿠젠은 물론 독일 대표팀 역시 미소짓게 될 것이 분명하다.
참고로 하베르츠는 묀헨글라드바흐전 멀티골로 개인 통산 분데스리가 34골을 기록하며 게르트 뮐러와 함께 분데스리가 역대 최고의 공격수로 명성을 떨쳤던 클라우스 피셔(33골)을 넘어 만 20세 선수 개인 통산 최다 골 기록을 수립하는 데 성공했다. 아직 그가 만 21세(1999년 6월 11일생)가 되기 전까지 분데스리가 3경기가 더 남아있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40골 고지 점령도 노려볼 수 있다. 하베르츠가 곧 독일의 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