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예스도 페라자에겐 안 된다" 홈런왕의 확신, '최악의 1년' 버틴 인내의 선물
[스타뉴스 | 안호근 기자]
지난해 한화 이글스엔 희망이 넘쳐났지만 9위에 만족해야 했다. 외국인 타자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 게 결정적이었다.
시즌을 마친 한화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지난해 11월 19일 요나단 페라자(25·베네수엘라)를 1년차 최고액인 100만 달러에 영입했다. 그만큼 확신에 찬 영입이었다.
페라자는 단 2경기 만에 그 선택의 이유를 증명했다. 페라자는 24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2024 신한 SOL뱅크 방문경기에서 2번 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장, 연타석 홈런을 때려내며 팀 8-4 승리를 견인했다.
시범경기에서 타율 0.280(25타수 7안타) 2홈런 7타점으로 기대감을 끌어올린 페라자는 개막전부터 날아올랐다. 전날 뼈아픈 2-8 대패를 당했지만 페라자는 달랐다. 2루타 포함 멀티히트(한 경기 2안타 이상)를 날리며 기대감을 키우더니 이날도 달아오른 타격감을 뽐냈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서울시리즈 스페셜게임에서 5이닝 동안 7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기세를 높였던 임찬규에게 뼈아픈 홈런 2방을 안겼다. 4회초엔 1-2로 불리한 볼카운트에서도 임찬규의 체인지업을 걷어 올려 1-1 동점 솔로포를 날렸고 6회엔 낮게 떨어지는 커브를 때려 3-1로 앞서가는 연타석 홈런을 작렬했다.
4회엔 발사각 35.4도로 높게 치솟은 타구로도 122.6m의 홈런을 날리며 가공할 파워를 자랑하더니 6회 땐 22.2도의 낮은 탄도로도 담장을 넘겼다. 시속 165㎞의 총알 같은 타구였기에 가능한 대포였다.
아직 섣부른 평가일 수 있지만 지난해를 떠올려보면 벌써부터 한화 팬들이 행복감에 빠져들고 있는 이유를 잘 알 수 있다.
2022년 타율 0.289를 기록한 마이크 터크먼 대신 선택한 브라이언 오그레디는 22경기에서 타율 0.125 홈런 없이 OPS(출루율+장타율) 0.337에 그쳤다. 터크먼이 준수한 타격에도 12홈런 43타점으로 확실한 해결사 역할을 해주지 못했고 협상 과정에서 구단과 터크먼의 대우에 대한 입장 차가 컸다. 이에 터크먼의 약점까지 메울 수 있다는 평가를 받은 오그레디를 데려왔지만 처참한 성적으로 결국 짐을 쌌다.
대체 외국인 타자 닉 윌리엄스는 68경기에서 9홈런 45타점으로 오그레디보다는 훨씬 나았지만 그 또한 타율 0.244, OPS 0.678로 외국인 타자에게 거는 기대감엔 턱없이 부족했다.
반면 터크먼은 시카고 컵스에서 108경기에 나서 타율 0.252 8홈런 48타점 64득점 OPS 0.739로 성공적인 한 해를 보냈다. 한화로선 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쉬워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한화는 오프시즌 발 빠르게 움직였고 페라자와 계약에 성공했다. 공교롭게도 2015년 컵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페라자는 지난 시즌 트리플A까지 승격해 121경기에서 타율 0.284에 23홈런 OPS 0.922로 한화가 기다리던 유형의 타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내야에서 외야로 포지션을 전환한지 오래지 않지만 코너 외야 한 자리를 믿고 맡길 만한 정도의 수비력을 갖췄고 무엇보다 적극적인 성격을 갖췄다는 게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였다.
지난달 초 호주 멜버른 캠프에서 만난 노시환은 "피렐라 같이 투지 있는 선수를 원했는데 지난해엔 외인 타자들이 말수도 적고 파이팅이 있는 스타일이 아니라 착하고 조용했다"며 "다가가기도 힘들었다. 외국인 선수인데 성적이 안 나오니 다가가서 해줄 말이 없었다"고 말했다.
페라자는 달랐다. 노시환은 "장난기가 많고 밝다. 우리가 원하던 성격"이라며 "외국인 선수라면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해야하는데 페라자가 그렇다. 새로 온 외인 같지 않고 3일 됐는데 한 3년은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팀원들에게 먼저 다가가 친근하게 장난을 치며 빠르게 팀 분위기에 녹아 들었다. 최원호 감독은 "애교가 많고 적응이 빠르다. 밝고 에너지가 있는 귀염상이다. 어린 티가 난다"고 웃으며 "이런 스타일을 원했다. 국내 선수들도 마찬가지지만 그런 성격의 사람들이 주변에 주는 에너지가 있다. 특히 팀 스포츠에선 중요한 부분"이라고 칭찬했다.
시범경기를 거치며 다소 의구심이 달려 있던 수비력에도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 최원호 감독도 '기대 이상'이라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개막 미디어데이에 나선 노시환은 페라자에 대해 "치는 게 너무 안정적이고 선구안도 좋다. 정말 잘 칠 것 같다"며 다른 팀 외국인 타자 중에선 눈여겨 본 선수가 없느냐는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더니 롯데 레이예스를 뽑으면서도 "페라자에겐 안 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단 2경기를 치렀을 뿐이지만 노시환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페라자는 타율 0.500(8타수 4안타) 2홈런 3타점, 출루율 0.556, 장타율 1.375, OPS 1.931을 마크하고 있다. 표본이 적어 비율 스탯에 큰 의미를 두긴 어렵지만 안타 4개 중 3개가 장타라는 점은 분명 주목할 만하다.
최정(SSG 랜더스)과 함께 홈런 공동 1위에 올랐고 10구단 외국인 타자들 중 가장 돋보이는 성적을 냈다. 노시환이 언급한 레이예스도 홈런 하나를 날리며 타율 0.400(10타수 4안타)을 기록했지만 페라자의 임팩트에는 미치지 못했다.
페라자는 홈런을 때려내고 MLB에선 금기시되는 강렬한 배트플립을 펼쳤고 노시환과 약속을 한 듯이 세리머니를 펼쳤다. 루상을 돌면서도 격한 세리머니로 3루측 관중석을 가득 메운 한화 팬들을 열광시켰다.
최원호 감독은 "페라자가 멀티홈런 포함 좋은 타격을 보여줬다. 파이팅 넘치는 모습으로 큰 힘을 더해줬다"고 기뻐했다.
페라자 또한 "팀에 와서 안타만 열심히 치는 게 아니라 에너지를 주는 역할도 있다고 생각해서 홈런을 치고 에너지 넘치게 (세리머니) 했다"며 "배트플립을 한 이유는 에이전트를 통해 들었는데 한국에선 배트클립을 할 수 있다고 들었고 그게 재밌고 스포츠의 하나라고 생각해 하게 됐다"고 전했다.
성격은 밝고 자신감 넘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하고 겸손한 자세는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키운다. 페라자는 "루틴대로 열심히 훈련한 결과다. 투수와 1대1 싸움에서 잘 걸려서 홈런이 됐다. 변화구에 강점이 있는 건 아니지만 한국 투수들이 변화구를 많이 던지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런 걸 많이 연습해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특별한 비결은 없고 꾸준히 열심히 훈련하면서 경험이 쌓여가는 것 같다"고 겸손한 답변을 내놨다.
외국인 타자 농사 최악의 흉년에 고통 받았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페라자라는 복덩이를 만날 수 있었다. 올 시즌 한화를 기대케하는 커다란 이유 중 하나. 페라자와 함께 한화는 가을의 꿈을 조심스레 키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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