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배달원이었던 골키퍼, 러시아 월드컵에 간다

[BO]엠비 0 1492 0


(베스트 일레븐)

잉글랜드 A대표팀의 일원으로 러시아 땅을 밟게 된 수문장 닉 포프의 성장기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아무리 힘든 위치에 놓여도 절대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되며, 성공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 감독은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임할 엔트리를 발표했다. 이 명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는 포프다. 2017-2018시즌 번리 돌풍의 주역으로 보인 활약상을 인정받아 사우스게이트 감독으로부터 발탁됐다. 이미 지난 3월 A매치에 생애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받은 바 있긴 하나, 아직 A매치 데뷔전을 치르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월드컵을 준비하는 평가전 혹은 본선 무대를 통해 ‘삼사자 군단’ 데뷔전을 치를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잉글랜드 A대표팀의 수문장으로 오랫동안 활약해 온 조 하트를 밀어내고 최종 엔트리에 승선했다는 점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잉글랜드 A대표팀 엔트리를 통틀어 가장 깜짝 발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당연히 포프는 영국 언론들의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포프의 발탁을 두고 ‘우유 배달원의 기적’으로 표현해 시선을 모았다. 

포프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월드컵을 꿈꾸는 게 힘든 선수였다. 냉정히 프로 무대 데뷔도 힘들었다. 입스위치 타운 유소년 팀을 통해 축구계에 입문했던 포프는 16세 때 장래성이 없다는 이유로 팀을 떠나야 했다. 자신의 미래와 생계를 위해 주경야독을 해야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우유 배달원을 시작했고, 영국 버리에 자리한 웨스트 서폴크 대학에 입학해 비즈니스 마케팅과 스포츠 과학을 전공했다. 축구 선수가 아닌 제2의 삶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축구를 놓지 않았다. 포프는 프로라 할 수 없는 논 리그에서 다시 시작했다. 웨스트 서폴크 대학이 자리한 버리의 논 리그 클럽 버리 타운 FC에 들어가 다시 시작했다. 입단 당시 버리 타운은 8부리그에 속한 팀이었다. 심지어 버리 타운 리저브 팀에서 뛰기도 했다. 버리 타운 리저브 팀은 11부리그에 속했다. 경기를 뛸 수 있는 곳이라면 무대를 가리지 않은 것이다. 이 버리 타운에서만 150경기를 뛰었으며, 2009-2010시즌 잉글랜드 서던 풋볼 리그에서 팀이 우승을 차지해 7부리그로 승격하는 데 크게 공헌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축구 선수 커리어에 전환기를 맞았다. 찰턴 애슬래틱의 부름을 받은 것이다. 비록 찰튼이 리그 1(3부리그)에 속한 작은 클럽이긴 해도, 어쨌든 프로 팀이었기에 영입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주급 100파운드(한화 약 14만 원)이라는 박한 연봉이지만, 그래도 프로 선수의 꿈을 이룬 것만으로도 포프는 벅찬 기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물론 찰턴 생활도 쉽지는 않았다. 2011년 찰턴에 입단한 후 포프는 하로우 버러·웰링 유나이티드·캠브리지 유나이티드·올더숏 타운·요크 시티 등 프리미어리그 팬들에게 낯선 이름의 하부리그 클럽을 무려 4년이나 전전해야 했다. 당시 몸담았던 팀들은 4~6부 리그에 속한 팀이다. 하지만 주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성실하게 임하며 자신의 주가를 드높이는데 집중했다. 

그러자 기회가 또 찾아왔다. 2014-2015시즌 챔피언십에 속한 번리에 임대 이적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물론 번리에서도 기회를 잡는 건 쉽지 않았다. 반 시즌 동안 백업 골키퍼 신세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5년 1월 위컴 원더러스전을 통해 번리 데뷔에 성공한 후 션 다이크 감독으로부터 신뢰를 얻으며 주전으로 활약, 팀의 프리미어리그 승격에 공헌했다. 이에 번리는 임대생이었던 포프의 공을 인정해 완전 영입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10일 본래 번리의 주전 골키퍼였던 톰 히튼이 부상으로 쓰러지자 교체 출전하면서 꿈에도 그리던 프리미어리그 데뷔를 완수했다. 그러니까 러시아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표 시점을 기점으로 불과 8개월 전의 일이다. 밑바닥을 전전하다 가장 높은 무대에 뛸 기회를 잡은 포프는 그때부터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번리의 간판 수문장으로 뿌리를 내렸으며, 프리미어리그 선방률 76.5%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 선방률은 프리미어리그 내 영국인 골키퍼를 통틀어 최다다. 즉, 이번 잉글랜드 A대표팀 선발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포프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내 꿈은 이 팀에 몸담은 그 어떤 선수보다도 크다. 날 증명하고 싶었다. 리그 2에서 뛸 때 한 경기라도 뛰는 게 목표였다. 나는 내가 주어진 자리에서 최고의 골키퍼가 되길 꿈꿨다. 지금은 잉글랜드 대표 골키퍼로 뛰는 게 목표”라고 자신의 성장기와 야망을 말했다.

냉정히 포프는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3순위 골키퍼가 될 전망이 크다. 연령별 대표팀부터 유망주로 평가받았던 잭 버틀란드, 마찬가지로 연령별 대표를 거친 조던 픽포드와 경쟁해야 한다. 하지만 무조건 3순위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을 할 수도 없다. 버틀란드는 A매치 7경기 출전, 픽포드는 2경기 출전에 그치고 있다. 조 하트의 그늘이 워낙 컸기에 경쟁자들도 잉글랜드의 골문을 지킨 경험이 그리 많지 않다. 때문에 포프에게도 기회가 갈 공산을 배제할 수 없다. 버리 타운 FC에서 시작해 번리를 거쳐 잉글랜드 A대표팀에 입성했던 과정에서 보인 노력을 이번 경쟁에서 또 보여준다면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마음도 사로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0 댓글