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INSIDE] '미녀 궁사' 장혜진 "도쿄가 마지막 올림픽…정점에서 활 내려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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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6 10:59
[스포티비뉴스=방이동, 정형근 기자 / 송승민 영상 기자] ‘태극마크’가 아닌 소속팀 로고를 가슴에 단 장혜진(33‧LH)의 모습은 낯설었다.
장혜진은 지난해 9월 열린 도쿄 올림픽 양궁 국가대표 2차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2관왕을 차지하며 ‘신궁 계보’를 이었던 장혜진은 “도쿄 올림픽에 나설 후배들을 응원하겠다”며 씩씩하게 돌아섰다.
그런데 도쿄 올림픽이 코로나 19 여파로 1년 연기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대한양궁협회는 “올림픽이 열리는 2021년에 가장 좋은 기량을 가진 선수를 뽑겠다”며 “도쿄 올림픽 선수 선발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밝혔다.
올림픽 재도전 기회가 생긴 장혜진은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다.
-도쿄 올림픽에 재도전할 수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나?
“올림픽 연기 논의가 이뤄졌을 때 선발전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기대를 안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선수 입장이라 누구보다 선수의 마음을 잘 안다. 이미 2차 선발전까지 통과한 20명의 선수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가 생겼지만 어려운 선발전을 다시 치러야 한다는 생각에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장혜진 선수가 2차 선발전에서 탈락했을 때 양궁계가 큰 충격을 받았다.
“사실 도쿄 올림픽에 대해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선발전에서 떨어졌다. 막상 떨어지고 나니 아쉬웠지만 후련한 마음도 들었다. 그동안 대표팀에서 10년을 뛰었다. 10년 동안 매년 선발전을 거치면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항상 긴장하고 있다가 선발전에서 떨어지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마음이 편했다는 건 올림픽 무대가 그만큼 덜 간절했다는 얘기 아닌가?
“올림픽이 덜 간절했던 건 아니다. 나도 정말 슬프고 힘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렇지는 않았다. (2차 선발전 기록이) 못 쏜 기록도 아니었다. 경기가 잘 안 풀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장혜진 선수는 올림픽 재도전 기회를 얻었지만 3차 선발전까지 진출한 20명의 선수는 허탈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이 선수들과 얘기를 나눴나?
“물론 선수들도 아쉬워하는 측면은 있었다. 그런데 선발전을 원점에서 다시 해도 이미 통과한 선수들이 또 잘할 것이다. 현재는 코로나 19 때문에 대회가 정상적으로 열리기만 해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장혜진은 올림픽과 ‘묘한 인연’이 있다. 그동안 장혜진의 올림픽 출전은 단 ‘1점’에 좌우됐다. 2012년은 선발전 기록에서 1점 뒤지며 4위로 런던 올림픽에 나서지 못했다. 반면 2016년 리우 올림픽은 1점 차이로 3위에 오르며 극적으로 올림픽행 티켓을 따냈다.
-과거 올림픽은 1점 차이로 희비가 엇갈렸다.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을 때 어떤 생각을 했나?
“4등으로 올림픽에 나가지 못했지만 당시에는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아직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실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2016년 리우 올림픽을 보고 더 열심히 준비했다.”
-2016년 리우행 올림픽 티켓을 따낸 건 런던 때 아픔이 약이 됐기 때문일까?
“갑자기 닭살 돋는다(웃음). 아무래도 그런 영향이 없지 않다, 실패와 좌절의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발판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리우 올림픽 선발전을 마치고 당시 4위였던 강채영 선수를 찾아가 위로했다. 1점 차이로 올림픽에 나서지 못한 아쉬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가?
“당연히 누구보다 잘 아니까, 채영이에게 수고했다고 다음에 같이 하자고 얘기했다. 네가 최고니까 힘들어하지 말라고 얘기했다.”
-우여곡절 끝에 간 리우 올림픽에서 개인 2관왕에 올랐고, 한국 양궁 선수단은 전관왕을 차지했다. 돌이켜보면 가능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한국에서 리우 올림픽 무대와 똑같은 경기장을 만들어 훈련했다. 현지에서도 선수들이 푹 쉴 수 있게끔 대한양궁협회에서 배려했다. 위험한 지역을 지날 때도 안전할 수 있도록 방탄차까지 지원했다. 협회에서 선수들을 위해 정말 세심하게 신경 쓴다는 걸 알았다. 그 감사함이 성적으로 나오지 않았나 싶다.”
-도쿄 올림픽에서 양궁 종목은 남녀 혼성전이 새로 추가돼 금메달이 5개로 늘었다. 한국 선수단 전체의 도쿄 올림픽 목표는 금메달 7개~10개이다. 양궁 대표팀의 성적이 중요하다.
“벌써 어깨가 무겁다. 내가 도쿄에 갈지는 모르겠다(웃음). 리우 올림픽 단체전에서 8연패를 달성한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9연패를 이어가야 할 후배들은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었다. 물론 도쿄에서 내가 그 자리에 함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양궁은 세계적으로 기량 평준화가 됐다.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양궁 종목 금메달 8개 중 4개를 땄지만 부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양궁은 무조건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국민적 기대가 크다.
“아무래도 많은 분들이 믿어주신다. 믿고 보는 양궁이라는 말씀도 감사하다. 하지만 선수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러한 부담감을 이겨내야만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선수들 서로가 부담감을 알고 있어 함께 공유하면서 극복하고 있다.”
-올해 9월 도쿄 올림픽 출전 선수를 뽑는 선발전이 다시 시작된다. 각오가 남다를 것 같다.
“재도전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하니 감사하다. 평소처럼 준비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무언가 더 필요하다. 연습하면서 그 무언가를 찾아보려 한다.”
-올림픽 연기로 재도전을 할 수 있게 됐지만, 코로나 19가 잠잠해지지 않는다면 올림픽이 완전히 취소될 가능성도 있다.
“선수로서 코로나 19가 잘 극복돼서 올림픽이 정상적으로 개최됐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크다. 훈련장에서 올림픽 하나만 보고 훈련하고 있는 선수들이 많다. 그런 마음이 하늘에 닿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장혜진 선수에게 도쿄 올림픽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
“다른 사람들은 리우 올림픽에서 2관왕을 해서 충분히 이룰 건 다 이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운동선수는 모든 대회에서 1등을 해야 한다는 목표를 항상 세운다. 도쿄 올림픽에서는 (기)보배가 리우 때 이루려고 했던 개인전 2연패를 한번 꿈꿔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도쿄 올림픽이 마지막으로 도전하는 올림픽 무대라고 볼 수 있을까. 선수 생활은 언제까지 하고 싶은가?
“아직 은퇴를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지쳐서 양궁 선수를 그만두고 싶진 않다. 지금까지 계속 잘해왔다는 생각이 들 때 멋있게 활을 내려놓고 싶다. 그 마지막 정점이 도쿄 올림픽이 되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