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인터뷰①] ‘KBO 최고 계약금’ 한기주 “장재영이 내 기록 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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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영등포] 김현서 기자= 2006년 KBO리그 신인 역사상 최고 계약금 10억 원을 받고 KIA 타이거즈에 입단. 데뷔 첫 시즌 선발-불펜으로 보직을 바꿔가며 10승 8홀드 1세이브 달성. 이듬해 2007년부터는 마무리로 전향해 2년 연속 25세이브 이상을 기록하며 승승장구.

KIA 팬들을 누구보다도 설레게 했던 한기주(33)를 설명하는 문장들이다.

그러나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그는 2008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고질적인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다 2018년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으며 재기를 꿈꿨지만, 부상이 또다시 그의 앞길을 가로막으며 2019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완전한 재능을 다 꽃피우지 못한 비운의 야구천재 한기주를 만나봤다.

Q : 은퇴 후 근황이 궁금하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A : 지난해 말 은퇴 후, 5개월 정도 우신고등학교 야구부에서 투수코치로 있다가 올해 4월부터 야구 아카데미(87베이스볼 클라쓰)를 오픈하고 유소년들을 지도하고 있다.

Q : 야구 아카데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A : 작년 4월부터 은퇴를 결심하면서 유소년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 시절에 내가 부족했던 부분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고 레슨을 통해 도움을 주고 싶어 시작하게 됐다. 레슨할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은? 하체 쓰는 방법과 부상에 대해 조언을 많이 하고 있다.

Q : 프로에서 코치를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나.

A : 불러주셔야 할 수 있지 않겠나?(웃음) 아직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Q : 화려한 고교 시절을 보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관심도 많이 받았는데 빅리그 도전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A : 고교 시절에 주목을 많이 받았다. 국내 구단은 물론 메이저리그 구단까지. 당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한국에서 먼저 성공한 뒤에 가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국내 구단을 선택했다. 아쉬움은 없나? 지금은 다 잊고 지내서 야구에 대한 미련은 없다.

Q : 현재 고교 특급 유망주 장재영 선수(18, 덕수고)와 비교되고 있는데 알고 있나. 본인이 기록한 리그 최고 신인 계약금을 깰 수 있을까.

A : 어떤 선수인지 들어 봤다. (고교 시절 구속을 비교해 봤을 때) 장재영 선수가 나보다 더 빠른 공을 던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최고 157km까지 던졌다는데? 와, 정말 훌륭한 선수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내 기록(리그 역대 최고 신인 계약금)을 깰 수 있을 것 같다. 섭섭하진 않을까? 기록은 언제든지 깨지라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빨리) 깼으면 좋겠다.

Q : 이제 프로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나 순간은.

A : 기아에서 삼성으로 트레이드된 후 첫 광주 원정 경기에(2018년 3월 28일) 등판했을 때가 가장기억에 남는다. 어떻게 보면 기아는 제2의 인생을 열어준 구단이고 삼성은 또 나를 받아줬던 구단이었기 때문에 그 경기가 가장 생각나는 것 같다.

Q : 반면에 가장 아쉬웠거나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가.

A : 은퇴하기 직전 시즌이 너무 아쉽다. 평생 야구를 하다가 (현역 마지막 시즌에) 등판 한 번 못 해보고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제일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Q : 팬들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아쉬운 순간으로 꼽는다. 당시 컨디션이 안 좋았나.

A : 올림픽을 보신 야구 팬들은 아시겠지만 욕을 많이 얻어먹었다. 몸 상태가 나쁘진 않았는데 밸런스 부분이 많이 무너져있었다.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부터 안 좋다 보니 올림픽 무대에서 볼을 제대로 던질 수 없었다.



Q : 이어 ‘속꽉남’, ‘은하철도 한기주’, ‘불기주’ 별명도 얻었다. 들어봤다면 당시 기분은 어땠나. (*베이징 올림픽에서 평균자책점 99.9를 기록하자 야구팬들이 배일호의 노래 99.9에 빗대어 붙인 별명)

A : 다 들어봤다.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그만큼 팬들이 관심을 가져주신다고 생각했다. 재미있는 별명이라고 생각한다.

Q : 또 다른 별명 '10억 팔'이 늘 꼬리표로 따라다녔는데 부담되진 않았나.

A : 부담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2009년 이후) 수술을 많이 하다 보니 예전에는 던질 수 있었던 공들을 제대로 못 던지게 되더라. 특히 어깨 수술 이후 강속구 자체를 던질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10억 팔’이라고 불렀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는 ‘10원짜리 팔’ 정도였던 것 같다.(웃음) 수술을 좀 더 일찍 했으면 어땠을까? 결과론이지만 아이들에게도 많이 얘기해주는 부분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수술을 받으라고 얘기한다. 그래야 회복도 더 빠르고…

▶인터뷰는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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