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SK가 배출한 또 한 명의 깜짝 스타 ‘불꽃 남자’ 최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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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민준구 기자] 2019년 8월 14일, 경기도 양지에 위치한 서울 SK의 훈련체육관. 대부분의 선수들이 운동 후 식사를 마치고 휴식을 취할 때 한 젊은 선수는 여전히 코트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듯한 결연한 표정으로 슈팅을 던지던 그는 결국 1년 뒤, KBL 최고의 식스맨으로 우뚝 섰다. 선수 인생에 있어 벼랑 끝까지 몰렸지만 마지막 대반전을 이루며 깜짝 스타로 성장한 남자. 그 주인공이 바로 최성원이다.

※ 본 기사는 점프볼 6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2관왕의 비결은 기술 아닌 열정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시상식이 열린 4월 20일, KBL 센터. 스포트라이트는 MVP에 선정된 허훈이 독차지했지만 또 다른 승자도 존재했다. 식스맨상, 수비 5걸 등 2관왕에 오르며 자신의 농구 인생을 180도 바꾼 최성원은 2019-2020시즌을 빛낸 또 한 명의 주인공이었다.

Q. MVP 허훈에 이어 가장 뜨거운 남자가 아닐까 싶다.
사실 아직도 얼떨떨하다(웃음). 하나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이 있었지만 시상식 전날 연락을 받고 잠깐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식스맨상에 이어 수비 5걸에도 이름을 올렸다는 소식을 들으니 이게 현실인가 싶더라. 그만큼 잘했다고, 노력했다고 누군가가 말해주는 것 같아 너무 기뻤다.

Q. 어느 정도 기대는 했을 것 같은데?
상 하나 정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직접 듣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 아닌가. 그래서 어떤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4월 19일 정오에 KBL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나를 돌아보니 제대로 정장 한 벌이 없더라. 그래서 부랴부랴 정장을 맞추고 왔다.

Q. 주변에서 축하 메시지를 많이 받았을 것 같다. 가장 기뻐해 주신 분들은 누구인지 궁금하다.
정말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셨다. 특히 트로피를 가져온 날, 부모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사진을 찍은 장면이 기억난다. 농구를 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있었고 그럴 때마다 잡아주신 건 부모님이었다. 인생에 있어 실패란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게 도와주신 분들이다. 나 역시 이제야 무언가를 해드린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Q. 2관왕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어떤 상을 받더라도 내가 혼자 이룬 건 없었다. 그래서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은 도움을 주신 문경은 감독님부터 코치님들이 떠오르더라.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할지 생각하는 시간도 가졌다. 또 나와 함께 코트에 섰던 선수들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받을 수 없었던 상이었다. 너무 감사하다.

Q. 수비 5걸에 이름을 올렸다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닐까 싶다. KBL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수비수라는 뜻인데?
제일 놀랐던 일이기도 하다. KBL에 나보다 수비를 잘하는 선수들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수비 5걸에 이름을 올렸다는 게 믿겨 지지 않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수비력이 그렇게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특별하지는 않으나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에는 동의한다. 내 수비는 기술이 아닌 열정이니까.





아쉽기만 했던 대학 시절
사실 최성원은 아마추어 시절에도 자신의 이름을 크게 떨친 적이 많지 않다. 최성원이 부족했던 건 아니다. 안양고 시절 에이스로 활약했고 청소년 국가대표에도 이름을 올렸지만 황금 세대에 가로막혀 좀처럼 기지개를 켜지 못했다. 명문 고려대에 입학한 뒤에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그리고 인생 최대의 위기도 찾아왔다.

Q. 고려대까지의 최성원은 상복이 없었던 선수였다.
처음 농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고려대 시절까지 기억나는 특별한 상은 없다. 상복이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다른 말로 생각해보면 특출난 장점이 없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수비 등 다양한 부분을 하려고 굉장히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하나의 기록이 굉장히 좋게 나온 적은 드물었다.

