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FA] 은퇴 기로에 선 ‘슈퍼 코리안’ 문태영 “쏟아낼 에너지 충분하다고 믿어”
[점프볼=민준구 기자] 마지막 남은 귀화 혼혈선수 문태영이 은퇴 기로에 섰다.
문태영은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를 마친 후,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이 됐다. 43살(한국나이)의 노장이지만 여전히 코트 위에 설 경쟁력은 충분하다는 평가. 그러나 이미 삼성과 이별한 그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2009년부터 이승준, 전태풍, 문태종과 함께 귀화 혼혈선수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문태영. 그는 가장 많은 세 차례 정상에 섰고 2014년에는 챔피언결정전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팬들에게 ‘문 코비’로 불리며 애정을 듬뿍 받았으며 그만큼 에이스 본능이 대단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하지만 문태영은 꿋꿋이 버텨왔다. 지난 시즌 데뷔 이래 가장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문태영은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현재 문태영은 한국에 남아 새로운 팀으로부터의 제의를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형 문태종처럼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몸 관리를 하며 말이다.
다음은 문태영과의 일문일답.
Q.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종료 이후, 어떻게 지냈나.
3일 정도는 푹 쉬었던 것 같다. 하지만 3일 이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부터 볼 핸들링, 슈팅 훈련 등 간단한 적응 훈련 정도로 시간을 보냈다. 개인적으로 리듬을 잃지 않기 위해 시즌 때와 비슷한 패턴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3월 초에 미국에 가서 한 달 정도 쉬고 왔는데 2주 동안 자가 격리를 해야 했다. 밖에서 운동하기 힘들 때는 ‘H.I.I.T(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 및 밴드 운동으로 몸 관리에 나섰다.
Q. 전태풍의 은퇴 선언 이후 최후의 귀화 혼혈선수가 됐다.
굉장히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귀화 혼혈선수로서 KBL 무대를 밟았던 2009년부터 지금까지 하루, 하루가 색달랐고 즐거웠다. 많은 귀화 혼혈선수들이 있었고 그들 중에 아직 남아 있는 선수라는 것에 영광스럽다. 2009년에 시작한 나의 KBL 도전이 아름답게 마무리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만큼 책임감도 크다.
Q. 현역 연장의 의지는 여전히 강해 보인다.
정확하다. 적어도 1년 정도는 더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2019-2020시즌은 코로나19로 인해 일찍 마무리됐다. 내가 가진 힘을 전부 쏟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다음 시즌에는 더 파워풀한 플레이를 펼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Q. 다른 구단들과의 대화는 있었나?
아직 없다. 올해 FA는 다른 때에 비해 많은 것이 달라졌다. 개인적으로도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파악하고 있다. KBL에 오기 전에는 에이전트가 있어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 알아서 해야 한다.
Q. 적지 않은 나이, 기량 저하에 대한 부분이 구단들의 선택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운동선수는 나이가 들면 몸 상태가 바뀌게 된다. 그러면서 경기 스타일에 변화가 생기고 점점 적응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선수가 젊은 나이에 뛰어난 운동신경과 폭발력으로 본인의 강점을 보여줬다면 쌓인 경험을 토대로 나이가 들었을 때 지능적이면서 효과적으로 경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후자라고 본다.
Q.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보는 것일까?
지난 시즌 내내 훈련하고 경기하면서 신체적으로 무리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물론 예전처럼 많은 시간을 출전할 수는 없겠지만 몸 관리를 잘해온 만큼 일정 시간 동안은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Q. 만약 은퇴의 길을 걷게 된다면 추후 계획은 어떻게 될까.
아직 정확하게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은퇴 후에도 스포츠 산업에 계속 몸담고 싶다. 특히 농구에. 리치먼드 대학을 졸업한 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학문적으로도 더 배우고 싶은 욕심이 있다.
Q. 한국에서만 무려 11년을 뛰었다. 처음 코트에 섰던 때가 기억나나.
정확하게는 기억하지 못한다(웃음). 그저 귀화 혼혈선수 드래프트 이후 한국에서 보낸 몇 개월은 기억이 흐릿하다. 너무도 달랐던 문화로 인해 필요했던 적응 기간, 한국의 농구에 어울리려고 했던 그 시간은 여러 감정이 섞여 있는 때였다. 어머니(한국인)로부터 한국에 대한 문화를 배웠지만 직접 느꼈을 때는 낯선 부분이 많았다. 몇 마디 말과 몇 개의 한국 명절에 대한 지식이 내가 알고 있는 전부였으니까. 그러면서 하루, 하루를 적응하다 보니 코트에 서게 됐고 열정적이었던 LG 팬들 앞에서 농구를 할 수 있었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선수였다가 상대가 제일 먼저 견제하는 선수가 되기까지 이 모든 느낌과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만약 올해 코트를 떠나게 되더라도 KBL에서의 추억은 두고두고 간직할 것이다.
Q. 귀화 혼혈선수로서 성공적인 길을 걸어왔다.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
성공적이라는 평가에 감사하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분명히 있다. 한국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너무도 크다. 한국에서 11년간 농구선수로 생활해 왔기 때문에 한국말 실력은 분명 더 좋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한적인 부분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말을 잘할 수 있었다면 팬들과의 소통, 팀 동료들과의 동료애, 구단과의 매끄러운 관계, 그리고 한국이란 아름다운 나라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이 아쉽다. 나탈리아와 광호(딸&아들)처럼 한국말을 잘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한 가지 또 아쉬운 점은 KBL 심판들과의 다사다난했던 순간들이다. 코트 위에서 서로의 역할에 너무 열중하다 보니 가끔 문제가 생겼다. 심판들도 본인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인데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심판들이 하는 일들이 결코 쉽지 않다.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Q. 문태영이란 사람이 한국에 있어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나.
팀의 승리를 위해서 열정적으로 그리고 강력한 의지로 뛰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보고 있으면 즐거울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었던 선수. 나중에 문태영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모두가 ‘그 선수, 참 잘하고 승리하는 순간에 매번 서 있었지’라고 기억해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