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배구 우리카드 정상 이끈 정원재 대표이사
우리카드 배구단은 2013년 우리금융지주가 인수하기 전부터 하위권을 맴돈 만년 하위권 팀이었다. 2017~18시즌까지 한 번도 봄 배구를 하지 못했다. 서울을 연고지로 썼음에도 원정팀 관중이 더 많았다. 하지만 2018~19시즌 3위로 포스트시즌에 올랐고, 19~20시즌엔 마침내 정상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우리카드가 비상한 데는 신영철 감독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백전노장인 신 감독은 우리카드를 맡자마자 팀 체질을 바꿨다. 과감한 트레이드와 세대교체로 팀을 강하게 만들었다. 신 감독에게 “어떻게 그런 과감한 결단을 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구단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도와줬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신 감독의 뒤를 받친 사람은 구단주인 정원재 우리카드 대표이사다. 지난달 우리카드 본사에서 정원재 사장을 만나 우승 뒷이야기를 들었다.
정원재 사장은 2018년 우리카드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구단주직을 맡았다. 스포츠계와 인연이 처음은 아니었다. 정 사장 스스로도 학창시절 육상 장거리 선수로 활동했다. 정 사장은 “선수라고 하기엔 짧은 경력”이라고 손사래치면서도 “육상을 통해 배운 것들이 많다”고 했다.
정 사장이 구단주로 취임한 뒤 우리카드는 새 시즌을 맞이해 신영철 감독을 영입했다. 신영철 감독은 LIG손해보험-대한항공-한국전력을 맡았다. 비교적 약한 팀들이지만 전력을 키워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켜 ‘봄배구 전도사’로 불렸다. 구단 관계자들은 신 감독이 팀을 강하게 만들어줄 것으로 믿었고, 정 사장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우리카드는 현대캐피탈이나 대한항공처럼 모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기 힘든 구조의 회사다. 그런 점에서 신영철 감독의 선임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정원재 사장은 “우리카드도 카드사 중 상위권은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브랜드(카드의 정석 시리즈)를 통해 도약했다. 신 감독에게도 모든 권한을 줬고, 신 감독이 팀 사정에 맞게 새롭게 선수를 구성해 운영했다”고 설명했다. 정원재 사장은 “(18~19시즌) 출정식 때 우승까지 할 성적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우승을 향하여’란 메시지를 전했다. 그런데 3위를 하더라. 그래서 다음해엔 ‘우승을 위하여’라고 바꿨다. 그랬더니 1위에 올랐다”고 웃었다.
정 사장 부임 후 우리카드에선 두 가지 문화가 바뀌었다. 첫 번째는 임원들의 경기장 방문 문화다. 과거 VIP들이 경기장을 방문하면 일렬로 서서 인사를 하고, 라커룸을 방문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정 사장은 “코트는 선수들이 뛰는 소중한 공간이다. 연습장에 가도 나는 코트를 가로질러 가지 않는다. 선수들이 몸을 날리는 곳인데 돌 하나라도 튀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했다.
신영철 감독의 선수단 운영에도 힘을 실어줬다. 정원재 사장은 “신 감독과 딱 한 번 독대했다. 굳이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가 있는가”라며 “신 감독은 ‘디테일’에 강하다. 현재 V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정말 잘 알더라. 금융권 팀에선 효율적인 비용으로 팀을 짜야 하는데 신 감독이 너무 잘 해줬다”고 했다. 구단주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신영철 스타일’에 맞는 팀 구성이 가능했다.
영업사원 출신인 정 사장은 “영업소가 바뀌려면 환경부터 바뀌어야 한다. 만년 하위팀이 살아나려면 분위기 전환이 필요할 것 같았다”며 “그래서 ‘선수단 전체에 많은 것을 바꾸자’고 했는데 신영철 감독은 정말 선수들을 다 바꾸더라”고 웃었다. 우리카드는 지난 몇 년간 가장 많은 트레이드를 한 팀이다. 2년 전과 비교하면 7명의 주전 선수 중 나경복을 빼고 모든 선수가 바뀌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정원재 사장은 “신영철 감독이 올시즌 뒤 노재욱을 삼성화재로 보내겠다고 하더라. 팀을 위한 결정인지만 물었고, 알았다고 했다”고 말했다.
선수단에게 ‘구단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메시지도 던졌다. 한국배구연맹은 이번 대회 우승 상금을 코로나19 성금으로 냈기로 했다. 우리카드도 당연히 참여했다. 대신 정 사장이 훈련장을 찾아 구단에서 마련한 보너스를 지급했다. 한 우리카드 선수는 “솔직히 예전엔 우리카드가 현대캐피탈이나 대한항공처럼 가고 싶은 팀은 아니었다. 그런데 와서 뛰어보니 구단에서 신경써주는 게 느껴졌다. 이젠 다른 선수들도 오고 싶은 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신영철 감독은 ‘디테일’로 유명하다. 선수들의 손끝,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세세한 지시를 내린다. 정원재 사장도 비슷하다. 정 사장이 신경을 쓴 곳은 코트 밖이다. 대표적인 우리카드의 핑크색 유니폼이다. 승리, 부귀, 영화, 행복이란 꽃말을 가진 모란꽃과 우리카드의 빅히트 상품인 '카드의 정석'의 카드 디자인을 새 유니폼에 투영했다. 한국화가 김현정 화백의 작품을 모티프로 삼았다. 디자인에도 직접 참여했던 정 사장은 “배구단도 결국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기존보다 강한 느낌을 주기 위한 근육질을 지닌 벌 엠블렘 역시 정 사장의 아이디어다.
정원재 사장은 ‘우승’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말했다. 정 사장은 “18~19시즌 3위를 차지한 뒤 신 감독을 만났는데 ‘신인급 선수들로 성적을 내겠다’고 하더라. 그리고 1위에 올랐다”고 했다. 이어 “우리 구단이 해야 할 역할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선수들을 키워내 나경복처럼 국가대표 선수를 만들어내는 ‘배구 사관 학교’다. 장충체육관을 홈으로 하는 구단이니까 팬들을 유입시키고, 배구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가장 좋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