Q. 프로 데뷔 전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상은 있나?
안양고 3학년 시절에 대통령기 대회를 나간 적이 있다. 그때 4강까지 진출했는데 미기상과 어시스트상을 동시에 받았다. 이전, 이후에는 크게 기억나는 상은 없다. 크게 두드러진 선수는 아니었던 것 같다(웃음).

Q. 지금의 최성원과 달리 ‘고려대 최성원’은 애매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사실 농구라는 스포츠에 큰 관심을 두고 굉장히 열심히 했던 시기는 안양고 때부터였다. 이후에 부모님께서 고려대라는 학교를 굉장히 좋아하셨고 진학하게 됐는데 각 학년 최고의 선수가 모인 곳에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3학년 때까지 출전 시간도 많이 적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존재감이 사라지는 느낌도 있었다. 운동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Q. 4학년 때부터 확실히 주전으로서 자리를 잡았다.
선배들이 다 떠나고 난 뒤 (김)낙현이와 함께 앞선에 서게 됐다. 사실 고려대가 굉장히 약해진 시기라고도 볼 수 있다. 정규리그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결국 플레이오프에서는 연세대에 밀렸고 정기전에서도 패했다. 여러모로 아쉬운 일만 생각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Q. 신인 드래프트 당시 지명될 거라는 믿음은 있었나?
솔직히 말하면 지명은 될 것 같았다(웃음). 내심 1라운드 지명을 기대하기도 했다. 근데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더라(2라운드 3순위로 지명). 그래도 평소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SK에 올 수 있게 돼 기뻤다. 빠른 농구를 추구하고 속공을 중시하는 팀이기 때문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물론 워낙 실력이 좋은 형들이 많지만 어딜 가더라도 경쟁은 필요하다. 그리고 이겨낼 수 있다면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컸다.

Q. SK 유니폼을 입게 되면서 어느 정도 꿈을 이뤘다고 볼 수 있을까.
벌말초 4학년 때부터 농구를 시작하면서 내 꿈은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근데 그 꿈을 이루고 나니 현실에 안주하게 됐다. TV에 많이 나오고 싶었는데 지난 두 시즌은 사실 투명인간과 같았다. 여기에 (우)동현이부터 (장)태빈이까지 입단하면서 내 자리가 점점 줄어 들더라. 꿈은 이룬 것에만 만족했던 나를 자책하기도 했다.





반전이 시작된 마카오 터리픽12
최성원의 SK 생활은 꿈처럼 달콤하지 않았다. 데뷔 첫해 KBL 정상에 섰지만 벤치에 앉지 못했다. 이후 2018-2019시즌에는 제대로 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벼랑 끝까지 몰렸던 최성원에게 있어 2019-2020시즌은 기회와도 같았다. 최원혁과 이현석의 부재로 인한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최우선 목표. 악착같이 뛴 최성원은 결국 SK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성장했다.

Q. 데뷔 첫해, SK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관중석에서 지켜봤다.
분명 우리 팀이 우승했는데 그런 느낌이 크게 들지 않았다. 고생한 형들을 위해 축하해 줘야 하는데 기분이 조금 이상하더라. 멀리서 지켜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저 무대 위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기억만 든다. 그때 본 기사가 생각이 난다. 삼성에 있는 김동욱 선수의 이야기였는데 어렸을 때는 벤치에서 우승을 지켜봤고 다음 우승은 자신이 주축이 돼서 해냈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김동욱 선수처럼 다음 우승은 코트 위에서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이번 시즌이 오기 전까지 최성원은 D리그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꿈꾸던 프로 무대와는 조금 달랐을 것 같다.
사실 D리그에서의 생활이 많이 힘들기는 했다. 운동이 힘든 것보다는 1군 무대에서 뛰고 있는 형들과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우리는 스포츠 선수이기 때문에 팬들 앞에서 뛰고 싶어 한다. 하지만 D리그는 잘 모르니까 우리가 어떤 농구를 하는지 알 수 없지 않나. 그래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여기서 꼭 성장해서 반드시 12인 로스터(정규경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겠다고 다짐했다.

