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부상과 트라우마…김선형이 3년 만에 덩크를 준비하는 이유는?
"한 3년 쉬었더니 발이 근질근질하대요."
김선형이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프로농구 새 시즌엔 다시 덩크를 시도하겠다는 얘기였다. 마지막 덩크는 2017년 2월 오리온전. 3년 전이다. 그해 10월 발목이 부러지는 큰 사고를 당한 뒤 김선형에게 덩크는 사치였다. 어느덧 33살이 된 SK 주장 김선형은 "그동안 칼을 갈고 있었다"며 "비시즌부터 몸이 좋아 올 시즌엔 반드시 덩크를 꽂아보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눈빛은 신인처럼 설렜다.
● 키 187cm, 토종 가드의 '화끈한' 덩크
2011년 KBL 무대에 데뷔한 김선형은 187cm, 농구선수로는 크지 않은 키로 펄펄 날았다. 토종 가드들의 덩크는 노마크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지만 김선형은 달랐다. 수비가 붙어도 용수철처럼 뛰어올랐다. KBL에서 180cm대의 가드가 경기 중 원핸드, 투핸드를 가리지 않고 자유자재로 덩크를 꽂은 건 이상민(182cm) 현재 삼성 감독 이후 처음이었다. 2011-2012 올스타전에선 덩크슛 콘테스트에 출전해 원맨 앨리웁 등을 선보이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데뷔 시즌 그가 성공한 덩크는 12개. 토종 선수로는 하승진(31개), 최진수(20개)에 이어 3위였다. 빅맨 오세근(9개), 김민수(8개), 김현민(7개)보다 많았다.
▶ "3년 쉬니 근질근질"…김선형의 덩크 도전은 계속된다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839063 ]
'토종 덩크'는 그 자체로 특별하다. 포지션이 가드 혹은 슈터라면 더욱 그렇다. 희소가치가 크다. 농구대잔치시절 호쾌한 백덩크로 '덩크왕'에 꼽히기도 했던 '람보 슈터' 문경은(190cm) SK 감독은 "신장, 점프도 중요하지만 기술 없이는 덩크를 하기 어렵다"며 "어려서부터 연습이 필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문 감독 역시 중학생 시절 '채널 2번, AFKN(주한미군방송)'에서 NBA를 보고 덩크의 매력에 빠졌고, 손바닥이 까지고 림에서 거꾸로 떨어져 다치면서도 부지런히 연습을 했다고 한다. 뛰어난 탄력으로 덩크를 꽂던 그에게도 '신인 김선형'의 패기 넘치는 모습은 여전히 생생하다. "나 역시 '덩크로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웨이트 훈련도 열심히 하곤 했는데, 당시 선형이의 파워, 탄력, 신인 답지 않은 대담함에 깜짝 놀랐었다."
'토종 가드' 김선형의 덩크는 2013-2014 시즌에 꽃을 피웠다. 2013 아시아선수권 중국전이 서막이었다. 25대22로 뒤진 2쿼터, 엔드라인 앞에서 공을 가로챈 김선형은 거침없이 코트를 가로질러 비상했다. NBA 출신 이젠롄(213cm)의 수비를 뿌리치고는 시원하게 덩크를 찍었다.
▶해당 영상 보기 https://youtu.be/6CE1eEcN8kg
그리고 2014년 1월 KCC전에서 '인생 덩크'를 터트렸다. 더 극적이었다. 68대65로 3점 뒤진 4쿼터. 종료 2분 여를 남기고 수비 리바운드를 잡은 헤인즈에게 공을 건네받았다.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6cm가 큰 강병현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거침없이 올라갔다. 이른바 '인 유어 페이스', 생애 최고의 덩크였다.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짜릿함이 있어요. 다른 덩크와 차원이 달랐어요. 몸이 부딪혔을 때 제가 더 위에 있다는 느낌. 그리고 갑자기 림이 낮아 보였어요. 덩크 했을 때 관중들이 '우구궁'하면서 체육관 전체가 들썩들썩했죠."
● 재활과 심리치료로 트라우마 극복…팬을 위해 다시 뛴다!
화끈한 '토종 덩크'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던 그가 도약을 멈춘 건 부상 탓이었다. 2017년 10월 모비스전. 속공 기회에서 림을 향해 날아올랐다가 내려오는 과정에서 발목이 크게 부러졌다. 지켜보던 문경은 감독이 눈물을 흘렸을 정도로 끔찍한 사고였다. 4개월 동안 재활을 거쳐 코트로 돌아왔지만 더 이상 덩크는 시도할 수 없었다.
김선형표 덩크의 원동력은 긴 팔과 스피드다. 제자리 점프는 60cm 정도로 평범하지만 두 팔을 벌린 길이는 195cm에 달한다. 여기에 폭발적인 스피드로 점프력을 배가시킨다. 부상 전엔 3m39cm까지 뛰었다. 발목 부상으로 스피드가 줄자 높이도 뚝 떨어졌다. 김선형은 "발목 각도도 예전 같지 않고, 스피드와 탄력이 모두 줄었다"고 말한다.
이전 같지 않은 발목 상태도 문제였지만 트라우마가 컸다. 문경은 감독은 "착지 과정에서 큰 부상을 겪고 나면 점프할 때 불안감이 크다"며 "몸보다 마음이 점프엔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선형은 SK구단이 지원한 심리치료를 받았다. 효과가 있었다. "발목은 이전 같지 않지만, 이젠 제 발목에 적응을 한 것 같아요. 심리적으로는 부상 전보다 더 강해졌어요."
다시 덩크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자신감이 바탕이 됐다. "팬 분들이 '이제 김선형은 덩크 못하는 거 아니냐'며 아쉬워하시는 데 저는 칼을 갈고 있었습니다. 기대하세요."
흔히 덩크를 '농구의 꽃'라고 한다. 야구의 홈런에 빗대기도 하는데 한 방으로 분위기, 승부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중국전(63대59 승)과 KCC전(82대74 승) 김선형의 덩크는 모두 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고, 이후 상승세를 탄 팀은 승부를 뒤집었다. 차이가 있다면 홈런은 한방으로 4점까지도 가능하지만, 덩크는 비교적 성공률이 높은 레이업과 똑같이 2점이라는 점이다. 승부처에서 실패할 경우 자칫 책임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게다가 김선형의 점프는 전보다 낮아져 3m30cm 정도다. 농구공 지름 24cm를 생각하면 1cm만 낮게 뛰어도 덩크는 3m5cm 림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김선형은 "그동안 발이 근질근질했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첫 번째는 팬, 다음은 동료들을 위해서다. "김선형의 화려한 플레이가 돌아왔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요. 덩크를 팬분들이 정말 좋아하세요. 그리고 벤치의 코칭스태프와 동료들도 기세가 확 올라가는 게 느껴져요. 저도 그래요. 4쿼터에 덩크를 성공하면 몸 컨디션이 1쿼터 때로 돌아가는 기분이에요." 문경은 감독도 적극 지원에 나섰다. 문 감독은 "외국인 선수들의 덩크가 더 화려하지만, 주장 김선형의 덩크는 더 특별하다"며 "실패했을 때 잃는 건 점수 2점이지만 성공하면 모두가 에너지를 얻는다.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고 말했다. 김선형은 "덩크는 욕망으로 완성된다"며 "더 높이 뛰기 위해 복부, 허리, 엉덩이, 고관절 주위 근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웃었다. 착실하게 전력을 보강해 3년 만의 통합 우승을 노리는 SK에 김선형의 덩크는 화룡점정이 될 수 있다.
▶해당 영상 보기 https://youtu.be/zfyNNxZCC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