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기현은 우는 스태프를 달랬다
설기현 경남 FC 감독은 담담했다.
K리그2(2부리그) 경남은 지난달 29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2 2020' 수원 FC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정규시간 90분이 지날 때까지 K리그1(1부리그) 승격을 눈앞에 뒀다. 전반 27분 터진 최준의 선제골로 1-0으로 앞섰다. 하지만 추가시간까지 버티지 못했다. 경남은 VAR(비디오 판독) 끝에 페널티킥을 내줬고, 수원 FC 안병준이 득점에 성공했다. 1부리그 승격 팀은 수원 FC가 됐다.
경남이 몇분만 버텼다면 1부리그에 올라갈 수 있었다. 초보 감독의 기적으로 시즌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남은 역전 드라마의 희생양이 됐다.
패장은 티를 내지 않았다.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설기현 감독은 "초보 감독으로서 어려움이 많았다. 선수들 덕분에 플레이오프까지 올 수 있었는데, (1부리그 승격) 결과를 못 만들어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김도균 감독과 수원 FC 선수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1부리그에서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설기현 감독은 먼저 구단 버스로 나와 있었다. 경남 팬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설기현 감독의 표정에 좌절은 없었다. 담담하게 한 시즌 동안 함께 고생한 구단 관계자, 코치진과 인사를 나눴다. 선수들의 모습이 보이자 경남 팬들은 박수를 보냈다. 한 경남 팬은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바닥에서 여기까지 올라왔다. 잘한 거다"라고 말했다.
한 스태프가 버스로 향하다 눈물을 훔쳤다. 그러자 설기현 감독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가벼운 장난을 걸었다. 설기현 감독은 선수들 모두가 버스에 탄 것을 확인한 후 자리를 떴다. 초짜 감독이 경남 지휘봉을 잡았을 때 우려가 더 컸다. 시즌 내내 위기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은 달랐다. 1부리그 문턱에서 주저앉았지만, 내년을 기대하게 했다.
선수 시절 유럽에서 활약한 설기현 감독은 경남에 '유럽식 축구'를 도입했다. 훈련량을 줄이고, 식사 여부를 선수들에게 맡기는 등 유럽식 자유를 선물했다. 전술적으로도 후방 빌드업 등 세계적 유행을 놓치지 않았다. 많은 공격수를 배치하는 등 쉽게 할 수 없는 파격적인 실험도 마음껏 했다.
또 그는 '형님 리더십'의 진수를 보여줬다. 41세의 젊은 감독은 권위주의를 없앴다. 선수들과 형·동생처럼 소통했다. 이런 것들이 모여 그 어떤 팀도 쉽게 이길 수 없는 단단한 팀을 만들었다. 설기현 감독은 "아직 부족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는 경남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졌다는 걸 1년 만에 입증했다. 2년 차 '설기현호'에 대한 희망을 당당히 제시했다.
"올해 부족한 점을 보완해서 다음 시즌에는 더 좋은 팀을 만들겠다. 선수들이 열심히 해준 덕분에 전술적인 이해가 높아졌다. 내가 생각하는 축구를 갖춰가는 것 같다. 내년에는 더 나아진 모습으로 (1부리그에) 승격하겠다."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가슴 아픈 실패에도 담담한 그가 오히려 무섭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