Q. 지난해 9월, 마카오에서 열린 터리픽 12는 어쩌면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터리픽 12에 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들떴다. 모든 선수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서 어느 정도 체념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아마 그때 국내에 남아 있었다면 이번 시즌 역시 전처럼 많이 뛸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죽기 살기로 뛰었고 어느 정도 눈도장을 받기도 했으니까.

Q. NBA 출신 랜스 스티븐슨을 상대해봤다. 다른 레벨이라는 게 느껴졌나?
확실히 잘하더라(웃음). 뭔가 달랐다. 파워, 스피드? 일단 신체 조건이 다르다고 하지만 다른 외국선수들을 막아본 적도 있기 때문에 크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근데 정말 다르기는 했다. 또 NBA에서 뛴 선수였으니까 영광스럽기도 하고. 내가 언제 이런 선수를 막아볼 수 있을지 모르니까 그 시간을 즐기려 했다.

Q. 자신이 가장 발전했다고 느낀 순간이 있을까?
KCC와 첫 경기 때 처음으로 던진 3점슛이 림도 맞지 않았다. 근데 곧바로 이어진 찬스에서는 실패 없이 3점슛을 성공시켰다. 터리픽 12를 다녀오지 않았다면 그런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을 것 같았다. 에어볼이 됐을 때 당황하기도 했지만 다시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때 스스로 ‘발전했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Q. 김기만 코치가 굉장히 많은 도움을 줬다고 들었다. 최원혁과 이현석을 합친 버전이라고도 하더라.
조언을 굉장히 많이 해주신다. 특히 수비에 대해 깊게 알려주신다. 3~4라운드에 들어갔을 때는 공격에서도 도움을 주셨다. 수비 부분에 공격 요소를 조금만 더 넣으면 괜찮을 것 같다면서 여러 가지를 알려주셨다. 덕분에 자신감을 잃지 않고 꾸준히 뛸 수 있었다.

Q. 2019-2020시즌을 스스로 평가하자면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8~90점 정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된 시즌이었다. 부족한 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장면에서도 패스했던 것에 대한 후회다. 다음 시즌에는 절대 놓치지 않을 부분이기도 하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도 있을 것 같다.
코로나19로 인해 조기 종료되기 직전 전자랜드와의 경기가 가장 생각난다. (김)선형이 형, (최)준용이 형이 부상으로 없었기 때문에 부담이 있었다. 근데 3점슛을 5개 넣었고 승리하면서 공동 1위를 지켜낼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준용이 형을 위해 세리머니를 한 LG 전이 기억난다. 그때 준용이 형과 같이 밥을 먹고 있었는데 득점에 성공하면 대신 세리머니를 해달라고 했다(웃음). 사실 코트 위에서는 크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3점슛을 넣고 자연스럽게 몸에서 나오더라. 준용이 형이 이 글을 보고 고마워해야 할 텐데. 하하.

Q. 유독 최준용과의 사이가 돈독한 것 같다.
준용이 형은 ‘츤데레’다. 평소에 잘 챙겨주면서도 이런저런 조언을 해줄 때 쓴소리도 하고 위로가 되는 말도 해준다. SK에 와서 처음 알게 됐는데 준용이 형이 옆에 있어 지금까지 즐겁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같이 게임도 자주 하는데 준용이 형에 비해 내가 너무 못해서 자주 잔소리를 듣는다.





다음 목표는 우수수비선수상
성공적인 한 시즌을 보낸 최성원에게 있어 농구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첫 성공의 달콤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그 자리를 노리는 야수들이 주변에 득실거리기 때문. 비시즌 훈련을 얼마 남기지 않은 현재, 최성원은 어떤 계획을 품고 새 시즌을 준비할까.

Q. 최성원의 농구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아직 채워진 것에 비해 채워야 하는 것이 많은 시기이기도 할 텐데?
냉정하게 평가하면 이번 시즌은 농구를 막 했던 것 같다. 코칭스태프로부터 지시를 받으면 요령 없이 몸으로 하려 했다. 그럴 때마다 김기만, 한상민 코치님께 조언을 구한다. 이분들도 살짝 ‘츤데레’ 같기는 하지만 항상 따뜻한 말을 해주신다. 대신 성공하면 맛있는 술을 사라고 하시지만 말이다(웃음).

Q. 2020-2021시즌부터는 최원혁이 돌아온다.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이는데?
원혁이 형은 정말 수비를 잘하는 선수다. 물론 대부분 우리 둘이 경쟁해야 한다는 시선을 보내 주시지만 같이 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물론 긴 시간이 되지는 않겠지만 다른 팀의 가드들이 힘들어 할 것 같다는 상상이 들더라. 또 원혁이 형과 내가 가진 능력이 조금은 차이가 있다. 그 부분을 잘 나눠서 서로 윈-윈 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

Q. 다음 시즌 역시 상에 대한 욕심이 있을 것 같다. 특별히 받아보고 싶은 상이 있을까?
이번에 수비 5걸이 됐다면 다음 시즌에는 우수 수비상을 받고 싶다. 또 식스맨상을 받았으니 기량발전상도 욕심이 난다. 원래는 상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었는데 이번에 2관왕을 하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하지 않나. 나 역시 항상 시상식에서 이름이 불리는 선수가 되고 싶다.

Q. 새로운 시즌을 앞둔 최성원의 각오 한마디 듣고 싶다.
매 순간 위기가 있었지만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지금 이 순간에도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게 내 마인드다. 돌이켜 생각해 봤을 때 ‘조금 더 열심히 할 걸’, ‘조금 더 잘해 볼 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현재에 충실하려고 한다. 너무 힘든 시기를 이겨냈기 때문에 긍정적인 면을 더 찾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언젠가는 나도 다른 스타 선수들처럼 좋은 평가를 계속 받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긴다.





BONUS ONE SHOT_최성원만 몰랐던 터리픽 12 행
2019년 8월 14일, 전날 KT와의 연습경기를 마친 문경은 감독은 가벼운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지친 몸을 풀어주려 했다. 훈련 내내 이어진 기자와의 대화의 화두는 바로 최성원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터리픽 12에 동행한다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낸 날이기도 했다.

당시 문경은 감독은 “현재 선수단 정원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명 정도 초과 되더라도 경험을 위해 (최)성원이를 데려갈 생각이다. 비시즌 내내 정말 열심히 훈련했고 (최)원혁이와 (이)현석이가 없는 빈자리를 잘 채워줄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선수들의 훈련을 지도하던 김기만 코치 역시 “이번 시즌, SK가 배출한 깜짝 스타가 될 수 있다. 원혁이와 현석이를 합친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공수 밸런스가 좋고 조금만 더 성장하면 충분히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훈련을 마친 뒤 만난 최성원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이미 지난 두 시즌을 허무하게 보낸 만큼 다가오는 2019-2020시즌도 자신의 것이 아닐 것 같다고 속단했기 때문이다. 터리픽 12에 대한 질문에도 “내가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워낙 잘하는 형들이 많아서….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너무 감사할 것 같다.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뛰겠다”라고 말할 정도로 의기소침해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며칠 뒤, 최성원은 당당히 터리픽 12에 나서는 SK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깜짝 활약을 펼치며 2019-2020시즌을 기대케 했다. 모두가 예상했던 최성원의 터리픽 12 행은 본인만 알지 못했고 우연하게 찾아온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지금의 최성원은 이렇게 탄생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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